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 :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산43호
고려는 예종이 죽고 나서 계속된 변사 (變事)가 일어났다. 인종때는 이자겸·묘청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의종은 방탕하여 문신정권에서 무신정권으로 정권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며, 그에 이은 명종은 허수아비 왕이었는데 이의방·이고·정중부·경대승·이소응·최충헌 등 무신들의 권력다툼이 일어났으며, 신종때는 최씨 무신정권이 시작되어 최충헌 이래 4대 60여년간 권력세습이 이뤄졌으며, 희종은 최충헌을 살해하려다 폐위되고, 강종은 즉위 2년만에 62세로 폐위됬다.
이런 가운데 고종이 즉위하였는데, 1231년에서 1257년까지 여몽전쟁이 일어난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 제 1차 전쟁 (1231)때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고려는 강화천도를 하여 조정은 다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1232년에는 2차 전쟁이 일어난다. 이 때 가장 혈전을 펼친 곳은 처인성이었다. 그곳을 이끄는 사람은 다름아닌, 승려 김윤후였다. 처인성은 부곡이었다. 노비들의 징집지였던 곳이다. 몽골의 지휘간은 살리타였다. 몽골이 자랑하는 명장이었다. 살리타는 처인부곡따위는 쳐부수고 가자고 했지만, 처인부곡 사람들의 저항은 완강하였다. 김윤후 장군은 전투가 시작되자 마자 살리타를 사살하였고, 급격하게 사기가 떨어진 몽골군은 4만대군에도 불구 2천명의 병사에게 병력 8천명을 잃는 대패를 당했다. 제 3차 여몽전쟁 (1236) 때도 김윤후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고려군의 공격 방법은 정말 허를 찌른다. 솜에 송진을 적신 다음 불을 붙여가지고 몽골군에게 던졌고, 이 방법이 효과를 봐서 몽골군은 많은 사상자를 입고서 퇴각하였다. 1251년에 있었던 제 4차 여몽전쟁때는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졌다. 1254년에는 제 5차 여몽전쟁때는 충주성 전투에서 김윤후 장군의 활약을 볼 수 있다. 그 곳은 현으로, 부곡처럼 노비 징집지였던 곳인데 김윤후가 열심히 싸운 사람에게 노비문서를 태워준다고 하였고, 그 덕분에 충주성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제 6차 (1255), 제 7차 (1257) 여몽전쟁까지 벌어지고야 말았다.
여몽전쟁의 영웅이었던 김윤후, 그 후의 기록이 안남아있다. 고려 조정은 몽골에게 항복하는데, 이 때 삼별초가 난을 일으킨다. (영웅열전 33人 - 배중손 때 자세히 설명) 그러나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7번의 여몽전쟁 중 3번의 참전을 했던 김윤후기에 필자는 삼별초의 난때 김윤후가 참여했다가 실패하자 그 때 김윤후도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영웅열전 32人 - 여몽전쟁의 승병 김윤후|작성자 C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