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0-80년대 한국의 문학 15> :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작성자흐르는 등불|작성시간26.06.20|조회수22 목록 댓글 0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1. 어쩌면 인간의 삶은 지극히 환경적 요소에 종속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희망도 절망도 추구하는 목표도 결국 그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폭풍우같은 힘 앞에서 사람들의 선택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의 기억 또한 그 시간을 다른 나이 때에 겪은 사람들에게 각각의 형태로 각인되었으며, 엄청난 영향력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궁극적인 삶의 태도를 결정지었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10살 전후로 전쟁을 겪은 후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삶의 편린을 자서전적 요소를 활용하여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속 화자인 길남이는 작가의 분신이자, 어른이 된 작가의 어린시절에 대한 사후적 기록의 대상이다.

 

2. 소설의 배경은 전쟁 후 대구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들은 전쟁의 아픈 기억에 시달리며 현재의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누구도 전쟁이 가져온 공포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 이념, 증오의 기억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옥죄이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살아가기 위해 냉정하고 억셀 수밖에 없고 작은 이익을 위해 서로 다투는 사람들이지만 그러한 삶의 비극 때문에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쟁이 우리네 인생을 망쳤다고 말을 맞춘 듯 두 사람은 전쟁을 증오했고, 그래도 이 간난의 세월을 이기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위로했다.”

 

3. 소설 속 주인공 길남이가 겪어야 했던 전쟁의 아픔은 가족과의 이별, 배고픔과 가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외로움과 고통은 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 어머니는 장남인 주인공을 강하게 키운다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책임을 요구했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가혹한 처벌을 행하였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강해야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자의 노력에도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어머니에 대한 인상은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바뀐다. “전쟁 와중에서 겪은 쓰라린 체험은 어머니를 그렇게 정없이 메마른 여자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결국 화자는 어머니를 계모로 인식하고 어머니로부터 탈출을 꿈꾸게 된다. 모든 희망도, 가족과의 인정도 사라진 인생의 절대적 허무를 소년적 감성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4. 화자의 각성은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일종의 삶의 허무를 자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삶의 부조리에서 나타난 허무가 아닌 어머니라는 이상적인 존재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이상의 상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따르고싶은 존재의 상실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허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아픈 기억은 그가 청년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삶의 의미를 비극적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부정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입대영장을 손에 쥐자, 입대·제대·직장구하기·결혼, 그래서 처자식 먹여살리기의 뻔한 내 앞길이 떠올랐다. 나는 그만 암담해져 빨리 늙은이가 되어 내게 기대를 거는 모든 이들의 눈길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으로 남고 싶었다.”

 

5. 저자는 어린 시설의 아픔과 고통을 솔직하게 진술하면서 과거의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지 모른다. 그토록 가슴을 메마르게 만들었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시간들의 흔적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자장 속에서 인간들이 견뎌내야 했던 슬픈 기억이며, 고통의 순간에서도 생존해야했던 존재의 생명력에 대한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아픔도, 냉정함도, 무너짐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각자의 어쩔 수 없는 대응방식이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을 애정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가난은 절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는 길로, 마당이 깊었던 집의 남루한 삶은 언젠가 언덕 위의 집처럼 푸른 하늘과 더 가까이 살고 싶은 사람들의 꿈이 서렸던 집으로 그리고 싶었다.”

 

6. 인간에게 닥쳐오는 실존적 고민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온다. 물질적 향략 속에서도 삶의 절대적 허무를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정상적인 인간관계의 파괴 속에서 경험한 냉혹함으로부터 파생한 실망감은 더욱 큰 강도로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외부의 힘이 우리를 지배할 때 그때 우리들의 선택은 지극히 왜소해지고 살기위해 위축된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 아픔의 순간을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현재를 말해주는 방증이 될지 모른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고뇌라는 사치스러운 생각도 불가능한 시간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신의 비극을 극단적인 아픔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역사의 혼돈을 겪은 사람들의 기록은 일상에 작은 일에도 고통을 과장하는 현상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구하게 하며, 자신의 주관적인 아픔을 넘어서, 고통과 비극을 정직하게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누구든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지만,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너무나도 편향된 인간의 이기심은 고통에 대한 냉정한 인식을 통해 조금은 축소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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