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0-80년대 한국의 문학 12> : 1980년대 - <민중의 시대>

작성자흐르는 등불|작성시간26.06.11|조회수26 목록 댓글 1

1980년대 - <민중의 시대>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민주화가 시작된 시기이며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분명하게 가시화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흐름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시대의 중심은 민중에서 시민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정치에서 문화로의 전환이 가시화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를 불연속적 체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1980년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명명해야할까? 분명 1980년대는 민중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지배적으로 통용되었다. 국가자본주의와 반공주의를 앞세운 권위적 정부에 의해 국가가 경영되면서 대다수 사회계층은 발전이라는 허울 속에서 억압받고 희생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1980년대는 바로 이러한 피박받는 대다수를 민중으로 호명하면서 변혁을 추구하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1980년대는 민중과 함께 특정한 정치적 의미의 목적론이 지해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모든 저항운동은 민족, 민중, 민주라는 이름으로 추구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권위적 정부가 반민족, 빈민중, 반민주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폭로하고 그것을 전복시키기 위한 투쟁이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다. 권위주의 정부는 해방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발전주의의 논리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을 침묵시켰다. 하지만 1980년의 광주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과 여전히 유지되고 있던 군부의 폭력에 대하여 저항의 강도는 강화되었고 변혁의 의지는 공고해져갔다. 그 속에는 국민을 대체하는 민중이라는 집단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은 결국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절정 속에서 군부정권의 양보를 얻어내고 직선제를 포함한 새로운 헌법을 관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의 열망은 민주세력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 권위적 세력에게 권력을 유지시켜 주었고 민주화의 더 큰 열망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형식적 민주화의 실현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정치적 변혁의 꿈을 더 이상 시도하기보다는 경제적 성장과 개인적 성공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 민중이 아니라 시민,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정치가 아니라 경제가 더 큰 삶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987년 민주화 혁명을 변혁의 실패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하였다. “2010년 초반에 이르러서는 1987년을 진정한 변혁의 시작이라기보다 또 다른 형태의 보수주의가 확고해지고 비민주적 정치가 심화하는 시기로 보는 시각이 좌파역사학자 사이에서 등장하였던 것이다.

 

1980년대 87년체제는 민주화의 성과로 자부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민중이 있음을 명확히하고 자랑스러워하였다. 하지만 87년의 민주화를 보수진영에서는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정치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마르크스적 개념을 보수적 학자들이 적용한 것이다.“1987년 한국경제를 북돋았던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현상이 민주화로의 대전환이라는 한국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산업화를 둘러싼 상반된 시각은 한국사회를 인식하는 대립된 관점의 충돌을 보여준다. “좌파는 산업화를 부패한 정치군사독재가 노동자를 수탈하고 탄압하는 도구와 계책으로 본다. 하지만 우파는 국가의 경제성장을 사회적 혼란과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사회를 방어한 힘으로 여긴다.”

1987년 이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보수세력의 문화적 반격이 한국사회에서 일정한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러한 흐름은 19876월 민주화 투쟁 이후 곧이어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민들은 이제 민중이라는 이름 속에서 진행되는 혁명적 변혁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기꺼이 수용하면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보수학자의 견해처럼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1990년대의 보수적 회귀는 민족를 중시하고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옹호하는 다양한 시도로 등장하였다.(박정희 신드롬이나 올바른 역사교과서와 같은 주장에서 이러한 시도를 발견하게 된다) 혁명에 대한 미국의 보수세력의 관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미국의 60년대 벌어진 인권과 자유운동을 정체성 정치, 정치적 올바름, 핵가족의 몰락, 성풍습의 왜곡, 시민의식의 쇠퇴, 법경시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의 반박은 현재의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 과거를 끌어들이는 니체의 기념비적 역사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니체는 기념비적 역사는 역사가들이 현재의 권력과 위대함에 대한 증오를 과거에 대한 극단적 찬양으로 둔감시킬 때 걸치는 망토라고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과거의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현재를 비난하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하여 하버마스는 경고한다. “우리는 주로 역사적 사건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방식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그러한 방식이란) 전통은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와 또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준 신념은 꼭 풀어야 할 문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다.”

 

분명 1980년대는 여전히 논쟁의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1980년대는 새로운 변혁을 이끌어내었고 인간의 자유와 인권의 중요함을 각성시켰다. 억압받는 약자들을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각성시켰고 변혁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동안 역사를 이끌었던 주류 세력이 아닌 역사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고 변혁의 시작은 누구든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민중의 이름으로 진행된 변혁의 움직임을 영역별로 살펴보자. 먼저 예술의 영역에서 변혁이다. 1980년대는 무엇보다도 기존 장르와 차별되는 의미로 민중미술’, ‘민중가요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던 시기였다.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발전논리의 근대화, 서구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중들의 구체적이고 절박한 삶의 실체를 재현하는 민중미술은 반공주의적이고 권위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대립적 시각언어로 탄생한 것이다. 민중미술이 최고로 발현된 시기는 1988년 미국 뉴욕에서 전시된 <민중미술 : 한국의 새로운 문화운동>이었다. 이 행사에 대하여 평론가 성완경은 이 전시회는 민중미술의 여러 가지 주제와 정치적 포부, 문화형식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1987-88년 절정에 이른 예술의 사회참여 운동정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민중가요 또한 변혁운동의 중심적 위치를 점유하였다. 집회와 운동이 벌어진 어느 곳이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어떤 공간이든, 그 곳에서는 자발적인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이루어지는 민중가요가 있었다. 민중가요은 현실비판적이고 체제전복적인 메시지를 음악이라는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대중음악의 표현수준과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혔고 제도권 매체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따라 수용되었다는특징을 가진다. 민중가요은 대중가요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한국영화를 장악한 에로방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다시 고려해야 한다. 에로방화가 건강한 사회의식을 파괴하고 한국영화 발전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비판이 주류였지만, 어쩌면 방화는 당시 군부정권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비판정신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현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평론가는 에로방화는 비윤리적으로 성공을 지향하는 사회를 문제화하며 관객에게 부와 명성, 커리어의 의미에 대해 성찰할 것을 촉구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에로방화에 대한 평가도 지나친 부정적 측면에 대한 지나친 비판에서 벗어나 조금은 시대적 상황에 따른 복합적인 접근도 필요한 것이다. “에로방화는 1980년대에 유행과 정책이라는 국내외 영화제작환경이 관람객의 높은 관심과 맞아떨어지면서 독보적으로 영향력있는 장르가 되었다. 비록 민중사상, 페미니즘과 긴밀한 친연성이 있었으나, 에로방화는 국가주도의 군사독재 개발주의에 항거하기보다는 물러나 있었다. 결국 에로방화의 대항발전주의는 때로는 진보적이었고 때로는 퇴행적이었다.”

 

1980년대의 중요한 변화는 사회적 약자 집단이었던 노동자와 여성에 대한 자각과 인간적 권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요구의 일상화였다. 특히 노동자들의 글쓰기 운동은 그들의 인식을 확장시켰고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함축시켰다. 대학생 위장취업자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노동자와 대학생들은 계급적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1980년 말에서 1990년대 초는 노동자 문학회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며, 동시에 계급적 민족·민중·민주 운동의 의식적 이념과 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1980년대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은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이었다.(1970년대 여공중심의 노동운동도 8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 중심의 남성노동운동으로 중심점이 이동하였다) 여성들은 주변화되었고 도구적 성격이 강하였다. 거대한 변혁 담론 속에서도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개혁움직임은 적었다. 민주주의 성취 속에서도 여성의 권익과 권리는 무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움직임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시도가 확장되었다. 특히 1985년 발간되기 시작한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삶이 곧 운동이다.’라는 기치를 통해 여성의 인권과 구체적인 가정의 문제를 변혁의 중심으로 이끌어내었다. 여성해방문학의 시작이다. 여성해방문학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여성을 억압하고 비하시킨 사회구조와 시대적 이데올로기가 지니고 있는 신비와 은폐성을 과감하게 폭로하는 한편 종속과 소외를 정당해왔던 관습과 제도를 인간해방적 차원에서 비판하는 고발문학또는 기존 체계 안에서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억압을 고백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철저히 폭로하고 증언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공간적 부조리를 사실 그대로 인식해 나가는 데 있는 고발문학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집합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위되던 주체성을 인권을 지닌 개인/시민의 주체성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혁은 사회적 외형의 변화만이 아니다. 그 속에 존재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렇듯 민중이라는 이름 속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았던 존재들의 권리 회복과 권익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분명 민주/민중/민중 이라는 목적론적인 방향 속에서 거대담론 중심으로 시도되었지만 그 속에서는 다양한 존재들의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관심 또한 중시되었던 것이다.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는 자유와 평등의 일치 등이 1980년대의 중요한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한 목표가 정당하고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억압받고 차별받은 불평등한 존재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과거의 명시적인 차별과 정치적 억압은 조금씩 완화되었고 다른 형태의 교묘한 탄압으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좋아진 물질적 조건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적 욕망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가 허용된다면 지금부터는 개인적 자유를 바탕으로 한 욕망의 실현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분열되었고 축소되었고 점점 은폐되었다. “1980년대에 어느 정도 목표한 바에 도달하면서 민중투쟁의 성취와 의미는 회상과 가지성찰이라는 또 다른 영역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시대를 성찰하는 작업은 그 시대가 가졌던 꿈의 가치와 의미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비록 다양한 문제점과 경직된 관점에 몰입되었음에도 그 시대는 목표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지배했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진정성이 진실로 교류되었던 시기였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신념은 현재의 문제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하버마스의 말처럼 80년대에 대한 낭만적인 회상은 단순한 기억의 복원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인간에게 요구되고 추구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담겨져있다면 그 시대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한 접근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의미있는 작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여진히 지니고 있다. 아직도 그 시대에 대한 분석과 종합에 매달리는 것은 그 시대가 가졌던 특별한 힘이 있다는 생각이며 그 힘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비록 실패할지라도 개인적으로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가 나에게는 여전히 도전과 희망의 가능성을 꿈꾸웠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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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보 | 작성시간 26.06.18 new - 민중, 민주, 시민, 시대, 책임,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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