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 터키, 형제의 말 터키어
오 은경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터키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레 높아졌다. 터키는 한국에게 있어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문화적, 정서적으로는 무척 가깝지만 거리 면에서는 너무나
머나먼 곳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갈 수 있는 곳 터키! 그 곳에 가면 한국 사람들은 ‘칸카르데쉬’라고 하여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며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한국 전쟁에 가장 많은 지상군을 파병하는 전력을 낳기도 하였다.
많은 터키 젊은이들이 수만 리 이국 땅으로 달려와 목숨을 잃었다.
한국인을 사랑하는 터키인의 그 마음을 보면 그 애정은 문화와 혈연을 공유했던 흔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은 비록 각각 동으로, 서로 이주하여 수억 만 리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한국과 터키이지만 기원을 함께 했던 흔적만큼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서양인에 가까운 터키인들과 찢어진 눈의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외모적 거리! 그 사이에서 공유된 기원을 찾는다는 게 가능한 말일까? 그러나 여름이면 우리와 꼭 같은 시큼한 오이지를 먹는 사람들, 똑 떨어지는 정확함이나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정에 연연하며, 그 느슨함이 오히려 훈훈하게 느껴지는 터키 사람들. 이들에게서 한국인들이 친근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어찌 보면, 동양과 서양의 교차로에 자리잡은 터키인들의 현재 모습은 마치 동양 사람이 서양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터키인들이 쓰는 말, 터키어를 알고 나면 한국어와의 유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터키어는 어떤 말인지 살펴보자.
터키어는 약 24개 튀르크1) 제어 가운데 하나로서,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한 터키 공화국에서 현재 사용되는 언어를 말한다. 터키 공화국은 1923년 오스만 제국(Ottoman Empiꠀre)을 청산하고 세속주의 노선으로 출범한 국가의 공식 명칭이다. 터키 학자들은 현대 터키어를 ‘터키 공화국에서 쓰는 튀르크어’라는 뜻으로 “튀르키예 튀르크체시(Türkiye TürkҪeꠀsi)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키어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터키어의 역사는 아주 오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제작 연대가 기원후 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오르혼(Orhon) 비문이다. 그러나 문자보다는 구어가 먼저 발달하게 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구어로서의 터키어는 실제로 8세기 전부터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를 지닌 터키어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유문자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였다. 오르혼 비문에서 사용된 글은 터키어를 기록한 최초의 문자라고 할 수는 있으나 수명이 길지 못하였다. 터키어는 다른 문자를 빌어 기록된 것이 대부분이었고, 오스만 제국(Ottꠀoman Empire) 시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랍 문자를 차용하여 표기하였는데, 이 문자는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된다. 그러나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직후인 1928년 터키에서는 문자 개혁이 일어나게 되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라틴 알파벳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터키어에서 쓰이는 알파벳은 29개의 자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자음은 ‘b c Ҫ d f g ğ h j k l m n p r s ş t v y z’ 로 총 21개, 모음은 ‘a e i ı o ö u ü’ 8개이다.
그렇다면 터키어와 한국어가 갖는 유사성이란 무엇인가? 계통적인 공통점을 살펴보면 터키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설은 매우 의견이 분분하지만, 람스테드(Ramstedt)와 포페(Poppe), 그리고 한국인 학자 이 기문에 의해 한국어가 알타이 제어와 언어적 유사 관계에 있음이 입증되었다. 알타이어 제어의 공통적인 특성들에 비추어 터키어와 한국어에서 찾을 수 있는 유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운론적으로 모음조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모음조화는 알타이어족의 가장 큰 특징이다. 터키어는 한국어보다 매우 엄격한 모음조화 규칙을 갖추고 있으며, 앞 음절의 모음과 뒤 음절의 모음이 유사한 성질을 가진 모음끼리 만나는 음운 현상인 모음조화는 대부분의 순수 어휘나 어미, 접미사 등에서 나타난다. 모음조화를 따르지 않는 어휘는 대개 외래어이다. 단지 한국어와 터키어의 모음조화에 있어 차이가 있다면, 터키어에서는 모음조화가 전설/후설, 원순/비원순의 두 가지로 일어나는 데 비해, 한국어에서는 양성(wide vowel)/음성(narrow vowel)의 조화가 일어난다. 한국어의 경우 중세 한국어에 비해 현대 한국어에서는 모음조화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터키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음조화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둘째, 한국어와 같이 터키어에서도 어두의 자음 조직은 제한을 받는다. 특히 한국어에서 볼 수 있는 유음의 어두 기피 현상을 터키어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 ‘라디오’는 영어 단어 ‘radio’에서 온 외래어이다. 이처럼 한국어에서 /ㄹ/은 터키어에서 /r/과 /l/에 해당하는데, 한국어의 경우처럼 터키어에서도 외래어가 아니면 이것을 어두로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셋째, 문법적 기능을 하는 자음, 모음의 교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구어는 자음이나 모음의 교체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sing’의 과거형과 과거분사형은 각각 ‘sang/sung’이며, 모음의 교체만으로 과거형과 과거분사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와 터키어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문법적 성(性)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인구어에서 발견되는 명사의 남성, 여성, 중성과 같은 성의 구별이 없으며, 단수와 복수 구별도 없다.
다섯째, 한국어와 터키어는 모두 형태적인 측면에서 교착어에 속한다. 형태소의 경계가 분명한 성질인 교착성은 한국어보다는 터키어에서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단어는 어근에 파생 접미사나 어미가 붙어서 만들어지는데 한국어와 같다. 순서는 ‘어근+(파생 접미사)+어미’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가시겠어요?’라는 뜻의 ‘gidecek misiniz’의 경우, ‘git(어근)-ecek(미래 시제 어미)-mi(의문형 어미)-siniz(2인칭 높임 어미)’의 여러 형태소의 결합체로 구성된다.
여섯째, 통사적인 특징을 보면, 한국어에서는 수식하는 말이 반드시 피수식어 앞에 놓인다. 관형어가 명사 앞에 놓이고 부사는 동사 앞에 놓인다. 한국어는 후치사적 언어(postpoꠀsitional)이다. 또 관계절이 왼쪽으로 가지를 쳐 가는 왼쪽 가지치기 언어(left branching langꠀuage)이다. 터키어도 한국어와 같다.
일곱째, 한국어와 터키어는 모두 SOV 언어에 속한다. 문장은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으로 구성되며, 이외의 문장 성분들의 어순을 고정시키는 중요한 요인은 수식-피수식의 관계이다. 수식어는 피수식어 앞에 온다.
이 밖에도 한국어와 터키어에는 인구어에 있는 관사가 없는 경우도 있고, 조사가 발달되어 있으며, 의문문은 문장의 끝에 접사를 붙여서 표현한다는 것도 두 언어의 유사성으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몽고어, 만주-퉁구스어, 한국어와 함께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터키어는 문장 구조와 형태 면에서 한국어와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만주-퉁구스어와는 달리 터키 공화국에서는 라틴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터키어는 한국인이 가장 배우기 쉬운 외국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학적 유사성과 라틴 알파벳에 대한 익숙함으로 볼 때 한국인이 터키어를 습득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터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전체 인구는 약 2억 정도로 추정된다. 터키 공화국 내의 터키인들말고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튀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의 튀르크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터키어의 방언임을 고려해 본다면, 터키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적지 않은 숫자가 될 것이다. 이미 사용 인구 면에서 볼 때 세계 5위라고 밝혀진 바 있기도 하다. 특히 옛 소련에서 독립한 튀르크 공화국들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문자인 시릴 문자 사용을 중단하고, 현재 터키 공화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라틴 문자로 개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된다면,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튀르크어의 단일 문자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단일 문자로 통일된 튀르크어가 발휘할 위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정치, 경제적인 중요성으로 볼 때 적지 않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터키어를 익혀 두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범위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실익적인 측면에서부터, 현재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문제를 보다 우호적으로 해결하는 일 등의 정치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터키어의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도 언어학, 역사학, 비교문학, 민속학, 인류학 등의 한민족의 문화적 위상이나 한국 문화의 기원 연구 등에 새로운 행보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만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우리에게 터키는 너무도 먼 나라였다. 형제의 나라라며 한국을 감싸 왔던 터키에 대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지했다. 잘 알지 못했기에 이질적이라고 생각했고, 우리와는 무관하다고만 여겼다. 이제 세계의 관심이 조심스레 동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만이 지나치게 부각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남‧북한의 통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통일 후 중앙아시아는 우리에게 더욱 밀접한 생활 무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을 넘어 ‘북방 민족’으로서의 한민족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더불어 터키어의 중요성도 인식해야 한다. 터키와 한국의 거리는 터키어를 익히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형제의 나라 터키에게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것이 어쩌면 피의 부름일 수도 있음을, 그 언어적 거리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ꔀ
-----------------------------------
1) ‘튀르크’는 모든 터키족을 통합한 개념으로 ‘대(大)터키’로 표기되기도 한다
출처:http://poohsi.blog.me/90004284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