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0-80년대 한국의 문학 14> : 강석경 <숲 속의 방>

작성자흐르는 등불|작성시간26.06.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강석경 <숲 속의 방>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고뇌를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주인공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김성동의 만다라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 있었다. 하지만 80년대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치열하게 충돌하면서 젊은이들을 혼돈에 빠뜨렸던 시기였다. 그 혼란은 여성들에게도 큰 파도처럼 닥쳐왔다. 기존의 가치와 정치적 체제에 대한 도전은 언제든 기성세대에게는 불안의 대상이었고 그것에 대한 반발과 탄압은 강했다. 거기에 대해 여성들의 반항은 반항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무시한 채 윤리적 잣대나 전통적 도덕에 의해 더 가혹하게 공격받기 일 수 였다. 요컨대 젊은 여성들은 젊은 남성들보다도 더 큰 장벽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80년대 청춘의 고뇌를 여성적 시각으로 묘사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1985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강석경의 <숲 속의 방>이다. 이 작품은 부유한 중산층의 젊은 여성의 방황과 좌절을 통해 그 시대 청춘이 직면해야 했던 삶의 문제를 훨씬 더 세밀한 심리적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인물은 불문과에 다니는 소양이란 인물이다. 그녀는 약간은 속물적인 아버지와 교양을 갖추었으나 이기적인 어머니 그리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할머니와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충분한 물질적 지원과 혜택 속에서 대학에 진학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박을 하거나 부모와의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의 시작은 가족들에 대한 불신이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상실한 채 돈과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어른들의 모습은 그녀에게는 부르주아지의 가장 비열한 초상이었다. 가족에 대한 불신 속에서 그녀는 세상과 불화한다. 그녀의 두 친구를 통해 소양은 전혀 상반된 세계를 만난다. 하나는 80년대 학생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녀는 위장취업을 불사하면서 사회적 정의에 헌신한다. 그녀의 믿음은 공고하다. “대학에 들어올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는 데 얼마 뒤 내 속에서 발견했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의라고다른 하나는 감각적 쾌락에 몰두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친구이다. 유흥가를 전전하면서 남성들과 어울리면서 젊음을 탕진하는 인물이다.

 

소양은 두 친구 모두와의 관계 속에서 어느 쪽에도 자신이 어울릴 수 없음을 발견한다. 사회적 정의도 감각적 쾌락도 그녀에겐 어떤 위안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면의 불안은 그녀를 끊임없이 떠돌게 만들었고 사귀는 남자에게도 어떤 확신을 얻지 못하는 지극히 소외된 존재로 살아간다. 이런 방황은 결코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 아버지는 배불러하는 투정이라고 비난하며, 어머니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무시한다. 다만 그녀의 언니인 화자인 나(미양)만이 그녀의 상처를 추적하는 것이다.

 

미양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했고 나름 주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어느 날 한 남성에게 겪은 끔직한 폭력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꾸게 만들었고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미양은 자신이 겪은 상처 때문에 동생 소양의 방황을 이해하려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미양은 은행에서 만난 평범한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미양이 결혼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소양은 자신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일기를 남기고 자살한다. “나는 섬이야. 어디와도 닿지 않는 함정같은 섬이야.”

 

1980년대 우리는 당시 젊은이들에 대한 고정적 관점을 갖고 있다. 사회비판적이고 변혁운동에 신념을 바치는 투사적 기질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 그런 투쟁의 선봉에 선 많은 젊은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 방황하고 결단하지 못하는 혼돈 속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사회적 현실은 문제투성이지만 그것을 위해 자신의 실존 그 자체를 헌신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은 소양의 두 친구를 상징하는 정의와 쾌락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절실한 존재의 문제였을 것이다. 소양의 언니 미양 또한 수많은 갈등 끝에 결혼이라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추상적인 가치만으로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미양은 소양의 죽음 앞에서 다음가 같이 쓸쓸하게 읊조리는 것이다. “바보같이 세상 밖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다니. 네가 적당히 타협하기만 한다면 땅에 온몸을 문지르고 다디며 피흘리지 않아도 좋을텐테. 청춘은 쇠사슬이 아니라 날개일텐데, 소양은 끝내 안식의 방을 찾지 못했다. 숲에도 방이 없었다. 숲에는 혼란가 미록 있을 뿐

 

소양의 좌절과 죽음은 더 큰 공허를 만나게 한다. <만다라><젊은날의 초상>의 방황이 최소한 현실 속에서 문제를 찾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 것과 달리. 소양은 생을 마침으로써 젊음의 방황을 종결짓는다는 점은 어쩌면 방황에 대한 주위의 편견도 여성에게 훨씬 더 가혹한 짐을 지운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떤 신념도 어떤 결정도 때론 완전한 본인의 자율적 결정에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여성의 반항은 자율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더 심각하고 공격적인 편견과 왜곡 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중첩된 폭력의 결말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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