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30 - 260605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 박훈 - 21세기북스
오래 전에 ‘조선통신사’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다시 읽었다. 일본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질 만한 내용도 들어 있었지만 임진왜란 직전에 파견된 통신사의 서인 정사와 동인 부사의 의견이 당파의 정치적 대립으로, 서인 정사는 관찰결과 “일본이 반드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동인 부사는 정 반대의 의견을 냄으로써 조정이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대목에는 몇 번이고 눈이 갔다. 일본인들을 무식하다고 무시하고 우월감으로 으쓱대며 휴가차 놀러 간 통신사였던가? 역사 드라마를 보면 임금 앞에 나란히 서서 한 쪽에서 “되옵니다”라고 긍정적으로 의견을 내면 마주보고 있는 다른 한 쪽에서는 정책적으로 “아니되옵니다”라고 무조건 반대를 한다. 그 중요한 통신사가 일본의 침략 준비에 대한 숨겨진 모습을 보고서도 국가의 안위는 아랑곳없이 당략에 따라 ‘되옵니다’와 아니되옵니다‘만 읊고 있었으니 나라가 온전할 리 있었겠나. 훗날 유성룡이 부사에게 "정말 일본의 침략 준비가 없을 거라고 보았는가?"고 묻자 그는 "나도 어찌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정사의 말이 너무 장황하고 백성들이 당황할 것 같아 이를 진정시키려고 그리 말한 것뿐이다"라고 진심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참 황당한 진심이다. 나라의 안보문제가 달려 있었는데 다른 당이라고 다른 말을? 그런데 그 두 줄서기의 ’됩니다, 안됩니다‘의 모습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첫 번째 떠오른 연관성이었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불가분의 정책이었을 것이라고 크게 이해하면 좋겠지만 어딘가에 그의 권력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구석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에 의하면 천황에게서 통치권을 앗은 일본의 막부는 대원군과 같은 쇄국을 하였지만 그러면서도 1600년대 초부터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에게는 상관 설치를 허락하고, 비단 많은 통제가 있었지만, 그곳을 통하여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서양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였으며 선진화된 서양의 무기나 군대에 대한 제도도 공부하였다. 이는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소개는 대원군보다 훨씬 이전에 같은 쇄국정책을 하였지만 대원군과는 관념이 달랐던 쇄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메이지유신으로 쇄국이 풀리면서 많은 인재들이 유럽으로 유학을 하고 정부대표로 미국을 비롯하여 당시 유럽을 이끌어가던 영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공부하고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그래서 일본이 아시아의 유럽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아갔으며 그 때에도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겠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 때까지도 쇄국을 하고 있었다는 데 대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었다고 동조만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라에서 침략하며 가져온 신식 무기에 우리가 어찌 대항할 수 있었겠으며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친들 무슨 다른 결과가 있었겠는가!
이 책은 메이지유신의 초석을 놓은 4명의, 비록 하급에 속했던 사무라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기술한 책이다. 당시 일본은 이들이 선진된 생각으로 유신을 단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여러 분야에서 개화가 되어가고 있었다고 하여도 틀린 생각은 아닐 듯싶다. 이들이 유신을 단행한 시절에 우리나라에도 개화를 열망하고 행동하고 싶었던 젊은이들이 있었을 테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우리가 쇄국을 계속하고 있은 무렵에 일본은 정벌을 포함하여 그들이 손을 대고 싶은 나라들이 속한 세계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책에 적힌 나라들 속에는 2차대전 중 그들이 침략하고 지배한 아시아 나라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고 그 계획을 실천한 중심에 일찌감치 영국 유학을 실행한, 나이 먹은 분들에게 익숙한 이름,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이 있었다. 이 책의 말미에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야 픽션이 많이 가미되어 있었겠지만 사무라이를 지키려한 그 주인공의 정신이 왜곡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부분을 읽으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어령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어제와 똑같은 발상은 감동이 없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발상이 찬란한 세상을 만든다.”
이제 우리는 일본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농담이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처음엔 일종의 열등의식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렇게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어령교수의 말이 실천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회장이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당시엔 대단히 민감한 말을 남긴지도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지금 얼마나 변했을까? 아직 어제와 똑 같은 발상 속에 감동 없이 보내고 있는지, 기업은 일류를 넘어서려하고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한 번 돌아보게 된다.
2026년 6월 5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