장마 / 박명증
여름은 가을을 준비한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질척거리는 장맛비는 풍요로운 가을 결실을 향한 여름의 간절한 바람이다. 장마가 그치면 뜨거운 햇볕이 가을의 따스한 햇살로 바뀌어 풍요로움을 어루만질 것이다.
잔뜩 낀 검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숨바꼭질하더니 또 빗물이 쏟아진다. 끈질긴 장마의 연속이다. 최장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보도가 시간마다 뉴스의 특보로 전해진다. 예년에 보아오던 장마와는 다르게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예전의 장마는 쉬어가며 비가 내렸는데 올해는 일주일이 넘도록 폭우가 쏟아졌다. 홍수가 났다는 방송이 뉴스 때마다 물난리로 인한 피해를 보여주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힘든 모습과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들을 영상으로 조명한다. 물난리를 피해, 막사의 지붕 위로 올라 목숨을 부지한 소들의 모습까지도 화제가 되어 방송을 탄다.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수해 현장을 방문하고 수해 극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주민들에게 약속한다. 수해를 당할 때마다, 아니 어떤 재해를 당할 때마다 들어온 말들을 한다. 그들은 말로만, 입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그들의 해결 방법은 수재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상대편과는 판이하다. 극복 의지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다지는 쩨쩨한 방법으로, 국민을 속여 보자는 꼼수를 둔다.
이번의 장맛비로 인한 홍수는 근래에 보기 드문 것이다. 그래서 수해를 입은 사람도 많고 피해도 크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피해의 중심에 사대강 토목공사와 보의 기능이 사람들, 특히 특정 정치인 그들 사이에 시빗거리가 되었다. 토목공사 이후 매년 강물이 범람한 것도 아닌데 유독 긴 장마와 폭우의 연속으로 많은 강수량 때문에 강물이 범람하고 피해도 많았는데 왜 사대강 보에 대한 시비가 또 일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근거도 없이 남이 잘 못해서 그렇다고 하면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돋보일 것이라는 치졸한 생각으로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하는 것이겠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아야 한다. 정치적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악랄한 정치인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자기편이라고 생각되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는 주장의 선동에 세뇌되어 다른 사람까지도 억지로 동참하자고 입에 거품을 문다.
피해 주민들은 억장이 무너지는데, 그들은 느닷없이 사대강 토목사업의 유용 여부를 가지고 시비가 한창이다. 사대강 사업의 결과로 홍수의 피해가 줄었다고 주장하는 그들과 오히려 보를 막아 놓음으로 홍수의 피해가 더 심해졌다는 또 다른 그들이다. 국민들이 볼 때는 정말 볼썽사나운 싸움이다. 국민들은 어려움 속에서 탄식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만 잘 했다고 싸우고 있으니 한참 한심하다.
어린 시절 낙동강을 바라보며 자랐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연중행사처럼 물난리가 났다. 폭우로 불어난 낙동강물의 역류와 계곡의 빗물이 합쳐져 제방이 무너지고 들판은 물바다가 되는 것이 다반사였고 침수지역의 주민들은 넘쳐 들어온 물을 퍼내는 것에 이력이 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교 가는 길은 물속에 잠겼고 그래서 길옆의 동산으로 올라가서 학교로 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몇 년이 지난 후, 둑도 튼튼하게 쌓고 배수펌프장도 설치하여 치수를 한 후에는 물난리가 없었다.
자연에 의한 장마는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끝이 났다. 장맛비 덕분에 서늘했던 여름 날씨는 폭염으로 대신했다. 장마에 밀려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던 코로나19가 다시 유행을 탔다. 장마와 폭우와 홍수의 피해로 야단스러웠던 여야 정치인들이 이제는 코로나 확산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국민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신이 난 듯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쁘다. 한쪽은 방역 기관과 정부의 지시 명령을 어기고 광화문 집회와 교회의 대면 예배로 인한 확산이라며 상대를 몰아붙이고, 이에 뒤질세라 또 다른 한편은 정부의 방역 실패를 극우 일부 교화와 야당에게 뒤집어씌운다고 날을 세운다. 국민들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들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말싸움으로 날을 샌다. 자기편이라 생각되는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서 견강부회하는 이들은 정녕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국민을 얕잡아 보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하도 우기기에 이골이 나 있어서 자기들도 판단 마비 상태를 잊고 있는 건지, 이것도 아니라면 낯이 점점 두꺼워져 철면피라도 된 것인지. 이들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은 정신이 바른 국민들뿐이다. 국민들이 현명해야 한다. 올바른 비판력과 판단력으로 사실을,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지루한 현실의 장마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언제쯤 그칠까. 외할머니의 주문으로, 꼼짝도 하지 않던 구렁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뒷마당 우거진 대나무 숲속으로 사라지고, 할머니가 깨어나 화해의 손잡이를 해야만 끝이 날런가. 숯이 껌정을 나무라고 껌정이 숯을 나무라는 현실을 바로잡을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력이 절실하게 기다려지는 오늘이다. 지겨운 장마가 끝나고 청량한 햇살이 호수의 물안개처럼 피어나 한반도를 따스하게 감싸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