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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

작성자나비우스|작성시간17.08.29|조회수273 목록 댓글 0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 









삼국의 언어가 달랐고, 특히 고구려어와 백제어가 계통상 일본어와 가까웠다는 주장은 엄연히 사료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어의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했고, 백제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서로 대립했다는 기록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1. 고구려어의 수사(數詞)


삼현현(三峴縣), 밀파혜(密波兮)라고도 한다.

三峴縣, 一云密波兮.

三 = 밀(密) ≒ mi(み)


오곡군(五谷郡), 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고도 한다.

五谷郡, 一云于次呑忽.

五 = 우차(于次) ≒ itu(いつ)


칠중현(七重縣), 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한다.

七重縣, 一云難隠別.

七 = 난은(難隱) ≒ nana(なな)


십곡현(十谷縣), 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한다.

十谷縣, 一云徳頓忽.

十 = 덕(德) ≒ töwo(とお)


- 『삼국사기(三國史記)』 권(卷) 제37(第三十七) 「잡지(雜志)」 제6(第六) 지리 4(地理四) 고구려(髙句麗)·백제(百濟)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고구려어 지명들.

앞의 것은 (흔히 일본어에서 말하는) 훈독(訓讀) 표기, 뒤의 것은 음독(音讀) 표기입니다.

일본어를 배운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다시피 고구려어의 수사 3, 5, 7, 10이 대체로 일본어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 측 사료인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일본인들의 왜곡 따위가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수사뿐만이 아니라, 물[水] = 매(買) ≒ midu(みず), 골[谷] = 단(旦)/탄(呑)/돈(頓) ≒ tani(たに) 등, 몇몇 어휘들은 일본어와 유사성을 보임.




※ 추가 1.

윗분께서 음/훈을 저런 식으로 분석한 근거가 뭐냐고 물으셔서...

그냥 본인이 직접 삼국사기 원문을 찾아보면 될 텐데, 웬만한 논문 한 편은 써야 할 만큼의 설명을 요구하시는 걸 보니, 적잖이 당황하셨나 봐요? ㅋㅋㅋ 어지간해선 봐 드리려고 했는데, 더욱 절망적인 상황을 원하시는군요. ㅋㅋ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안 배우셨나요?


영동군(永同郡)은 본래 길동군(吉同郡)이다.

永同郡, 本吉同郡


소나(素那), 혹은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素那, 或云金川


영동(永同) = 길동(吉同)

길 영(永) = 길할 길(吉)

아, [길]을 적기 위해 각각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표기한 거구나!


소나(素那) = 금천(金川)

흴 소(素), 어찌 나(那) = 쇠 금(金), 내 천(川)

아, 金川이라 적고 [쇠내 → 소나]라고 훈독한 거구나!


고1 국어사 파트에서도 이 정도는 배우는 걸로 아는데 말이죠. ㅡㅡ;;



뭐, 아무튼 이것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끊어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규칙성이 있습니다.

먼저 옛 지명들의 음독과 훈독 표기를 찾습니다. 지금의 경기도(京畿道) 수원(水源)으로 비정되는 수성군의 표기를 보죠.


수성군(水城郡)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매홀군(買忽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수주(水州)이다.

水城郡, 本髙句麗買忽郡, 景徳王改名. 今水州.


매홀(買忽), 수성(水城)이라고도 한다.

買忽, 一云水城.


이 2가지 표기 방식이 같은 이름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실 겁니다. 한 지역의 명칭이 여러 개일 수는 없으니까요. 하나는 음독 표기이고, 하나는 훈독 표기인 것이죠(순서는 상관없음).

그럼 이제 다른 지명에서 저것과 공통된 어휘를 찾습니다.


수곡성현(水谷城縣), 매단홀(買旦忽)이라고도 한다.

水谷城縣, 一云買且忽.


매홀(買忽), 수성(水城)이라고도 한다.

買忽, 一云水城.


보다시피 수(水)와 매(買)가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로써 우리는 고구려어에서 물[水]을 '買'라고 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독 표기와 훈독 표기 사이의 대응을 분석하여 고구려어의 어휘를 얻을 수 있고, 같은 대응이 2회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이러한 추정은 더욱 확실해지게 됩니다.

水가 買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다른 것들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성(城)은 홀(忽)과 대응되는군요. 곡(谷)은 단(旦)과 대응된다는 것도 알 수 있네요.



자, 그럼 이제 위에서 언급한 고구려어 수사가 포함된 지명들을 봅시다.


오곡군(五谷郡), 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고도 한다.

五谷郡, 一云于次呑忽.


십곡현(十谷縣), 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한다.

十谷縣, 一云徳頓忽.


앞서 보았듯이 고구려어 '忽'은 군(郡), 현(縣), 성(城) 등과 서로 대응되는 단어입니다. 谷은 '단(旦)'으로 읽혔다는 것도 이미 앞에서 나왔죠? 여기에 나온 탄(呑)/돈(頓)도 [단]과 발음이 비슷하므로, 상통(相通)하는 어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닌 것 같다고요? 발음의 유사성으로 따지는 건 억지라고요? 좋습니다. 그럼 呑과 谷이 서로 대응되는 다른 예시를 보여 드리죠.


경곡현(□谷縣), 수을탄(首乙呑)이라고도 한다.

□谷縣, 一云首乙呑.


어지탄(於支呑), 익곡(翼谷)이라고도 한다.

於支呑, 一云翼谷.


습비곡(習比谷), 탄(呑)이라고도 한다. [앞의 글자가 빠진 것 같음]

習比谷, 一作呑.


어떻습니까? 할 말 없죠? 그럼 남은 것은? 수사뿐이죠. 따라서 于次와 德이 각각 五와 十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어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한다는 결론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끼워 맞춘 게 아니고요.

문제는 그나마 이렇게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고구려어 단어의 수가 100개도 채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고구려어의 친족 관계를 밝히기가 더더욱 어려운 겁니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어휘도 분석해 보면,


삼현현(三峴縣), 밀파혜(密波兮)라고도 한다.

三峴縣, 一云密波兮.


여기에서 현(峴)과 파혜(波兮)가 서로 대응된다는 것은 다른 지명들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부사파의현(夫斯波衣縣), 구사현(仇史峴)이라고도 한다.

夫斯波衣縣, 一云仇史峴.


문현현(文峴縣), 근시파혜(斤尸波兮)라고도 한다.

文峴縣, 一云斤尸波兮.


저란현현(猪闌峴縣), 오생파의(烏生波衣)라고도 하며, 저수(猪守)라고도 한다.

猪闌峴縣, 一云烏生波衣, 一云猪守.


평진현현(平珍峴縣), 평진파의(平珍波衣)라고도 한다.

平珍峴縣, 一云平珍波衣.


따라서 三이 密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고구려어 지명에는 이런 '파의', '파혜'가 들어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동자홀현(童子忽縣), 구사파의(仇斯波衣)라고도 한다.

평회압현(平淮押縣), 별사파의(別史波衣)라고도 하며, 회(淮)를 유(唯)로도 쓴다.

휴류성(鵂鶹城), 조파의(租波衣)라고도 하고, 휴암군(鵂巖郡)이라고도 한다.


예, 그렇습니다. 현대 한국어 '바위(巖)'와 매우 유사합니다(중세 한국어 형태는 '바회').

이처럼 고구려어 어휘 중에는 한국어와 유사한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비슷한 단어 몇 개만 가지고 언어의 친족 관계를 상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게다가 이미 수사의 차이를 통해 한국어와는 같은 어족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된 상황입니다(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한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죠?). 이처럼 같은 어족이 아니라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어휘들은 동원사가 아니라 그냥 차용어 관계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자, 이제 여기에 대해 뭐라고 변명하실지 기대하겠습니다. ^^






2. 백제 지배층과 피지배층 언어의 차이


왕의 성(姓)은 부여씨(夫餘氏)로 ‘어라하(於羅瑕)’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 말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於陸)’이라 호칭하니, 중국 말로 왕비라는 뜻이다.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 夏言竝王也. 妻號於陸, 夏言妃也.


- 『주서(周書)』 권49(卷四十九) 「열전(列傳)」 제41(第四十一) 이역(異域) 상(上) 백제(百濟)



백제의 지배층과 하층민 간의 언어가 서로 대립하였음을 보여주는 기록. 실제로 백제어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것은 현재 국어학계의 정설.

실제로 삼국사기 지리지의 백제어 지명들을 분석해 보면, 대체로 신라어와 비슷하면서도 몇몇 어휘들은 고구려어와의 유사성을 보임.




※ 추가 2.

역시나 예상대로 주상전하, 상감마마 드립을 치시는데...

처음엔 그냥 귀찮아서 필살기는 안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뻔한 레퍼토리로 나오시니... 뭐, 좋습니다. 그럼 진짜 지옥을 보여 드리죠. 미안하지만 아직 킬링 파트가 남았답니다. ^^


자, 지금부터 킬링 파트 들어갑니다!!






미안하지만, 어라하/건길지는 이미 북방어와 남방어의 차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우선 '건길지(鞬吉支)'에 대해서는, 이와 대응되는 단어로 'konikishi'가 있죠.

《일본서기》의 가장 오래된 사본 중 하나인 이와사키본(岩崎本)에는, 백제의 왕을 '大王'이라 적고, "konikishi(コニキシ), 또는 kokishi(コキシ)"라고 훈을 달고 있습니다. 이 중 koni(コニ)는 鞬吉支의 "鞬"을 나타내고자 한 단어로 보이며, 또한 같은 사본의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백제 인명에 사용된 大에 "音昆"이라 훈독하였으므로, 그 뜻은 "크다"이며, 현대 한국어 "크다"의 관형형인 "큰"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kishi(キシ)는 백제어의 君, 王에 대응되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일본서기》웅략기(雄略紀)에는 백제 무령왕의 이름인 '도군(嶋君)'을 "semakishi(セマキシ)"로, 무열기(武烈紀)의 '도왕(嶋王)'도 마찬가지로 '嶋君'과 같은 "semakishi"로 읽고 있습니다.

즉, 당시 백제어에서 실제로 왕을 "吉支/kishi"와 비슷한 단어로 불렀다는 것이 확인되는 셈이죠.



그런데 이에 대응되는 어휘가 중세 한국어에서도 발견됩니다.


《천자문(千字文)》의 조선시대 판본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선조 8년(1575)에 간행된 광주판(光州版) 《천자문》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수록자의 음은 물론이요, 훈도 적혀 있어서 국어사 연구 자료로서도 매우 유명한데, 이 책에서는 왕(王)을 "긔ㅈㆍ 왕"이라 그 뜻과 음을 적고 있습니다. 이 "긔ㅈㆍ"가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그 '기자(箕子)'와 연관이 있는지는 연구 대상이지만, 어쨌거나 鞬吉支의 吉支나《일본서기》의 kishi와 유연 관계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으로만 그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이 왕을 뜻하는 "긔ㅈㆍ"란 단어가 의외로 꽤 오래되었으리라는 심증을 굳혀주는 기록이 《고려사》에 존재합니다.


〈이제현(李齊賢)이〉 또 말하기를, “김관의(金寬毅)가 말하기를, "도선(道詵)이 세조(世祖)의 송악(松嶽) 남쪽에 있는 집을 보고 말하기를, 「기장을 심을 밭에 마를 심었구나.」라고 하였는데, '기장(黍)'은 '왕(王)'과 방언으로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태조(太祖)께서는 이로 인해 왕씨(王氏)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曰, 金寬毅云, ‘道詵見世祖松嶽南第曰, 「種穄之田而種麻也.」 穄之與王, 方言相類. 故太祖因姓王氏.’


- 『고려사(高麗史)』 「고려세계(高麗世系)」


도선이 실제로 그러한 발언을 하였는가와는 별개로, "기장(黍)’과 ‘왕’이 비슷하다"는 관념이 당시에 있었음은 분명한데,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광주판 《천자문》에 나온 "긔ㅈㆍ"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왕의 뜻을 지닌 "긔ㅈㆍ"란 단어가 고려시대에 이미 널리 사용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자, 이렇게 건길지란 단어의 어원이 밝혀졌습니다.

'건(鞬)'은 현대 한국어의 "큰"에 해당하고, '길지(吉支)'는 왕을 뜻하는 말로서 고려시대부터 중세 한국어의 일부 방언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상의 논의는 '이기문, 「백제어 연구와 관련된 몇 문제」 / 《백제 연구》 / 지식산업사 / 1982 / pp 260-265' 참고.

이기백, 「고조선의 국가형성 」/ 《한국사 시민강좌 2집》 / 1988 / p17

《주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왕을 鞬吉支라고 불렀다는데, 鞬吉支의 吉支가 또한 '기자'와 같은 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해서 '기자'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왕호일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자, 그럼 이제 백제의 다른 왕호인 '어라하(於羅瑕)'에 대해 알아볼까요?

정말 놀랍게도, 어라하에 대한 언급 역시 《일본서기》에 존재합니다. 그것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에서 말이죠.


이 해에 고려(高麗)가 크게 어지러워 무릇 싸우다 죽은 자가 2,000여 명이었다. [『백제본기(百濟本記)』에 이르기를, “고려(高麗)가 정월 병오(丙午)에 중부인(中夫人)의 아들을 왕으로 세웠는데, 나이 8세였다. 박왕(狛王)에게 세 부인(夫人)이 있었는데, 정부인(正夫人)은 아들이 없었다. 중부인이 세자(世子)를 낳았는데, 그의 외할아버지가 추군(麤群)이었다. 소부인(小夫人)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외할아버지가 세군(細群)이었다. 狛王(고구려왕)의 병이 심해지자 세군과 추군이 각각 중부인과 소부인의 아들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세군 측의 죽은 자가 2,000여 명이나 되었다.”라고 하였다.]

是歲, 高麗大亂, 凡鬪死者二千餘. [百濟本記云, 高麗, 以正月丙午, 立中夫人子爲王, 年八歲. 狛王有三夫人, 正夫人無子. 中夫人生世子, 其舅氏麤群也. 小夫人生子, 其舅氏細群也. 及狛王疾篤, 細群·麤群各欲立其夫人之子. 故細群死者二千餘人也.]


-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9 흠명천황(欽明天皇) 7년(546)



여기에서 '박왕(狛王)'이란 《일본서기》에서 고구려왕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저 狛王과 夫人에 대해 각각 "kokuorikoke(コクオリコケ)", "orikuku(オリクク)"라고 훈독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왕과 왕비의 칭호로 보이는데, 앞의 koku(コク)는 "고구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분리해 보면 orikoke(オリコケ)/orikuku(オリクク)입니다.


뭐가 생각 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서(周書)》 백제전에 나오는 백제 왕과 왕비의 칭호인 어라하(於羅瑕)/어륙(於陸).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저기에 대응되는 단어는 역시 그것밖에 없습니다. 즉, 고구려에서도 왕과 왕비를 "어라하", "어륙"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백제어 건길지는 '大王'을 훈독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와 대칭을 이루는 어라하 역시 '大王'의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래 고구려어를 비롯한 부여계 언어에서 왕이나 족장(族長)을 뜻하는 단어는 '가(加)'였습니다.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의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豬加)·구가(狗加)나 고구려의 상가(相加)·고추가(古雛加)·대가(大加) 등이 그러한 예지요.


그렇게 보면, 어라하(於羅瑕)의 '하(瑕)'가 부여어의 加와 비슷하여 대응 관계인 것으로 보입니다. 건길지의 '건(鞬)'은 한국어 "큰", '길지(吉支)'는 '왕'에 해당하는데, 같은 의미였다면 어라하 역시 '하(瑕)'가 왕을 의미하고, '어라(於羅)'는 "크다"는 의미였겠지요. 비슷한 어휘를 찾아보자면,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한강을 뜻하는 고구려어 '아리수(阿利水, '큰 강'이란 뜻)'의 阿利 정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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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상에는 고구려어로 왕이 '개차'였으니 남방어인 길지(기자)와 일치하는 거 아니냐는 에미 뒤진 개헛소리가 나돌아 다니는데, 그딴 거 없음.

애초에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왕(王)에 대응되는 단어는 '개(皆)'로 나타남.


왕봉현(王逢縣), 개백(皆伯)이라고도 한다. 한씨(漢氏) 미녀(美女)가 안장왕(安臧王)을 맞이하였던 곳이므로 왕봉(王逢)으로 이름하였다.

王逢縣, 一云皆伯. 漢氏羙女, 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개차산군(皆次山郡)'이란 지명이 있긴 하지만, 王이랑은 1도 관련없음.


개산군(介山郡)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개차산군(皆次山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죽주(竹州)이다.

介山郡, 本髙句麗皆次山郡, 景徳王改名. 今竹州.


도대체 어디서 이딴 개소리가 나왔나 뒤져봤더니...


옥기현(玉妓縣), 개차정(皆次丁)이라고도 한다.

玉岐縣, 一云皆次丁.


玉을 王으로 잘못 읽은 거... -_-;;;;;;;;;


낚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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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결국 어라하의 어원도 밝혀졌군요.

백제어 어라하/어륙은 고구려어(를 전사한 일본어 표기) orikoke/orikuku와 대응되며, '하'는 왕을 뜻하는 부여어 '가'와 유연 관계에 있는 단어로 보이고, '어라'도 "크다"는 의미의 고구려어 '아리'와 유연 관계에 있는 부여계 어휘로 추정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건길지의 '건'은 현대 한국어 '큰'과 거의 같은 형태이고, '길지'는 고려시대 이후까지도 중세 한국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근데 어라하는? 현대 한국어에 '크다'는 뜻의 "어라"나 "아리" 같은 단어가 있나요? 없죠?


건길지는 백제의 하층민들이 썼던 단어라 하고, 백제의 기반이 대부분 마한 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건길지는 마한어(= 韓語)였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마한어가 현대 한국어와 같은 계통의 가까운 언어라는 거야 의심할 바 없는 당연한 사실이고요.

그러나 부여계 어휘인 어라하는 고대 마한어와도 분명히 달랐고, 현대 한국어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는 북방계(부여계)와 남방계(한계) 언어가 분명히 구별되었으며, 현대 한국어의 근간이 된 것은 사실상 신라어를 비롯한 남방계 언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결국 어라하/건길지는 주상전하/상감마마 같은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북방계 어휘와 남방계 어휘의 차이, 즉, 엄연한 '언어 계통상'의 차이였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 깜빡 하고 언급을 안 했는데, 참고로 《일본서기》에는 이 두 어휘가 합쳐진 것으로 보이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백제왕의 어머니를 '大后'라 쓰고 "konioruku(コニオルク)"라고 훈하고 있는 것이지요.

앞서 살펴 봤듯이 koni는 한국어 "큰"에 해당하고, oruku는 어륙(於陸)/orikuku와 통하는 단어로 보이므로, konikishi와 마찬가지로 '큰 왕비'라는 뜻입니다.

근데 어라하가 [어라(大) + 하(王)]의 의미였다면, 왕비를 뜻하는 어륙 역시 같은 구조였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겠지요.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요.


근데 그렇게 보면 뭔가 좀 이상합니다. 어륙/oruku 자체가 이미 "큰 왕비/부인"이라는 의미인데, 거기에 또 "큰"이 덧붙었으니까요. "크다"는 의미가 중복되어 '큰큰 왕비'(?)가 되지요.

마치 '역전 앞'과 같은 이상한 표현인데, 남방계 어휘인 koni와 북방계 어휘인 oruku가 반반씩 합쳐진 기묘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왜 생긴 걸까요?


저는 이런 표현의 존재야말로 북방어(부여어)와 남방어(한어)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형태는 마한어를 쓰던 백제 하층민들의 차용어(借用語)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당시 마한어에는 왕비를 뜻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지배층이 쓰던 부여어에서 이 말을 빌려 왔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백제 지배층과 하층민 사이의 어휘의 상이(相異)를 전하는 《주서》 백제전에 '왕비'에 해당하는 백제 하층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즉, 서로 다른 계통의 언어였기에 저런 식의 단어 조합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만약 백제 하층민들이 '어라하/어륙'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면 저런 표현을 썼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단어 자체로는 뜻을 모르는, 즉, 계통 자체가 다른 어휘였기 때문에 저런 식의 의미 중복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Charlemagne)를 흔히 "샤를마뉴 대제"라고 잘못 부르는 것처럼요(magne 자체가 'Great'의 의미이므로, '대제'를 덧붙일 필요가 없음).



이러한 사례들은 결국 백제 언어의 이중성, 더 나아가 남북 언어 간의 계통상의 차이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아무튼 이 정도면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설명된 것 같은데, 어떠하신지??


과연 이 글을 읽고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심히 궁금해지네요! ㅋㅋㅋ

뭐, 지금까지의 반응으로 봐선 보나마나 또 계속 헛소리 하면서 정신승리 할 것 같긴 하지만...




자, 너님은 이제 지옥에 빠졌습니다.

이제 그만 멘붕하시죠!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참 기대됨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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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기존에 작성한 내용 & 일부 수정)





이 2가지 근거가 존재하는 한, 삼국의 언어가 동일했다는 주장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고구려어의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한다는 것은 한국어와는 같은 어족(語族)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백제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는 것은 고구려어-백제 상층어(上層語)로 연결되는 소위 부여계 언어(= 예맥어)가 백제 하층민이 사용했던 언어(= 마한어)와 달랐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언어가 같았다는 중국 사서 기록들 가져와 봐야 다 소용없습니다. 사료상에 나오는 실제 어휘가 다른데, 그깟 '비슷했다'는 구절 한 줄 따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러면 동류설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기 위해, 삼국의 언어와 문화, 의복 등이 비슷했다는 중국 측 기록을 가져오거나, "삼국 간에는 통역이 필요없었다, 고구려어에는 한국어와 비슷한 말도 있다, 그 수사가 고구려어라는 증거가 없다, 조선시대에도 왕을 주상전하, 상감마마 등으로 호칭했는데 그럼 언어가 달랐던 것이냐"라는 식의 뻔한 레퍼토리들을 들고 옵니다만, 전부 논리적으로 반론 가능한 것들입니다.



삼국의 언어, 문화, 의복 등이 비슷했다?

→ 그럼 우리도 한자 쓰고 중국 영향 받아 비슷한 거 많으니 중국인이겠네? 아니, 지금은 모두 서양식 의복 생활 하고 있는데 그럼 서양인인가?

인접한 국가들끼리 서로 문화적 영향을 주고 받는 거야 지극히 당연한 것.


그리고 외국인 입장에서 잘 모르는 외국어들을 그냥 비슷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함. 우리가 듣기에도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은 많이 비슷하잖아?(그 언어들을 전혀 1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보면, 사실 중국 사료의 삼국 언어가 같았다는 기록은 아무 의미 없음. 그냥 외국인 입장에서 중국어랑 태국어가 비슷하다더라 수준의 논의일 뿐.



삼국 간에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 중국과도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음. 실제로 김춘추도 중국에 가서 당 태종이랑 통역 없이 잘만 대화하고 있음.


이찬(伊湌) 김춘추(金春秋)와 그의 아들 문왕(文王)을 당(唐)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당] 태종(太宗)이 광록경(光祿卿) 유형(柳亨)을 보내서 교외에서 그를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이윽고 [궁성에] 다다르자 춘추의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한 것을 보고 후하게 대우하였다. 춘추가 국학(國學)에 나아가 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기를 청하니, 태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아울러 자신이 친히 지은 「온탕비(溫湯碑)」와 「진사비(晉祠碑)」의 비문, 그리고 새로 편찬한 《진서(晉書)》를 내려 주었다.

어느 날 [춘추를] 연회에 불러 만나 보고 황금과 비단을 더욱 후하게 주면서 묻기를,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라고 하였다. 춘추가 무릎을 꿇고 아뢰기를,

“신(臣)의 나라는 후미진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엎드려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가 강하고도 교활하여 여러 차례 함부로 침략하고 능멸하더니, 급기야 지난해에는 대군을 일으켜 깊숙이 쳐들어와 수십 개의 성을 쳐서 함락시켜 대국에 입조할 길마저 막아 버렸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천조(天朝)의 군사를 빌려주시어 저 흉악한 무리를 잘라 없애지 않으시면 저희 백성들은 모두 저들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니, 산 넘고 바다 건너 조공하는 일도 다시는 바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서 군사를 출동시켜 줄 것을 허락하였다. 춘추가 또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를 따를 것을 청하자, 이에 내전(內殿)에서 진귀한 의복을 꺼내어 춘추와 그 수행원들에게 내려 주었다.

遣伊湌金春秋及其子文王朝唐. 太宗遣光祿卿柳亨, 郊勞之. 旣至, 見春秋儀表英偉, 厚待之. 春秋請詣國學, 觀釋奠及講論, 太宗許之. 仍賜御製溫湯及晉祠碑幷新撰晉書. 嘗召燕見, 賜以金帛尤厚, 問曰, “卿有所懷乎.” 春秋跪奏曰, “臣之本國, 僻在海隅, 伏事天朝, 積有歲年. 而百濟强猾, 屢肆侵凌. 況往年大擧深入, 攻陷數十城, 以塞朝宗之路. 若陛下不借天兵, 翦除凶惡, 則敝邑人民盡爲所虜, 則梯航述職無復望矣.” 太宗深然之, 許以出師. 春秋又請改其章服, 以從中華制, 於是, 內出珍服, 賜春秋及其從者.


- 『삼국사기(三國史記)』 권(卷) 제5(第五) 「신라본기(新羅本紀)」 제5(第五) 진덕왕(眞德王) 2년(648)


자, 보다시피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지?



고구려어는 (수사는 다르지만) 한국어와 비슷한 어휘도 많았다?

→ 그래서 몇 개나 되는데? 언어의 친족 관계를 따지려면 동원사(同源詞 :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어휘)가 아주 많이, 대량(大量)으로 발견돼야 함. 한두 개 정도 가지고는 안 됨.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어 어휘는 대략 지명 몇 개밖에 없음. 애초에 친족 관계를 밝히기에는 너무나 적은 수.


그리고 수사가 달랐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나? 이건 같은 '어족'이 아니었다는 얘기임. 비교언어학에서 언어 간의 친연성을 따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수사 같은 기초 어휘들임. 이런 기초 어휘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잘 안 바뀌거든. 실제로 같은 인도-유럽어족 게르만어군(語群) 속하는 영어와 독일어를 비교해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지.


솔직히 말해서 이건 언어학적으로 보면 무시하기 힘든 꽤 치명적인 사실임.



첨부 이미지



언어 간 기초 어휘 비교.

같은 어족에 속하는 영어와 독일어는 수사나 신체 명사(손, 발 등등) 등에서 서로 대응되는 유사한 어휘들이 많음.

반면, 같은 어족이 아닌 일본어와 한국어는 대응되는 공통 어휘가 없음.



그 수사가 고구려어라는 증거가 없다?

→ ....명백히 고구려 영토였던 지역에서 발견되는 지명들인데, 그게 고구려어가 아니면 대체 어디 언어임???

그리고 수사가 모두 일본어와 일치하는데, 그럼 그 지역이 고대에 일본 땅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게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사료를 통해 고구려어를 추적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 그게 고구려어라는 증거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백제어 수사는 한국어와 비슷했다?

→ 아, 그니까 백제 지배층과 하층민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니깐?

고구려어 = 백제 상층어 ≠ 백제 하층어(마한어)라고. ㅇㅋ?

따라서 고구려어와 백제어가 같았다는 양서의 기록은 논리상 아무 모순도 없음.



조선시대에도 왕을 양반들은 '주상전하', 백성들은 '상감마마'라고 불렀다. 그럼 이것도 언어가 다른 것이냐? 백제 상층어와 하층어가 달랐다는 것은 '불필요한 가정'이다.

→ 그럼 백제 사신이 신라 사신의 말을 통역해 줬다는 기록은? 이건 백제와 신라의 언어가 같았다는 근거라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것도 충분히 설명 가능함. 그 백제 사신이 신라어를 알고 있었다든가, 아니면 반대로 신라 사신이 백제어로 말했다는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도 이걸 동류설의 근거로 들이밀면서, 엄연히 언어가 달랐다고 볼 만한 기록이 있는데 왜 이건 이류설의 근거가 안 됨? 이것도 불필요한 가정임? 자기 주장에 불리하면 불필요한 가정이다, 이건가?ㅋ


그리고 이미 앞서 설명했듯이, 고구려어의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하므로, 북방어(예맥어)와 남방어(한어)가 서로 달랐다고 볼 근거는 분명히 있음. '불필요한 가정'이 전혀 아님. 그리고 어라하/건길지가 북방어와 남방어의 계통상의 차이라는 것도 위에서 밝혔다.






이처럼 삼국 언어 동류설은 결국 '삼국의 언어가 같았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전제하에서 거기에 맞는 근거들만 찾아낸 것일 뿐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근거들을 고의적으로 전부 무시, 외면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출처:네이버지식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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