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패망당시....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날려 빠져 죽었다.. 라는 말은 들어봤을거야.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게 졸라 말이 안된다는걸 생각할 수 있을거야.
뭐 단순히 생각해서, 삼천궁녀라고 하면, 그 잘나간다는 진시황-_-형님의 삼천궁녀가 생각이 나는데,
저 거대한 짱꼴라의 황제랑, 자그마한 백제국의 국왕이랑 궁녀쪽수가 삐까빼까 했다는 것은...
어쩐지 좀 개구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그래서 여기저기 좀 정보를 찾아봤는데,
그당시 백제수도 부여의 인구가 4만5000명에 군대는 2500명이었대.
도성에서 3000명의 궁녀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
당시의 농업 생산력이나 주거 공간을 감안할 때 과연 가능했을까?
이건 개구라임에 틀림이 없는거야.
우선 우리가 삼국시대의 정보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내용도 사기야)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제목땜에 실제랑 좀 유사하대)를 떠올릴수 있잖아?
그래서 두군데를 졸라 뒤져봤더니....
삼국유사 권1 태종 춘추공 조에
"그 날 궁녀들이 왕포암에 올라가 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말밖에 안나오더라고.
궁녀들...이 삼천명이란 말이 없다는거지. 낙화암이란 말도 구라가 아닐까 하고 찾아봤더니,
낙화암이란 말은 여기저기 많이 나오더라. 고려시대부터 쓴걸 보니 맞는거 같아.
그래서 또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까...
동사강목 권2 경신년 추 7월 조에 따르면 '여러 비빈들'이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을 뿐이야.
이건 네이버 지식검색에서 찾아본 거니까 확실하.....--;;
그러면 도대체 이 삼천궁녀라는 소리는 어디서 나온걸까 -_-;;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뒤져보니까 처음으로 나온 문헌이 이홍직의 '국사대사전'(지문각·1962)이래.
그럼 또 우린 이 이홍직이란 인간에 대해서 알아봐야 되지 않겠어?
-이 홍 직-
본관 한산(韓山). 호 남운(南雲). 경기도 이천(利川) 출생.
연천의 삭령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서울로 전학하였고,
1919년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
우라와[浦和]고등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32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국사학과에 입학하였다.
1935년 졸업 후, 귀국하여 이왕직국조보감(李王職國祖寶鑑) 찬집위원회 촉탁이 되어
1945년까지 재직하는 한편 연희전문과 명륜전문 강사를 지냈다.
역시!!!!!!!!!!!!! 봐봐봐봐봐봐!!!!!!!!!
내 예상대로 이새끼 일빠였어.
뭐 그당시 일본아니면 유학할 곳이 어딨었냐고 따진다면 할말 없지만,
도교제국대학 문학부 국사학과라면, 역사왜곡의 메카거덩...
여기서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 의자왕형님을 삼천명의 궁녀를 거느린 양아리..로 배운거지.
국치를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의자왕형님의 처첩들을...
삼천궁녀로 매도한 쪽발이새끼들...
KIN이란 말 말고는 할말이 없어... 씨발..
쪽발이 씨발드셈.
........................이건 진짜 구라 아니니까 막 퍼뜨려도 돼.
[출처] 역사 바로세우기-2. 의자왕과 삼천궁녀|작성자 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