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침묵이 오늘에 말을 걸다
문우들과 경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미리 신청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던 차에 다행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생겨 기쁜 마음으로 동행했다. 경주가 가까워지자 해설을 맡은 문우가 해박한 지식과 함께 맛깔스러운 재담을 늘어놓는다.
봉황대와 오릉, 그리고 천년 숲과 반월성이 오늘의 코스다. 먼저 봉황대로 향했다. 언니와 동생이 터를 잡고 있어 자주 들르는 곳이 경주다. 하지만 노동동과 노서동의 고분군을 거닐 때면 시간이 더는 미래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도심 한복판을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와 건물 사이에 마치 언덕처럼 솟아 있는 능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현재가 과거 위로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도심 안에 솟은 능 중에서도 내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곳은 늘 봉황대다.
봉황대는 그 규모가 거대해 볼 때마다 장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높이가 무려 20여 미터에 달해 고분이나 능이라기보다는 도심 속에 자리 잡은 나지막한 야산이나 언덕배기처럼 보인다. 능선 위에는 천년 세월을 드러내려는 듯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푸르게 자라고 있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이 거대한 무덤, 더구나 도심에서 천년 세월을 침묵하고 있는 이 무덤 속에는 과연 어떤 왕이 잠들어 있으며, 어떤 부장품과 사연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끝없는 상상력을 불러오며 그래서 더 신비롭게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어둠 속에 잠든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봉황대에는 지저귀는 새들과 노래하는 바람이 여유롭다.
알 수 없는 신비를 품은 채 묵묵히 서 있는 봉황대 앞에서, 인간의 생(生)은 순간처럼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덤 위에 자라난 나무에서 우리 삶의 유한함과 자연의 무한함은 하나의 연속성을 자아낸다. 죽음이 만들어 낸 공간 위에도 생명은 이어지고, 그 생명은 다시 멸함을 맞는다는 이치 앞에 엄숙함이 밀려온다. 푸른 잔디를 덮으며 피어난 하얀 개망초꽃조차 천년 고도의 그윽한 운치를 더 완연하게 한다.
봉황대를 바라보다 금관총으로 발길을 돌렸다. 금관총은 어느 주택의 공사 과정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라 고분 발굴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금관총의 주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금관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우리와 만나고 있다. 금관총의 유물은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변함없는 순금의 광채를 뿜어내며 세상에 나와서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각인시켜 준 것이다. 봉황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금관총은 전혀 다른 서사를 들려준다.
지금은 현대적인 보존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금관총은 무덤의 내부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무덤의 구조를 상세하게 재현해 놓은 내부 모습과 해설하는 문우의 설명을 통해 어렴풋하던 ‘돌무지덧널무덤’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무덤이 도굴꾼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나무 곽이 썩어 내리면서 사방의 돌이 무너져 내려 무덤 속 유물들을 덮은 채 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금을 간직하고도 그 날카롭고 예리한 도굴꾼의 횡포를 따돌린 비밀은 바로 우리 선조의 지혜 속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대한 돌과 흙의 압박을 견뎌낸 끝에 존재 가치를 빛낸 황금빛 왕관은 단순한 권력의 상징을 넘어선다. 죽음 이후의 세상에서까지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었던 인간적인 바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신라의 거대한 스케일과 자연의 순리 앞에서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던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황금으로 빚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유물과 그것을 완벽하게 보존하려 했던 선인의 지혜는 천년의 감동을 오늘에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그리고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천착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봉황대는 굳게 갇힌 채 상상력을 불러오고, 금관총은 역사적 실체의 진실을 증명한다. 이 두 고분 사이에 모여선 우리는 신라의 수많은 고분을 파헤쳐 유물을 약탈해 간 대표적 인물 ‘모로가 히데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경주박물관장 격이었던 그는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척하면서 경주 전역의 고분을 무자비하게 도굴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관료들이나 황실에 약탈해 간 우리 유물을 바쳤다고 한다. 유물 출토 과정에 어린아이들까지 이용했던 그의 악행에 일본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하니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의 악행에 대한 문제는 유물 도굴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물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말살시켜버렸다는 사실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시선이다. 유물 탈취에 눈먼 자들이 전문적 지식 없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유물을 출토하면서 빚어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금관총의 유물은 경주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간신히 지켜냈지만, 그 무덤 주인의 신원이나 장례의 기록은 그들의 무자비한 발굴로 사라져버렸다. 간악한 모로가 히데오의 손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간 문화재가 아직도 타국의 수장고에 갇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만 같다.
지배국은 피지배국이 미개해서 문화재를 관리한 능력이 없다고 핑계를 댄다. 모로가 히데오 역시 경주고적보존회 상임이사라는 직위를 방패 삼아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으로 합법적 약탈과 수탈을 정당화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이었지만 비전문가들이 달려들어 문화재를 긁어 보았고, 동네 아이들에게 푼돈을 주면서 보물찾기에 동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고학적 조사도 없이 역사의 맥락을 지워버리고 유물만 훔쳐 간 그들은 우리 역사를 훼손하고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던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아픈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기억해야겠다.
경주의 고분들은 살아있는 자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한다. 과거를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해 두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으로 끌어와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며 함께 숨 쉬는 것만 같다. 그것이 과거가 지닌 위대한 힘이며, 봉황대와 금관총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 겪고 감내해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발판으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지표를 세워야 한다. 필멸의 존재인 우리는 때가 되면 사라지겠지만 우리 삶의 흔적과 다짐은 영원히 남아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기를 바라며 오릉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