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인과 우리 민족과의 연관성
1.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 노래는 우리 반만년 역사의 기록이자, 세계의 역사를 전한 노래(lore)입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그 동안 우리들은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 언제부터 불리워졌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노래의 뜻이 밝혀졌습니다. 이 노래의 뜻은 소리 그대로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입니다. 이것은 "아라리가 아리랑과 쓰리랑을 났네."·"아리랑과 쓰리랑은 아라리에서 태어났네."로 해석됩니다. 이것을 세계 고대사에 접목시켜 해석하면 "아리아 인(Aryan)과 수메르 인(Sumerian)은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Aral Sea) 일대에서 태어났고, 이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해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다."라는 역사가 밝혀집니다. 믿기 어려운 해석이지만, 역사학계는 이러한 역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리아인과 수메르인의 탄생
역사 시대 이전에 있었던 종족들의 이동 역사는 잊혀졌거나 신화로 바뀌면서 역사성이 모호해졌기 때문에 알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의 유물·유적들에는 문자의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떤 종족들이 남겼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적 자료로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 시대 이전에 이루어졌던 종족들의 이동 역사를 밝히기 위해서는 언어학적으로 역사성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기존의 관념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 시대 이전에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 일대에서 거대한 집단으로 성장했던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세계로 이동하여 여러 나라의 고대 문명을 창건했기 때문에, 언어학적인 추리로서 잊혀진 역사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두의 주장처럼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한반도로도 이동했다면, 이들의 언어에서 파생된 어휘들이 우리말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이 사용했던 언어의 원형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말의 어떤 어휘들이 아리아 어와 수메르 어에서 기원했는지를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가 사실이라면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말의 뿌리가 수메르 어와 아리아 어라면,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이주해간 지역에 남아 있는 신화나 고대사 속에 있는 지명·인명·국명 등은 우리말과 친근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갖고 세계 여러 나라의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을 우리말과 상호 연계시켜 해석해 보면, 전혀 뜻이 통하지 않던 여러 지역의 전통 어휘들 사이에 뜻이 상통하며 역사성이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과의 상호 연계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들 지역의 고대 문명들을 창건한 종족들과 우리말의 뿌리가 되는 언어를 사용한 종족들이 같은 언어권에서 출발했다는 뜻입니다.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의 원주지 문제는 세계사가 해결해야 할 고대사의 수수께끼입니다. 이 두 문제는 우리의 수수께끼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가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은 아랄 해 일대에서 태어났다."로 해석될 때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역사 시대 이전에 아랄 해 일대에서 거대한 집단이 형성되었을까요?
지구의 기온은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서서히 상승하여 기원전 5000년경에서 기원전 3000년경 사이에 가장 높아졌다가 그후 떨어지기 시작하여 기원 원년경부터는 지금과 비슷해졌다고 합니다. 기온이 가장 높았던 기간에는 빙하가 많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졌었고, 습도가 높아 비가 많이 내렸을 것입니다. 이 기간을 홍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홍수 시대에는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오늘날 건조한 기후로 인하여 사막이 발달된 대부분의 지역들은 거대한 초원이었을 것입니다. 홍수 시대에는 홍수가 자주 일어나 강 유역에서는 농경이 어려워 식량 부족으로 집단 문명이 발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원에는 초식 동물들이 많아 식량이 풍부하여 집단 문명이 발달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 다리아(Amu Darya)와 시르 다리아(Syr Darya) 두 강 유역은 지금은 사막이 발달되었지만, 홍수 시대에는 비가 많이 내려 거대한 초원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은 빙하기가 끝나기 전에는 추위로 겨울을 이겨내기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큰 집단을 이루고 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기온이 차츰 상승하고 생활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곳은 집단 거주 지역으로 적합한 지역으로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초원이 발달하여 초식 동물들이 풍부했고, 봄에 고산 지대에서 눈 녹은 물로 인해 큰 홍수가 난 뒤 여름에는 이보다 더 큰 홍수가 나지 않아 두 강 유역과 델타 지역에서 농경이 가능했고,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바다가 있고, 건조한 날씨로 수인성 전염병의 발생이 적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으로 다양한 종족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하여 큰 집단이 형성되면서, 다양한 종족들의 다양한 원시 문명들이 융화되어 새로운 문명이 태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문명을 저자는'알알 문명'이라고 이름했습니다. 동쪽에서 이주해 온 종족들은 시르 다리아 강을 중심으로 모여 하나의 언어권을 형성했고, 이들이 수메르 인일 것입니다. 서쪽에서 이주해 온 종족들은 아무 다리아 강을 중심으로 모여 하나의 언어권을 형성했고, 이들이 아리아 인일 것입니다. 이 두 집단의 공존과 대립 속에서 큰 집단에 어울리는 큰 집단을 위한 새로운 종교와 언어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이 세계 최초의 고대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세계 4대 고대 문명이 발생한 지역들은 홍수 시대에 홍수가 자주 일어나 수메르 인의 원주지보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었다는 뜻입니다. 수메르 인들은 기존의 문명을 파괴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문명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리아 인과 수메르 인의 원주지로 볼 수 있는 아랄 해의 두 강 유역은 당시 지구상에서 집단 문명이 가장 발달된 곳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아인과 수메르인의 이동
이들이 이동을 하게 된 원인은 지구 기온의 변화였을 것입니다. 상승했던 기온이 떨어지면서 강우량이 줄어들어 아랄 해 일대의 초원이 사막화되기 시작하면서, 초식 동물들의 수가 감소되어 식량 자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기온이 높았던 시절에 아시아의 북방에서 살던 알타이 어계 종족들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아랄 해 일대로 이동을 시작하게 되어, 종족들 간의 충돌이 잦아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랄 해의 두 강 일대가 알타이 어계 종족들의 중심지이지만, 이들은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을 밀어내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이동은 어느 일정 기간에 어느 일정 지역으로 한두 차례 이루어지고만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으로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종족들 간의 싸움이 잦아지면, 그때마다 종족 이동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이동의 역사는 3단계로 분류할 수 입습니다. 제1차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시작된 수메르 인의 대이동입니다. 제2차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된 아리아 인의 대이동입니다. 제3차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시작된, 아리아 인의 한 분파인 슬라브 족의 대이동입니다. 수메르 인들은 세계 4대 고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집트 문명·인더스 문명·황하 문명을 창건한 주역이 되었습니다.
산동 반도·만주·한반도 일대의 고인돌들은 수메르 인이 남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리아 인들은 유럽·인도·이란 쪽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동쪽으로도 이동하여 황하를 지배하게 되었고, 일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원전 2000년경 조선(朝鮮)을 건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202년 한(漢)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남방계에게 밀린 황하 유역의 아리아 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이동해 고구려·백제·신라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수메르 어와 아리아 어는 한국어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2. 고인돌은 수메르 인의 유적이다.
고인돌은 조장(鳥葬) 풍습을 갖고 있었던 수메르 인들이 세계로 이동하여 세운 제단이자 무덤입니다.
고인돌(dolmen)이 발견되는 지역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영국, 서유럽,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중앙 아시아의 남부, 파키스탄, 인도 남부, 동남 아시아, 중국의 산동 반도와 남만주, 한국, 일본의 규슈 등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황해도 은율에 있는 탁자 모양의 고인돌과 형태가 비슷한 고인돌이 영국의 웨일즈에도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와 서쪽 끝 섬에서 살던 선사 시대의 고대인들이 동일한 장례 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나 풍습의 전파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대인들의 장례 풍습은 당시의 법이었던 종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사회적인 합의이었기 때문에, 보수성이 강해 쉽게 전파될 수가 없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은 북쪽에 분포되어 있는 북방형과 남쪽에 분포되어 있는 남방형으로 분류됩니다.
북방형은 높은 탁자 모양이고, 남방형은 받침돌이 낮은 바둑판 모양입니다. 북방형 고인돌들은 한국의 것이나 영국의 것이나 만들어진 시대가 대체로 비슷합니다. 이것은 북방형 고인돌들을 만든 종족들이 비슷한 시기에 동서로 이동해 정착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남방형 고인돌들은 남쪽으로 갈수록 만들어진 시대가 늦어지고 받침돌이 낮아집니다. 이렇게 시기가 늦어지고 형태가 변한 것은 고인돌의 장례 풍습을 갖고 있었던 종족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동쪽과 서쪽으로는 이동 속도가 빨랐고 남쪽으로는 이동 속도가 느렸던 이유는 기후·바다·지형·원주민의 인구 밀도 등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입습니다.
동쪽과 서쪽은 기후가 비슷하여 적응하기 쉬웠고, 원주민의 수가 적어 저항이 적었고, 바다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이동했다고 볼 수 입습니다. 그러나 남쪽으로의 이동은 기후가 너무 덥고, 숲이라 적응이 어려웠고, 숲 속의 원주민들을 지배하기가 어려웠고, 바다와 일찍 접했기 때문에 이동 속도가 느렸다고 볼 수 입습니다. 고인돌들의 분포 규모와 조성 시기 등으로 볼 때, 역사 시대를 전후한 시기에 아랄 해 일대에서 고인돌을 만드는 장례 풍습을 갖고 있었던 거대한 종족 집단이 동·서·남쪽으로 대이동을 했다고 볼 수 입습니다.
어떤 종족이 고인돌을 만들었을까요? 세계 4대 고대 문명이 남긴 국명·지명·인명 속에 있는 전통 어휘들을 우리말과 상호 연계시켜 해석해 보면 뜻이 상통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이 문명들을 창건한 종족들과 한반도에서 고인돌을 만든 종족은 기원이 같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고대 문명들이 남긴 언어의 자취들을 해석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것입니다.
3. 수메르 인이 세계 4대 고대 문명을 창건했다.
이집트로 이동한 수메르인
이집트 문명이 남긴 전통 어휘들의 기원은 수메르 어입니다. 이집트를 지배했던 수메르 인들은 기원전 3100년경 원주민의 세력에 밀려, 그 일부가 아프리카의 중서부에 있는 니제르 강과 세네갈 강 유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나일(Nile)'의 뜻은 무엇일까?
'나일'의 어원은 우리말의 '내'와 같습니다. 이집트의 나일(Nile) 강과 시나이(Sinai) 반도, 유럽의 라인(Rhein) 강과 세느(Seine) 강, 아프리카 중서부의 니제르(Niger) 강과 세네갈(Senegal) 강, 한국의 낙동강과 섬진강, 이 이름들 속에는 하나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시나이'를 시나이 반도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계절적인 강인 와디 알아리쉬(Wadi al-Arish)의 옛날 이름이었다고 볼 때, 각 지역의 두 강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강들입니다.
큰 강들의 이름들인 나일·라인·니제르·낙동강은 '나(na)'로 시작됩니다. '라인(Rhein)'은 '나인'과 같다고 볼 수 있고, '니제르(Niger)'는 '나이지리아(Nigeria)'와 같이 '나이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작은 강들의 이름인 시나이·세느·세네갈·섬진에는 'ㅅ(s)과 ㄴ(n)'의 소리가 있습니다. '섬진(蟾津)'의 '진(津)'은 '나루 진'이므로 '섬진'은 이두로 '섬나'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강들은 큰 강들끼리, 작은 강들은 작은 강들끼리 이름이 이렇게 비슷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연일까요? 물론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라이·나이'는 우리말의 '내'와 어원이 같고, '시나이·세느·세네'는 우리말의 '시내'와 어원이 같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시내'는 '내'보다 작은 물줄기입니다. 이것은 한 언어권의 종족들이 이들 각 지역으로 각각 이주하여 큰 강을 '나이'로 작은 강을 '시나이'로 불렀기 때문에, 이런 이름들이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통 어휘들과 전설이 이들 각 지역에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동쪽의 요르단 강 유역에 있는 '갈릴리(Galilee)'의 '갈', 세느 강과 라인 강 일대를 이르던 옛 이름인 '골(Gaul, Gallia)', '세네갈'의 '갈'은 우리말의 '고을'과 어원이 같습니다.
우리말의 '고을'은 그 지역을 관할하는 관청이 있던 곳을 이르던 말입니다. 프랑스 어의 '골(Gaul)'은 아리아 어에 속하는 켈트 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수메르 인들도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네갈'과 '나이저'라는 이름을 남긴 종족은 수메르 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만주에서 살았던 종족의 이름인 '속말말갈(粟末靺鞨)'의 뜻은 '수메르 모니 고을(Sumer Muni Gaul)' 즉 '수메르 인들이 사는 고을'입니다. 갈(鞨)은 골(Gaul)과 어원이 같습니다. '모니(muni)'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로 성인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Sakyamuni)'는 사캬 족의 성인이라는 뜻입니다. '모니'라는 말은 서울 '몽촌 토성'의 '몽', '몽골'의 '몽',강화도 '마니산'의 '마니'와 어원이 같습니다. 이것은 수메르 인들이 이주지에서 자신들을 '모니' 즉 '성인'이라고 칭했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도시 이름인 '뮌헨(Munich, Munchen)'의 앞 글자 '무니(Muni)', 영어로 '지방 자치의'라는 뜻인 '뮤니시플(municipal)'의 '뮤니(muni)'는 성인이라는 뜻인 '모니(muni)'와 어원이 같습니다. '모니'들이 모여서 살던 곳이 '뮌헨'이었고, '모니'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던 것에서 '지방 자치'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강원도 춘천시의 옛날 이름인 '우수주(牛首州)'의 '우수(牛首)'는 이두로 '소머리'입니다. '우수'는 '우두머리'의 '우두'와 어원이 같습니다. 우리말의 '우두머리'는 '우두(牛頭)'와 '머리'가 합쳐진 말입니다. '牛頭'를 이두로 읽으면 '소머리' 즉 '수메르'가 됩니다. 따라서, '우두머리'는 '수메르 머리' 즉 '수메르 인의 지도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만주에서 살았던 한 종족의 이름인 '속말말갈(粟末靺鞨)'의 '속말'은 '수메르'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일본 천황의 호칭인 '스메라미코토'의 '스메라', 일본어로 무사라는 말인 '사무라이[侍]'의 '사무라', 서 요르단 지방에 있는 지명인 '사마리아(Samaria)', 아프리카의 중동부에 있는 반도의 이름인 '소말리아(Somalia)' 등 이 이름들도 '수메르(Sumer)'와 어원이 같습니다. 전통 어휘들이 이렇게 유사하다는 것은 우연이나 억지가 아니고, 수메르 인들이 이들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는 뜻입니다. 나이지리아 북부에 있는 카노(Kano)라는 도시에 전해져 오는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에 가야(Gaya)족의 카노(Kano)라는 대장장이가 철을 찾아 이곳에 와서 처음 이 도시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있는 하우사 족의 전설에 의하면, 하우사 족 선조의 이름이 '아부이아지두(Abuyazidu)'라고 합니다.
'아부이아지두'는 우리말로 '아버이 아사달'로 해석됩니다. '가야'라는 지명은 한국의 낙동강 유역과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에도 있습니다. 이것은 수메르 인들이 한국과 인도와 나이지리아로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가야'의 어원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 '가나안(Canaan)'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메소포타미아의 갈데아(Chaldea) 우르(Ur)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 셋(Seth)의 후손으로서, 수메르 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Egypt)'의 어원은 '에아의 집터'다. '에아의 집터'는 대양(大洋)의 신(神)인 에아(Ea)가 사는 집터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전통 어휘들이 우리말로 해석되는 것은 이집트 문명이 남긴 전통 어휘들의 어원이 수메르 어라는 뜻입니다.
호루스(Horus) 신화는 이집트의 통일 신화입니다. 『땅과 하늘의 신이 낳은 식물의 신인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를 미개에서 문명으로 이끈 신이다. 이를 시기한 동생 셋(Seth)은 형 오시리스를 위계로 살해하여 나무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워 버렸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Isis)는 이 상자를 페니키아의 비블로스 항구에서 찾아 가지고 이집트로 돌아와 소생시킨다. 이것을 안 셋은 오시리스의 상자를 찾아내어 다시는 소생하지 못하도록 그의 시체를 잘게 절단하여 이집트 전역에 뿌렸다. 그러나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헌신적으로 남편의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남편을 다시 소생시켜 명계의 왕이 되게 했다.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Horus)는 어머니 이시스의 비호를 받아 셋을 물리치고 신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아 통일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신화의 이면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신화의 이면에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호루스는 머리의 모양이 매인 신입니다. 수확기에 곡물에 피해를 주는 새들을 매가 잡아 먹기 때문에, 농경이 위주였던 이집트 인들은 매를 토템으로 한 것입니다. 셋은 당나귀, 개, 재칼 등 여러 짐승의 모양을 조합하여 만든 가공의 동물 모양을 한 신입니다. 이 신화에서 오시리스와 호루스는 나일 강 유역에서 농경을 하던 원주민이었고, 셋은 나일 강의 삼각주 일대로 침입한 유목민으로 보아야 합니다.
호루스 신화를 역사와 결부시켜 정리하면 "나일 강 유역으로 침입한 유목민인 셋(Seth) 족의 힘에 밀려 흩어졌던 원주민들이 나일 강의 상류에서 상이집트 왕국을 세우고, 힘을 정비하여, 나일 강 하류 삼각주 일대에 있던 셋 족의 하이집트 왕국을 징벌하고, 이집트를 통일시켰다."라는 역사가 됩니다. 이집트의 '셋'은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 '셋'과 같습니다. 수메르 인들이 원주지에서 대이동을 할 때, 그 일부가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고, 일부는 이집트로 이주하여 셋 족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 '셋'의 후예인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인의 도시 국가들이 멸망한 뒤, 가나안으로 이주한 수메르 인의 후손입니다.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언어의 자취들이 이집트와 가나안의 전통 어휘들 속에 있습니다. 이집트의 전통 어휘들이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이집트로 이동한 수메르 인이 이집트 문명의 기초를 다졌고, 한반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의 언어가 우리말의 뿌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고대 문명들이 남긴 전통 어휘들은 대부분 당시의 종교와 깊이 연관되어 오래도록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해석이 가능합니다. '나일(Nile)'과 '시나이(Sinai)'의 어원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나일'은 '내', '시나이'는 '시내'와 같습니다. '이집트(Egypt)'의 어원은 대양(大洋)을 다스리는 물의 신(神)인'에아(Ea)'가 사는 '집터'라는 뜻인 '에아 집터'입니다. 나일 강 유역으로 이주한 수메르 인들이 나일 강 유역을 '에아(Ea) 집터'라고 불렀던데서 '이집트'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Ra, Re)'는 태양신의 이름입니다. '라'는 이집트 원주민의 신이 아니었고, 셋 족의 유목민들이 섬겼던 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메르(Sumer)'의 '르', '슬라브(Slav)'의 '라', '신라'의 '라'는 태양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에서 태양신을 똑같이 '라'로 불렀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없고, 어느쪽이 먼저냐가 문제입니다. 종교는 보수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종족마다 다르고 배타성이 강한 토템 숭배에서 모든 종족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과 유일신적 절대성이 강한 태양신 숭배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통일을 지향하는 대변혁이 그 사회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통일 신화에서 주인공 호루스가 매의 형상이었다는 것은 태양신 '라'가 이집트에서 자연 발생한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태양신 '라'는 아랄 해 일대로 이주한 잡다한 소규모 여러 종족들이 새로운 거대한 집단으로 통일되어 성장하는 과정 중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집트가 침략자인 셋 족의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유는 우주적 보편성을 띤 셋 족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이집트의 원래 종교보다 통일 이집트를 통치하는데 더 우수했고, 셋 족이 이집트를 지배한 기간이 길어 셋 족의 종교가 이집트화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집트의 전통 어휘들이 수메르 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메르 어에서 기원한 한국어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테베(Thebes)'는 나일 강 중류에 있는 고대 도시의 이름입니다.
수메르 인이 이집트를 지배했던 지역은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에서부터 적어도 나일 강 중류의 '테베'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테베'는 수메르 어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테베라는 지명은 그리스에도 있습니다. 테베는 '티베트 고원'의 '티베트(Tibet)', 한국에 있는 '태백산'의 '태백'과 기원이 같습니다. 중국 산동성에 있는 '타이산[泰山]'의 '타이', '타이랜드(Thailand)'의 '타이'도 '테베'의 '테'와 맥이 통합니다. '테베'는 우리말로 '토대가 되는 밭'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 '텃밭'과 어원이 같고, 수메르 인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수메르 인들은 큰 강의 중상류 쪽에, 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입구만 막으면 방어하기 좋은 골짜기를 종족의 중심지로 삼는 전통이 원주지에서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테베'도 수메르 인의 중심지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눈(Nun,Nu)'은 이집트 신화에서 강과 비를 다스리는 물의 신입니다. '눈(Nun, Nu)'은 우리말의 '눈[雪]'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메르 인들은 눈이 녹아 물이 되는 것을 보고, 물의 신을 '눈'이라 불렀던 것이 이집트에 그대로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 눈이라는 말인 '스노우(snow)'의 어원은 's(새로운,위대한) now(눈)'이고, 뜻은 위대한 물의 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카이로(Cairo)'의 어원은 아랍 어로 승리라는 뜻인 '알 콰히라(Al-Quahirah)'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현대인의 생각입니다. 아랍 어가 이집트의 공용어로 되기 이전에도 '카이로'라는 말이 이집트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메르 인의 종교를 수용하면서 신이 그들에게 약속한 땅이라는 말인 '가야'를 버렸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카이로'의 어원은 수메르 인들이 이주지에 남긴 '가나안(Canaan)'·'가야(Gaya)'라는 지명과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야'의 어원은 '가미 야(곰의 뜰, God yard)'이고 뜻은 신의 뜰로 볼 수 있습니다. '피닉스(phoenix)'는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불사조로 알려진 피닉스의 고향은 이집트가 아닙니다. 아라비아도 아닙니다. 피닉스는 난생 신앙의 진원지인 알알 문명에서 시작하여 인구의 이동과 더불어 이집트, 그리스, 아라비아 등지로 이동했습니다. 피닉스는 동쪽으로도 이동했습니다. 중국은 피닉스를 '현조(玄鳥)' 또는 '봉황(鳳凰)'으로 기록했습니다. 피닉스는 한국에서 길조를 상징하는 '파랑새'로 되었습니다. 피닉스는 서유럽으로도 날아가 '프랑스(France)'로 되었습니다. 피닉스·현조·봉황·파랑새·프랑스는, 알알 문명의 신화가 낳은, 임금의 탄생과 관계된 새입니다. '피닉스(phoenix)'의 어원은 '파(p) 호에닉(hoenic) 새(s)'이고, 뜻은 '위대한 햇님 새'입니다. '프랑스'와 '파랑새'의 어원은 '파라(Pa Ra)의 새'이고, 뜻은 '위대한 태양신의 새'입니다.
피닉스는 수메르 어, 프랑스와 파랑새는 아리아 어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보라매'는 '바라(Ba Ra) 매' 즉 '위대한 태양신의 매'라는 뜻입니다. 보라매는 파랑새와 피닉스에 상응하는 태양신의 새입니다. '스핑크스(sphinx)'의 어원은 '스피닉스(s-phoenix)'이고, 뜻은 '새로운 피닉스'입니다. '스핑크스'는 '새로운'이라는 뜻이 있는 '스(s)'자를 '피닉스(phoenix)' 앞에 붙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스핑크스는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사하라(Sahara)'의 어원은 '새로운(sa) 위대한(ha) 태양신(ra)'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pyramid)'는 어원은 영어로 표준·기압계라는 뜻인 '바로미터(barometer)'와 같습니다. '피(py)'와 '바(ba)'는 위대한이라는 뜻입니다. '라(ra)'와 '로(ro)'는 태양신입니다. '미(mi)'와 '메(me)'의 어원은 우리말의 '뫼'로서 산 또는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드(d)'와 '터(ter)'는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고대의 유적들인 '지구라트(ziggurat)'의 '트(t)', '파키스탄'의 '탄'과 같은 뜻이고, 우리말의 '터'와 어원이 같습니다.
따라서, '피라미드'와 '바로미터'의 뜻은 '위대한 태양신의 뫼 터' 즉 '위대한 태양신을 모시는 산 터'입니다. '바로미터(barometer)'는 영어로 군주·국왕이라는 말인 '파라마운트(paramount)'와 어원이 같습니다. '피라미드'와 '바로미터'는 종족의 중심지로서 권력의 중심지였고,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Pharaoh)'는 고대 이집트 국왕의 칭호다. 이 파라호의 뜻은 '위대한(pha) 태양신(ra) 오(oh)'다. '오(oh)'는 존칭으로서 한자의 '어(御)'와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라(phara)'는 우리말에서 '파란 하늘'의 '파란'과 어원이 같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라는 말은 '위대한 태양신의 하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의 '푸른 들'의 '푸른'은 '풀과 같은 색'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파란'과 '푸른'은 분명히 구별되는 말입니다. 파란색은 청색이고, 푸른색은 녹색입니다.
인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
인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의 언어는 드라비다 어로 되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부터 기원전 1500년경까지 인더스 강 유역에 있었던 고대 문명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에 인도로 이동한 아리아 인에 의해 붕괴되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을 일구었던 종족은 어떤 종족이었고,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인도의 남부 지방에서 살고 있는 드라비다 족의 언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드라비다 족의 언어인 드라비다 어는 우리말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합니다. 문장 순서가 같고, 토씨가 있습니다. 기초 어휘들 중에는 우리말과 같거나 비슷한 것들이 1천여 개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두 언어의 이러한 친근성을 설명하려면, 인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의 언어는 드라비다 어로 되었고, 한반도로 이동한 수메르 인의 언어는 우리말의 뿌리로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메르 어와 아리아 어는 아랄 해 일대의 거대한 초원에서 여러 종족들의 원시 언어들이 융합되며 새롭게 형성된 언어들입니다. 이 두 언어권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거대한 언어권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도에 있는 고인돌들은 수메르 인들이 남긴 것입니다. 이것은, 수메르 인들이 기원전 2500년경부터 시작된 인더스 문명을 창건했다는 뜻입니다. 수메르 인들은 아리아 인에 밀려 남으로 이동했고, 갠지스 강 유역에 가야(Gaya)라는 지명을 남겼습니다.
황하 문명 속의 수메르어
중국의 삼황 시대는 수메르 인의 통치 시대였습니다. 황하를 다스린 삼황(三皇)에 대한 설이 몇 개 있지만, 한(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다 당(唐)의 사마정(司馬貞)이 보필한 <삼황본기(三皇本紀)>에 나오는 수인씨(燧人氏), 복희씨(伏羲氏), 여희씨(女希氏)가 가장 역사성이 있습니다. 수인씨(燧人氏)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황제의 이름입니다. 출신지인 성기(成紀)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입니다. 출신지가 황하 문명의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황하의 상류 지역이라는 사실은 수인씨가 서쪽에서 이주한 종족이라는 뜻입니다.
수인씨는 수메르 인이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인씨는, 부싯돌 수[燧]자가 뜻하는 바와 같이, 불을 만드는 방법과 여러 가지 조리법을 전했다고 전해집니다. 복희씨(伏羲氏)에서 복희(伏羲)의 뜻은 엎드려 숨을 쉬다, 포희(犧)의 뜻은 주방에서 희생의 제물을 준비하다로 볼 수 있습니다. 복희와 포희를 하나로 연결하여 의역하면, 신에게 엎드려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다라는 뜻이 됩니다. 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풍습이 이때 있었고, 이러한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어서 뒷날 황제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엎드릴 복(伏)자를 쓰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伏자 대신 '宓자를 쓰기도 했습니다. 宓자의 음은 복 또는 밀입니다.
복희씨(伏羲氏)를 밀희씨(宓羲氏)라고도 했다면, 수인씨와 밀희씨는 수밀희씨 즉 수메르 인이라는 뜻입니다. 여희씨(女希氏) 또는 여와씨(女와氏)는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갈데아(Chaldea) 우르(Ur)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족의 신인 여호와(Jehovah, Yahweh)와 소리가 비슷하다. 한자의 뜻은 여신(女神)을 섬겼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사성은 이스라엘 족이 수메르 인이라는 증거들 중의 하나입니다. 사마리아·히브리·이스라엘이라는 말들은 수메르·해를 부르는·아랄의 태양신 엘로 해석됩니다. 황하 유역으로 이주한 수메르 인이 남긴 어휘들은 한자로 표기되면서 원래의 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산동 반도 일대에 있는 고인돌들이 수메르 인들의 이동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뒤에 이주한 아리아 인들은 한자를 만들면서 한자의 소리에 아리아 어의 흔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4. 아리아 인의 대이동
아리아 인들은 이주지에서 '알'자를 나라 이름에 잘 사용했습니다. 수메르 인의 대이동이 끝나고 이후 천여 년 동안에는 별다른 이동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아리아 인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동의 주원인은 지구의 기온이 뗠어지고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강수량이 줄어들어 초원이 사막화되기 시작하며 동물의 수가 줄어들어 식량 자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동쪽에서 알타이 어계 종족들이 계속 이동해 왔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유럽의 켈트 족, 지중해 연안의 라틴 족과 그리스 족, 북유럽의 게르만 족은 제2차 대이동의 주역들입니다.
기원전 16세기경 바빌로니아를 침입한 히타이트 족(Hittite)도 이 무리에 속합니다. 제2차 대이동시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들은 황하 유역에 정착했고, 일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원전 2000년경에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했습니다. 이 시절 아리아 인들은 이주지에서 그들의 원주지 아랄 해 일대를 뜻하는 '알(Ar)'이라는 말을 나라 이름에 잘 사용했습니다. 잉글랜드·아일랜드·아이슬랜드, 고조선의 아사달(阿斯達), 일본의 아스카[飛鳥], 근대에 생긴 이름인 아마존·아메리카 등의 첫 소리는 '알'이 어원입니다. '알'의 원 뜻은 알[卵]이고, 난생 신앙과 더불어 알에 '위대한'이란 뜻이 있게 되었습니다. '알'은 아리아 인을 상징하기도 하여, 아리아 인들은 서로의 단합과 새로 이동해 오는 동족들의 집결을 기대하며 이 말을 나라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대이동이 일어나고 나서 생긴 힘의 공백 지대로 알타이 어계 종족들이 계속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기원전 1500년경부터 제3차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절 인도로 이동한 아리아 인이 인도 아리아 인이고, 유럽으로 이동한 아리아 인이 슬라브 족입니다. 슬라브 족들은 이주지에서 슬라브(Slav)라는 말을 나라 이름으로 잘 사용하였습니다.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신라의 서라벌 등은 슬라브 족들이 이주지에 남긴 이름들입니다. 아리아 인의 대이동이 있고 난 이후, 인류는 농경을 위주로 하는 정주 생활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종교와 철학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인도·중국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아랄'의 어원은 알이 많다는 뜻인 '알알'이다.
'아랄 해(Aral Sea)'의 '아랄(Aral)'은 우리말로 알이 많다는 뜻인 '알알'과 어원이 같습니다. 같은 말을 잇대어 사용해 많음을 나타냈습니다. 옛날에 아알 해 일대에 새들이 많이 날아와 알을 많이 낳았기 때문에, 알알이라는 말이 옛날부터 이 지역의 이름으로 쓰인 것입니다. 터키 어로 '아랄 해'의 '아랄'은 '섬이 많은'이라는 뜻입니다. 아랄 해에 섬이 많아 아랄 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의 뜻과는 다르지만 이런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아랄 해에는 섬이 많고, 섬에는 새들이 낳은 알이 많았기 때문에, '알'이란 말에 '섬'이란 뜻이 있게 되면서 '알알'이라는 말에 '섬이 많은'이란 뜻이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터키 족은 내륙 초원 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터키 어에 섬이라는 단어가 없어 '알알'을 '섬이 많은'이란 뜻의 어휘로 차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이란 단어에서 섬이란 단어가 나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어휘들이 있습니다. 독일어로 섬이라는 단어인 '아일란트(Eiland)'는 알이라는 뜻인 '아이(Ei)'와 땅이라는 뜻인 '란트(Land)'가 합쳐진 것입니다. 독일인들은 Eiland의 원 뜻이 알땅·계란땅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세계사가 알알 문명의 역사를 잃어버렸듯이 독일인들 역시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어로 섬이라는 말인 아일런드(island)의 뜻도 알땅입니다. 아리아 인들은 이주지에서 '알스랜드(Ar's land)'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말의 원 뜻은 '알땅'이지만 '아리아 인의 땅', '위대한 땅', '새 생명의 땅'이라는 뜻으로 전의되었습니다. '아일랜드(Ireland)'의 어원은 '알스랜드'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아이'는 우리말의 '아이'와 어원이 같습니다. '아이슬란드(Iceland)'의 어원도 알스랜드로 보아야 합니다. 추운 나라여서 '얼음 나라'로 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잉글랜드(England)'의 '잉글'은 '앵글로 색슨(Anglo-Saxon)'의 '앵글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다면 Angland가 되어야지 England로 되었을까요? 여기에 영국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어원은 '에그랜드(Eggland)'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그랜드의 뜻은 처음에 알땅·위대한 땅·새 생명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과거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에그(egg)라는 말에서 위대한·새 생명이라는 뜻은 잊혀지고 '계란'이라는 뜻만 남게 되면서, '에그랜드'는 '계란 땅'으로만 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에그랜드와 앵글즈를 결합시켜 잉글랜드로 바꾼 것입니다. 초기의 'E'자를 'A'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고수함으로써, '잉글랜드'는 알알 문명의 전통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영어의 'egg'는 우리말의 '아기'와 어원이 같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운'과 '아스라한', 일본어로 새롭다는 뜻인 '아타라시(あたらしぃ)' 등의 첫소리 '아'도 '알'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중국의 황제(黃帝)는 아리아 인입니다.
'황제(黃帝)'의 '황(黃)'과 '황하(黃河)'의 '황(黃)'이 같은 글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황하의 강물에 황토가 많이 섞여 있어, 물빛이 누런빛이어서 '황하'라 했고, 황하를 다스린 임금이어서 '황제'라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단순한 뜻만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천여 년 전에도 황하의 물빛이 지금과 같이 누런빛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황하(黃河)'의 원래 소리는 '알로하(Alo河)'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로'는, '알의 노란자위 색'이라는 뜻으로서, 영어로 노란색이라는 말인 '옐로(yellow)'와 어원이 같은 수메르 어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알로하'는 알의 노른자위와 같은 중요한 강이라는 뜻입니다. 한자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알로'의 소리와 뜻을 함께 살려 한자로 표기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뜻에 치우쳐, '알로'와 뜻이 같은 한자인 '황(黃)'자를 사용하여 '황하(黃河)'로 표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제(黃帝)'의 원래 소리도 알로하의 왕·알의 노른자위 같은 왕이라는 뜻인 '알로제(Yellow Zeus)'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로'의 소리보다는 뜻을 살리기 위하여 '황제(黃帝)'로 표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색은 중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난생 신앙을 갖고 있던 수메르 인과 아리아 인이 알의 노른자위를 귀중한 색으로 여기고, 노란색을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취급하였던 데서 연유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황하(黃河)'·'황제(黃帝)'는 '중요한 강'·'위대한 왕'이라는 뜻입니다. '황제(黃帝)'를 아리아 인으로 보는 것은, '제(帝)'의 어원은 영어의 '제우스(Zeus)'와 같다고 볼 수 있고, 한자(漢字)에는 아리아 어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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