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의 어원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는 영단어 중에 보리를 뜻하는 말로는 barley가 있는데, 마침 발음도
비슷하니 혹시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별 근거도 없이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다. 기원후 5세기 중반에 앵글로-색슨 족이 잉글랜드에
침입, 정착하면서 사용된 고대 영어 중에 bærlic “보리”라는 어휘가 있다.
처음에는 형용사로 쓰였던 이 단어는 bere “보리” (원시 게르만어
*bariz, *baraz에서 추출) + -lic “몸(body), ~같은(like)” (현대 영어 lich의 어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앞부분은 고대 노르드어의 barr “보리”와 연관되어 있고,
라틴어의 far (소유격 farris) “거칠게 빻은 곡식”과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어원으로 추정되는 것은 원시 인도-유럽어의 어근 *bhars-
“짧고 뻣뻣한 털” (현대 영어 bristle의 어원)인데, 이렇게 보면 한국어의 pwoli “보리”와는 별다른 연관성은 없는 듯 하다.
그렇다면 보리의 어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사료를 살펴보면
보리 “보리(대맥)” <구급방언해 (1466)>, 보리ᄡᆞᆯ “보리쌀” <동의보감 탕액편
(1613)> 등 그 쓰임과 발음이 현대 한국어와 차이가 없으며, 그 이전에도 향가
등에서 麥 또는 牟가 훈독으로 쓰인 경우는 (적어도 필자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관한 논문 역시 드물어 필자가 찾아본 바로는 김원표의 <"보리(麥)"의
어원(語原)과 그 유래(由來) (1949)>가 유일했는데, 이에 따르면 기원전 11세기의
주(周)나라 때에 來[래]는 [리]라 발음되었고, 당시 보리에 해당하는 어휘로
大麥[대맥] 말고도 來牟[리모]라는 외래어가 사용되었으며, 이것이 변하여
牟來[모리→보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來牟를 단지 大麥 등의 고유어들이
따로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외래어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당시에는
來와 牟 모두 “보리”라는 의미를 지녔다), 來의 발음이 당시에는 [리]였다는
주장 또한 현재의 상고어 재구가 *m•rɯɯɡ 또는 *ləg임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푸저우(福州)어에서 來의 발음이 lì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주나라 때의
발음이 그리하였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저자는 일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등을 한데 모아 엮는 등의 오류를 범하였는데, 이는 아마 저자가
논문을 집필한 당시의 국내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저자가 접할 수 있었던
자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조사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관계로 비전공자인 필자는 그나마 지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몽골어와의 연결을 시도해보았다. 몽골어에서 중세 한국어의
pwori “보리(대맥)”와 의미, 발음 등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어휘로는 고전
몽골어 buɣudai “밀(소맥)”이 있는데, 이는 키르기스어와 북알타이어의
buuday “밀”, 카자흐어의 bïday ”밀”, 터키어의 buğday “밀” 등 튀르크어족
계열 어휘들과 같은 어원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들은 돌궐어(고대 튀르크어)
buγdaj “밀”이라는 공통 어원을 공유하며, 이는 원시 튀르크어 *bogu-daj로
재구된다. 그리고 이 어휘가 한반도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대충 *bogudaj
(원시 튀르크어) → *pwohdai (한반도 정착) → *pwoli (말음 ㄷ의 ㄹ화)와 같은
식으로 변화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이들에게는 몽골어 arvaj “보리”
, 터키어 arpa “보리”등 원시 튀르크어 *arpa “보리”로부터 나온 어휘가 따로
존재하므로, 몽골어의 “밀”에 해당하는 어휘가 한반도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뜻이 변하였거나, 아예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형성된 어휘였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출처:http://blog.naver.com/pjb1998/220981045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