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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오릉 입구. 이곳에서부터 천손문화연구회는 경주선도문화탐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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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혁거세의 왕릉으로 알려진 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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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오릉. 사적 제 17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이곳에 있는 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赫居世王)과 제2대 남해왕(南解王),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婆娑王) 등
초기의 네 박씨 임금과 혁거세왕의 왕후인 알영왕비의 능으로 전해 온다.
오릉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경주시내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삼국시대 신사고분과 같이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봉토분이다.
남쪽에 있는 숭덕전(崇德殿)은 혁거세왕의 제향을 받드는 제전으로 본래 조선 세종 11년(1429)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렸다. 현존하는 건물은 선조 33년(1600)에 재건하여 숙종 20년(1429)에 수리한 것이며, 경종 3년(1723)에 숭덕전으로 사액되었다.
경내에는 영조 35년(1759)에 세운 혁거세왕과 숭덕전의 내력을 세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혁거세가 승하 후 유체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섯 개로 나누어져 땅에 떨어졌으므로 이를 합장하려 하자 큰 뱀이 나와 방해하므로 그대로 다섯 군데에 매장하였다 하여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박혁거세 관련 전승을 보면 번개 빛, 몸에서 나는 빛, 청명해진 해와 달, 밝다는 뜻의 '밝'을 성으로 삼아 '朴'으로 성을 표기한 점, 이름인 '혁거세(赫居世)' 역시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인 점 등 박혁거세에 관한 모든 수식어가 '빛'과 관련 있다. 이는 박혁거세의 수행자적인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신라의 시대 이념으로 선도문화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단순한 신화의 주인공 인가? 아니면 역사적 인물일까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蘿井)은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깃든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신라 건국신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많은 문헌에 나와 있다. 그 중 <삼국유사>는 박혁거세 탄생설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촌장이 알천에서 회의를 여는데, 양산 아래 나정에 이상한 기운이 하늘로부터 땅에 닿도록 비춰 가보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조사해 보니 자주빛 알 한 개가 있었으며 말은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고 어린 남자 아이를 얻어 동천에 목욕시키니, 해와 달이 청명해져 혁거세왕이라 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단순히 신화의 주인공 일까 아니면 역사적 인물일까? 일반적으로 건국신화는 결국 왕권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능이 있어 ‘신화는 신화일 뿐’이란 시각이 많다. 그래서 건국신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끌어내는 작업은 신중해야 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나정에 우물터, 8각 건물터 등 발굴“혁거세 설화 밝힐 유적 가능성 높다."
3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나정은 박혁거세 탄생설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유적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중앙문화재연구원은 24일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터를 발견한 데 이어 8각건물터를 비롯해 제사의식 관련시설과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주거지와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원은 “8각건물터 아래에서 발견된 우물터와 유구에서 나온 토기 뼈 등을 분석한 결과, 나정은 신라 박혁거세 탄생설화와 연관된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 “8각건물터는 건국시조를 모신 제사시설인 신궁(神宮)터 일 가능성이 높으며 고대건축을 연구하는 풍부한 자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강대 박물관장 이종옥 교수는 “지금까지 이곳에 오면 비각만 있어 과연 나정일까? 의문이 있었다”고 밝히며 “나정에 우물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문헌자료와 연관된 유물이 추가로 발굴됨으로써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정리할 계기가 된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또 이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학자들이 신라건국 신화를 전면 부정한 사실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특히 일제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등 신라초기 역사문헌을 애써 무시하며 한국고대사를 왜곡했으며 해방 후 이런 식민사학 흐름을 그대로 따른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정의 발굴조사로 일제 식민사학의 허구가 드러난 것이란 평가.
지난 24일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 회의는 나정의 가치를 인정한 가운데 추가 조사와 복원방향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영남대 정영화 교수는 “건국신화는 전설이 아닌 실제적인 역사다. 이렇게 건물터가 잘 남아 있는 곳은 드물다. 인근의 오릉 앞 ‘만남의 광장’ 부지에도 귀중한 유물이 대량 발견되고 있는데, 나정 일대를 연계해 조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김동현 석좌교수는 “해방 후 경주유적을 많이 발굴했지만 나정은 처음 보는 귀중한 것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적인 가치가 있다”면서 “그러나 건축초석 배열이 어긋난 점 등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부분도 많다. 복원을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모형제작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