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천천히 읽기: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2010(2009).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충직 딜레마 (공동체주의)
*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하는가?
·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 공동체에 의해(또는 정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부당함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 역사적 부장 행위에 대한 사죄를 반대하는 사람들
-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 세대가 사죄해서는 안 되며, 사죄할 수도 없다. 내가 하지 않은 행위를 어떻게 사죄할 수가 있나?
* 도덕적 개인주의
- 사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한 행동만 책임질 뿐,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내 힘이 닿지 않는 일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생각을 기초로 한다. 이들을 ‘도덕적 개인주의’라고 부르자.
- 도덕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다면, 그것은 합의라는 행위, 즉 암묵적으로든 가시적으로든 내 선택이나 약속이나 동의의 결과다.
- 자유에 대한 이런 생각에는 집단적 책임 의식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 선택하는 자아
- 존 로크: 합법정부는 반드시 합의에 근거해야 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어느 누구도 이 상태를 벗어나 자신의 합의 없이 다른 정치권력에 예속될 수 없다.”
- 이마누엘 칸트: 자유롭다는 것은 자율적이라는 뜻이고, 자율적이라는 것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된다는 뜻이다(순수 실천 이성).
- 존 롤스: 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그것은 어려운 경제 사정에서 나온 선택이지,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사회를 원한다면, 우리의 특정한 이해관계와 이점을 접어두고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한다면 어떤 정의의 원칙에 동의하겠는가를 물어야 한다.
-> 이들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행위자를 특정한 목적이나 애착에 구속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하고 지금의 우리를 만든 역할이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다시 말해 독일인,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배제하고, 나를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라고 생각한다면, 역사적 부당함을 배상해야 하는 책임이 내게 있다고 말할 근거는 없게 된다.
*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 정보는 좋은 삶의 의미를 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고대의 정치 개념에서 탈피했다는 증거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통해 좋은 인격을 기르게 하고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 하지만 칸트와 롤스는 좋은 삶에 대해 특정한 개념을 강조하는 정의론은 자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러한 정의론은 타인의 가치를 강요함으로써, 인간을 자기 목표를 선택할 능력이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로 존중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 선택이 자유로운 자아와 중립 상태는 밀접하게 연관된다. 여러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중립적인 권리의 틀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이기 때문이다. 중립적 틀의 매력은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하고, 무엇이 좋은 삶인지 단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을 우리본성을 실현하고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론했다(목적론).
- 하지만 칸트는 자율적 존재로서 우리는 도덕법부터 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뒤에야, 즉 의무와 권리를 규정할 원칙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소 그 원칙에 맞는 선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정의와 자유
- 칸트와 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선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사람과 목적 또는 선의 적합성 문제로 본다.
- 하지만 롤스는 우리는 도덕적 행위자로서,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능력으로 규정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틀이 중요해 진다. “자아는 목적에 앞서고, 목적은 오직 자아에 의해 확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목적론적 신념이 제안하는 권리와 선의 관계를 뒤집어, 권리를 앞세워야 한다.”
-> 정의는 좋은 삶을 단정하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을 도덕적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지닌 자아로 본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 모여, 근대 자유주의의 정치적 사고의 특징을 형성한다.
* 공동체의 요구 (공동체주의자의 입장)
- 하지만 자신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로 여긴다면, 그래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도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칭찬하기까지 하는 다양한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우리 자신을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로 여기지 않는 한, 즉 내가 정하지 않은 도덕적 요구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가 경험하는 도덕과 정치에서 그 의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 공동체주의자들은 권리를 선에 앞세우라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목적과 애착에서 관심을 끊고 정의를 이성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 이야기하는 존재
-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자발적 존재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삶이란 특정한 통합이나 일관성을 갈망하는 서사적 탐색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완전한 삶, 내가 관심을 갖는 삶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여기에는 선택이 끼어들지만, 그것은 해석에서 나오는 선택일 뿐, 의지에서 나오는 절대적 행위가 아니다.
- “나는 개인이라는 ‘자격’만으로는 결코 선을 추구하거나 미덕을 실천할 수 없다.” 내가 속한 이야기와 타협할 때만이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
-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한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다.”
*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 자유주의적 사고에 따르면, 의무는 오로지 두 가지다.
① 인간이기에 생기는 자연적 의무: 인간을 존중하고, 정당하게 행동하며, 잔인한 행동을 삼가는 것 등의 의무. 합의라는 절차가 필요 없다(보편적).
② 합의에서 생기는 자발적 의무: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하며, 합의에 의해서 생긴다.
-> 인간을 서사적 존재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의무에 대한 자유주의의 설명이 너무 빈약하다. 왜냐하면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 국가, 민족의 구성원이자 그 역사를 떠안은 사람이며, 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의 자신은 충직과 책임이라는 도덕적 힘에 의지해 산다. 이것은 지금 우리 모습의 일부이며, 거기에는 당연히 도덕적 책임도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대 의무’를 고려해야 한다.
-> 도덕적 책임의 세 범주
① 자연적 의무: 보편적이고, 합의가 필요치 않다.
② 자발적 의무: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하다.
③ 연대 의무: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치 없다.
* 연대와 소속
- 우리는 같은 조건일 때 자신의 가족을 우선적으로 돕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 우리는 같은 조건일 때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를 위해 우선적으로 일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 어려움만으로 따지면, 중국의 실직 노동자보다 미국의 실직 노동자를 먼저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미국인은 어려움에 처한 동료 시민을 도울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역시 거의 없다.
-> 이것을 자연적 의무나 자발적 의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애국심이 도덕에 기초를 두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에게는 동료 시민의 행복을 추구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의무의 세 번째 범주인, 합의가 필요 없는 연대 의무나 소속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 가족이나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된다. 둘 다 우리 자신을 어딘가에 소속된 자아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한데 묶여 있으며, 우리를 도덕적 행위자로 만드는 서사에 연관된 사람들이다.
* 정의와 좋은 삶
- 연대 의식 없이는 삶을 살아가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도덕적 개인주의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합의라는 윤리로도 포착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연대에는 도덕적 힘이 필요하다. 연대는 우리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존재, 소속된 존재로 파악한다.
- 선을 고민할 때 우리 정체성의 근거지인 공동체의 선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면, 중립을 갈망하는 태도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