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0-80년대 한국의 문학 13> :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작성자흐르는 등불|작성시간26.06.13|조회수21 목록 댓글 1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1. 일명 대체소설이라는, 가상의 역사를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작가의 희망 그리고 의지를 표명한 복거일의 비명을 찾어서은 잘 꾸며진 서사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생동성 그리고 강렬한 변혁의 의지가 살아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은 일제의 통치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가정 속에서 전개된다. 조선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일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의 통치 속에서 말과 글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조선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이류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소설 속 중심인물인 기노시다 히데요는 중견 기업의 직원으로 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틈틈이 시쓰기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추적하였고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과거 조선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2.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것과의 조우, 그것은 개인적 의지로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힘으로 그를 장악한다. 시를 쓰고 있다는 점이 우연하게 발견한 <조선시선집>의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었고 그 속에 담긴 문학적 힘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한 조선의 저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발견은 과거의 조상들이 우리의 문화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며 자살했다는 점과 수많은 선조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새롭게 찾게 된 조선 문자와 문화의 탁월성은 그로 하여금 현실의 상황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가졌던 민족이 왜 가나와 같이 불편한 그리고 한자를 섞어쓰지 않으면 제대로 뜻이 통하지도 않는 글자를 가진 내지인들에게 정복되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역사를 잃고, 말과 글을 잃고, 심지어는 이름까지 잃었나? ?”

 

3. 어쩌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승진에 관심을 갖고 일상의 평화를 추구했을 기노시다에게 다가온 운명적 만남은 그를 완벽하게 변화시킨다. 비록 조선의 글과 책을 찾는 소소한 일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일본에 의해 조선의 문화가 말살돼버린 상황에서 그의 행동은 국가의 안보와 질서를 파괴하는 엄청난 시도였던 것이다. 소설 속 조선문화와의 만남은 우연하게 한용운의 시와 함께 그가 남긴 의발의 계승자로 연결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차 조선인의 문제는 개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는 모두의 힘으로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4. 일상에서의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추적은 결국 그의 삶 자체를 격변시킨다. 조선문화를 추적하는 일은 일본 공안국에 의해 발각되고 사상범으로 취조까지 받게 되며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일본인 소좌에게 아내가 성적으로 조롱받는 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하나의 촉발이 다른 폭발로 연결되면서 그의 일상을 파괴하였고 가정까지 무너지면서 이제까지의 삶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영역이 되고 만 것이다. 기노시다는 결국 아내와 자신까지 모욕하는 일본인 소좌를 살해함으로써 완전하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그것은 역사적 격랑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특별하면서도 조선인으로서는 보편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행위였던 것이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조선인들에게 가해진 차별과 불이익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결국 조선의 독립이 없으면 회복될 수 없는 필연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5. 기노시다의 선택은 일종의 성장소설의 틀 속에서 전개되는 듯하다. 보통의 성장소설이 개이에게 닥친 실존적 고뇌와 환경에 대한 부적응 속에서 자아를 발견해 나가듯이, 비명을 찾아서의 기노시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모순과 불의에 대한 회의 속에서 현실에서의 변혁을 꿈꾸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개인적 과제보다도 더 큰 민족과 국가와 관련된 역사적 환경 속에서의 깨달음과 변혁의 의지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그것의 근본적 구조는 동일하다.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가 선택하고 결정한 새로운 변화의 길인 것이다. 이문열의 그해 겨울속 명준이나 김성동의 만다라의 법운스님같이 진실을 향한 출발인 것이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비참한 도망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렀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망명객이다. 내가 나일수 있는 땅을 찾아가는 망명객이다.” 기노시다는 길을 걸을 걸을 것이다. 그가 걷는 길은 분명 험난하고 어려움이 동반하는 위험한 길이지만, 그는 그 길을 걷는 의미를 안다. 기노시다의 탐색은 청춘의 고뇌가 결정짓지 못한 길을 찾은 길걷기이다. 비록 외형적으로 유사할지라도 그 길은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자아의식이 투영된 결단인 것이다.

 

6. 기노시다의 결단은 단순한 발견에서 형성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현실의 모순과 내지인들로부터 받은 조선인들의 좌절과 분노가 표출된 결과이며. 그런 분노와 함께 현실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문제점에 대한 폭로가 이어진다. 현실에 대한 폭로는 흥미롭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설정 속에서 현재의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산업개발의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공해문제, “아라까와는 깨끗하다고 자랑하면서, 조선에서는 경제발전을 생각해야지, 공해문제를 거론할 때가 아니라고 하니 (....) 공해산업은 모조리 조선땅으로 들여오는 판이니...”, 억압적인 통치구조의 문제점. “독재정권을 안정시키는 경직된 사회구조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내부적으로 강력하고 안정된 듯이 보이는 정권들이 외부의 압력에 허망하도록 쉽사리 굴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편향되어 있는 사람들의 자민족 우선주의.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지식인이 만주국은 일본의 이익선이라고 주장하고, 아직 사회에 나가지도 않은 학생이 고문시험이 연기됐다고 선의의 독재자따위 얘기를 하고.”

 

7. 일본 식민지 사회에 대한 비판은 바로 1980년대 한국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국가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을 위해 철거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폭압적인 권력의 민낯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민중적 혁명과 급격한 체제전환 그리고 성급한 변화는 아니다. 시민들의 주장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서술도 그러한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선지 겨우 한달이 되었는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라고 요구하니, 많은 것을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정부는 또한 많은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그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사회에서 탈출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적 가치와 문화적 진실에 대한 욕망에서 추동된 것일지 모른다.

 

8. 그는 자신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한 사람이 자기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에 알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넓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실체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변화는 영국과 투쟁하던 에이레(애란)의 사례 속에서 그 정당성을 갖게 된다. “애란의 내정자치나 독립은 애란 사람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수단이었을 따름이다. 비록 유일한 수단이긴 했지만 그들은 자유를 찾아 사람답게 살기위해 힘을 합쳐 싸운 것이었다.” 기노시다의 변혁은 분명 조선의 독립과 문화의 회복을 향한 숭고한 결단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적 역량 그리고 그러한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상세한 추적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결단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그러한 결단은 아름답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던 모든 문제해결의 시작은 개인의 오랜 성찰 속에서 탄생한 결단에서 출발한다. 기노시다의 출발은 80년대 인간들이 지녔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자율적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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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보 | 작성시간 26.06.18 new - ""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것과의 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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