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공파 음성군 오류리 정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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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 |
목사공파 파조 “숙무”->분묘(상곡리 산23-1) (1426년~1495년) 사인공파 파조 “숙달”->분묘(일산 성석동) (년도 미상) |
족보->P75
족보->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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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
목사공파 / 송우공파 파조 “익” ->분묘(상곡리 산35-1) (1640년~1707년) |
족보->P87, 8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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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
사인공파 “정규” (아산현감) 분묘->일산 성석동 (1677년~1742년) |
족보->P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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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
사인공파 / 경흠 (분묘/일산 성석동) |
사인공파 / 준흠 (분묘/일산 성석동) |
족보->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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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흥한->묘/음성(1793년 졸) 영한->묘/음성(1838년 졸) |
응한->묘/음성(1825년 졸) |
족보->P225,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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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
래양->묘/양평(1828년 졸) 래후->묘/음성(1855년 졸) |
래복->묘/음성(목사공파 출계) (1765년~1833년) |
족보->226, 227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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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군 오류리에 사인공파 최초의 분묘는 경흠(16세)의 둘째부인 전주이씨입니다. (1728년~졸/ 기록 없음) 족보 P226 -> 1790년이후 음성 오류리에 이주한것임. 두 번째 분묘는 경흠의 장남 흥한입니다 (1793년 졸)
* 사인공파 “래복”은(18세) 목사공파 경세의 “자”로(족보 P150) 사인공파로 출계 하였으며, 래복이 사인공파로 출계하면서 양부 응한 그리고 당숙인 흥안, 영한씨가 1790년경 음성군 오류리로 내려와 정착한것으로 판단됨
* 아산현감 “정규”는 부친 “진구” 조부 “호원” 3대에 거쳐 유명한 효자 집안으로 호원, 정규는 효자 정려문이 세워졌고, 후손 경흠, 준흠으로 이어지면서, 조상에대한 효를 다하기 위하여 관향인 음성에 정려를 세우고 정착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판단됨.
* 1970년 흩어져있던 4개의 정려[旌閭]를 합설하여 오류리에 박순사당을 건축한것임
① 박순의 충신문 ② 박순의처 장흥임씨 열려문 ③ 박호원의 효자정문 ④ 박정규의 효자정문
*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거주하는 사인공파는 1790년이후 음성에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오류리 사인공파 선조들의 분묘는 의왕시 청계산, 포천 이장산, 일산 학령산에 있음
* 충민공파 현회장인 박용준씨 집안은 목사공파(송우공파 소속)에서 사인공파로 출계한 “래복”씨 후손으로 음성 박순사당(1970년), 일산 용강서원(1980년) 건축등 목사공파 종중과 합심하여 음성박씨 충민공파 종사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
* 목사공파 상곡리 종산 사정명의인 3인중 1명인 시풍을 송우공파에서는 사인공파 의왕시 청계산 종중 소속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1970년 당시 음성박씨 종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음성 오류리 사인공파는 포천종중 소속으로 다른 종중입니다. 족보에는 같은 이름의 시풍이 3명이 있으며, 사정받은 년도와 일치되는 시풍은 사인공파 의왕시 청계종중 소속으로 목사공파 종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을 송우공파에서 작위적으로 꿰어 맞춰 억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목사공파 음성 상곡리 종산은 1500년경 전에 조성되었으며, 음성군에는 목사공파 후손들만 거주하다가 목사공파(송우공파소속) “래복”이 사인공파 파조로 출계하면서, 1790년이후 음성 오류리에 사인공파 종중이 최초로 정착하게 된 것으로, 음성 상곡리 목사공파 종산에는 사인공파 조상 분묘가 단 1기도 없는 것이며, 또한 사인공파에서 상곡리 종산이 자신들과 관련있다고 주장한적도 단, 한번도 없음.
△박순의 충신문(朴淳 忠臣門)
박순은 태종2년(1402) 함흥차사로 자원하여 태조의환궁(還宮)을 확약 받았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으니,태종은 그의 고향에 충신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게 하고, 남편의 부음(訃音)을 듣고 자결(自決)한 부인 임씨에게는 열녀정문(烈女旌門)을 세우게 하였다.
△박호원의 효자정문(朴浩遠 孝子旌門)
공의 본관은 음성(陰城) 호는 면헌(勉軒), 충민공(忠愍公) 박순의 후예이며 필법(筆法)이 정묘(精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영조1년(1725)에 효자정문이 세워졌다.
△박정규의 효자정문(朴廷珪 孝子廷門)
공의 본관은 음성(陰城)이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였다. 경종조(1721)에 진사에 합격 되어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고 이어 아산현감으로 부임, 애민선정(愛民善政)을 배풀어 어진현감으로 알려졌고 66세에 죽으니 효자정문이 세워졌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 열녀문(朴淳의 妻 長興任氏 烈女門)
박순의 처 임씨는 고려조 대사헌 임헌의 딸로, 함흥차사로 간 남편의 부음(訃音)을 듣고 자결하니 태종이 열녀로 정려(旌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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