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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와 쌀 고대어 연구

작성자나비우스|작성시간17.10.07|조회수92 목록 댓글 0

Sagart는 상고중국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흔히 그 상고음체계를 Baxter-Sagart체계라 이른다. Sagart는 STAN어군의 주창자인데 즉 Sino-Tibetan-Austronesian 語群설의 주장하고 있다. BC 4000~4500년 황하 중류지역에서 앙소문화를 일구었고 황하하류로 진출 大汶口문화와 용산문화를 일구었고 서쪽으로 진출하여 장면어족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남도어족은 산동반도를 거점으로 남하하여 황해 연안과 대만에 BC2000년쯤에 정착하고 이어 대항해를 시작하여 오늘날의 남도어족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벼와 좁쌀에 대한 할배장면어과 할배남도어 그리고 할배중어를 재구하여 그 동원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단어만 아니라 Sagart는 STAN 동원사를 재구해 내었고 이들 사이에 음운 대응 관계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어와 남도어에 대한 재구된 동원사에 대해서도 설왕설래 되고 있으며 차용이냐 동원이냐에 대해서도 설왕설래 되어 별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이 STAN이론을 인구유전학적으로 풀면 금방 허구임이 드러난다. 중국의 최대 하플로 O3-JST002611나 O3-M134이 대만 원주민에게서나 남도어족에  유의미한 정도로 존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O3-P201(xM134)가 주류로 밝혀져 있어 남도어족이 앙소문화를 공유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겠다.  


여하튼 Sagart가 제시한 벼,쌀에 대한 재구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코레 일본 

ㅂ살 kome 

중국 C.me(米), 糲mle

장면 mbras

남도 beRas(dehusked rice), Semay(rice as food),  


코레 일본 

벼 ina 

중국 粳,秈(모두 메벼),禾gool

장면 mbras

남도 qaSan,asal,qasal(husked rice)


코레 일본 

논,답 ta 

중국 洳nja,田(g)-ling

장면 na

남도 na


밭 圃paa?


Sagart는 남도어 Semay가 hemay라는 중간단계를 거치고 일본어에서는 h가 없어 kome로 반영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米의 상고음이 C.me이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Sagart가 제시한 자료만 놓고 보면 남도어와 중국어 장면어 모두 벼와 쌀에 대해서 그 음상이 유사함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단어를 동원관게로 보는 것은 어폐가 있을 것이다. 쌀이나 벼는 문화의 전파로 해석하여야 하기에 차용관계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할 것이다. 코레의 벼는 糲mle와 ble의 이음이 존재하였던 방언구에서 be로만 반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느 지역에서 전래되었는지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 다만 ㅂ살과  qasal을 보면 남도어와의 연관성이 확인된다. ㅂ살은 벼+살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은 일어로 me로 반사되어 있기에 kome역시 ko+me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어로부터 차용 禾米를 kome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禾米에 대한 훈독자가 점점 쓰이지 않고 음독으로 읽게 되어 반도와의 연관성이 단절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코레와 일본은 청동기 문화를 공유하였기에 銅g-looŋ에 대한 동원사가 있어야함에도 일본어에는 구리에 대응하는 낱말이 없다. kane와 구리는 모음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동원사로 처리하기 쉽지 않다. 사실상 kane는 쇠金krɯm을 지칭하지 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kane는 쇠金kɯm>kon에 대한 음독자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鐵은 lhiig> thiet으로 재구되는데 고국원왕의 이름 斯由salu가 釗kljew>tsao의 선대형인지 아니면 차용어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lh는 l의 유기음으로서 후대에 th나 s로 바뀌었다.   由는 喩母로 상고에는 l 성모이었는데 4세기대 고구려 한자음의 독음은 ʎ로서 반모음 j에 가까왔지만 그래도 약한 r성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sari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반도에서 넘어간 숱한 도래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銅,金,鐵은 모두 중국어 차용어 뿐임을 알 수 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진한계 집단이 낙랑지역에서 위만계 秦韓 집단과 섞이고 이들의 제철기술이 일본 제철 기술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한반도에서 제철과 영농이 건너 갔지만 언어분야애서는 쉽게 확인이 안 되는 것은 예맥계 집단의 남부지역으로의 확산이 3세기 이후에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C3*빈도가 낮은 것과 함께 언어방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라(狗邪kala,安邪qala)는 모두 樂浪qrakrang:qara>aya에 대한 이표기로 허왕옥 집단의 원거지 阿踰陀는 qalata로 읽을 수 있어 평양의 낙랑aya에서 내려왔음을 잘 알 수 있다. 당시 변진한 24국은 동아시아의 鐵産地였는데 여기서 철을 수입한 왜는 분명 /쇠/라는 낱말도 수입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어에 /sari/나 /sa/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기에 이들 변진한 집단 역시 쇠를 kane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철산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지역에 3세기 신라와 임나의 제철집단은 변진한을 장악하고 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기존의 진한 집단과 치열한 쟁투를 벌이게 된다. 신라는 사로국 주위에 반도내 최대의 철산지를 장악함으로서 최종적으로 임나를 패퇴시킨다. 任那는 밉이라는 한자는 없기에 mibana를 음사한 것으로 보이고 왜어에서는 mimana로 알려져 있는데 mi는 존칭접두어이고 mana는 弁bron> bjan > bien에서 일본어의 prenasalization으로 b가 mb 로 바뀌어 mibana에서 mimana로 바뀌었다. 여기서 Sagart의 Semay:kome의 추론을 적용하면 bana는 진한지역에서 pana>hana로 변하였고 왜어집단에는 h가 없기에 kana,kane로 바뀌었다. 결국 임나는 御鐵國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기에 金官이라는 용자가 등장했으리라. 金官國 즉 쇠를 관장하는 나라로 해석할 수 있고 官은 kane를 표기한 것으로 역전앞과 같은 구성을 가진 용자가 아닌가 추정된다. 毛乙冬非를 경덕왕은 鐵圓으로 개명했는데 여기서 毛는 훈독자가 아니라 음독자로 해석하여야 한다. 毛乙maqrit:maguri가 비비음화현상(mb)을 반영한 경덕왕대 한자음으로  ba?uri로 해석하여 鐵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bana가 원래 鐵을 의미하지 않고 철을 수출하는 지역명이 철을 지칭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에 다양한 세력이 변진한 지역에 공존하였기에 p > h로 일찍 변하였고 h가 이른시기에 예맥족단내에 구개음화하여 sari로 왜어계는 h가 없어 kane로 반영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m:b:h:k:s의 대응도 가능하다 하겠다. 여하튼 가능성은 있지만 다른 방증자료가 나오지 않는한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겠다.  


이렇듯 한반도에서 농경과 제철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지만 언어상으로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본에 문화를 전수한 반도 내 집단은 辰國, 辰韓, 樂浪 집단으로 가라韓 집단이며 이들의 언어는 예맥어와 차이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하겠다. 혹 任那와 百濟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이들 집단은 일본의 고분문화 이후에 등장하는 세력이기에 도래인 집단으로 치부되었고 언어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辰은 상고음으로 bljɯn(潘悟云:www.eastling.org)으로 재구되는데 서기전후에는 gljan으로 재구할 수 있다. 1세기대에 편찬된 說文解字에 의하면 辰의 성부는 厂 呼旱切으로 나타난다. 이를 종함하면 glan > ljan,gan > djan,han로 변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潘선생은 反의 성부 역시 厂로 추정하지만 說文解字에서 그런 언급은 없다. 여하튼 弁韓과 弁辰이 호용되듯이 韓과 辰은 모두 gara에 대한 이표기로 추정된다. 대동강 평양지역에 辰國세력이 버티고 있어 準王은 바다로 이 평양지역을 피해 마한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우거의 폐망후 위만조선집단은 평양의 qala, 辰國, 樂浪 지역으로 흘러들고 다시 漢세력은 樂浪지역까지 아우르게 되자 위만계와 辰國계는 변진한 지역으로 흘러들어 낙랑과의 무역을 독점하여 서기 3세기까지 성세한다. 이런 정황이 허황옥 설화로 남게 된 것이리라. 2~3세기가 되면 이들 韓지역에 신라,임나,백제등 예맥계의 남하로 辰國집단은 다시 일본으로 흘러들어 일본에서 고분문화를 개창하게 된다.


반도에서는 임나계와 가라계가 김首路와 허황옥의 결혼 설화로 역사적으로 통합되고 토착 왜어계 瓠公집단이었던 辰韓계는 朴이란 성씨로 신라에 종족적으로 통합된다. 고려시대에 들어 토착 辰韓계는 가락국기와 삼국사기의 박혁거세 설화의 형태로 예맥집단과 역사적으로 통합되었음을 인정받게 되고 辰韓집단과의 쟁투는 왜와의 쟁투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김부식이 삼국사를 새로 개편할 필요가 있었고 이런 역사의식을 반드시 개악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http://baaclia.egloos.com/498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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