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네세는 도메니코 브루사소르치, 잠바티스타 첼로티, 파올로 파리나티 등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매혹되어 줄리오 로마노와 라파엘로, 파르미자노 및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연구했는데 1552년에 만토바 대성당에 그린 웅장하고 화려한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emptation of St. Anthony〉에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성 안토니오 은수자(251∼356)는 251년 이집트 북부의 고마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주였던 부친이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막으로 들어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은거, 수도생활을 한다. 흔히 그를 최초의 수도자라 부르는데 그가 수도원을 설립했고, 엄격한 수도 생활의 모범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성 안토니오 은수자와 관련해서는 그가 홀로 수도생활을 하던 중에 마귀가 끊임없이 그를 유혹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성인은 높은 하늘까지 들려진 후 떨어지는가 하면, 돈의 유혹을 받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1555년에 베로네세는 베네치아의 산세바스티아노 수도원 원장의 의뢰를 받아 교회당 장식에 착수했는데, 그는 나중에 이 교회에 묻혔다. 천장에 그린 〈에스테르 이야기 Story of Esther〉에는 건축물의 번쩍이는 테두리 안에 단축법으로 묘사된 인물들을 배열하는 엄격한 구도, 그리고 밝은 터치 몇 개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전면과 후면의 인물들을 거의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나란히 배열하는 그의 장식적인 취미가 처음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는 13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화려한 복장들이며 여기에서 당시 사치의 극치를 달리던 베네치아의 패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모자의 바로 아래 자리에 4명의 악사들의 좌정해서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당대 베네치아의 대표적 화가들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서 예수님의 기적을 자기들의 삶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자신들의 두발을 끈으로 묶고 있는 에로스를 바라보는 모습은 이 사랑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실 에로스는 카오스, 가이아, 타르타로스와 함께 태초 신에 해당한다. 15세기에 프랑스에서 등장했던 퐁텐블로 화파의 영향으로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란 설이 인기를 끌었고, 그리하여 ·아프로디테의 아들설· 비중이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름다움과 전쟁의 신, 둘 사이의 자식들인 Phobos(공포)-Deimos(근심)-Harmonia(조화)-Eros(사랑)...을 통해 그럴듯한 알레고리가 만들어 진다.
비첸차의 산타코로나 교회에 소장되어 있는 〈동방박사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Magi〉에서 볼 수 있는 색조는 베로네세의 특징인 풍부한 색채를 보여주면서 섬세하고 정확한 붓놀림으로 새로운 친밀감을 그림에 부여하고 있다. 이런 붓놀림은 종교화와 세속적인 그림을 막론하고 그 당시 그려진 소규모 그림에 자주 사용되었다. 이 그림들은 베로네세가 마지막 15년 동안 그린 그림들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진품에 속한다. 그가 이 시기에 두칼레 궁전을 장식한 대작들에서는 그의 공방에서 함께 일한 동생 베네데토와 아들 카를로 및 가브리엘레, 그리고 조카 알비세 달 프리소를 비롯한 다른 화가들이 더 많이 참여한 사실이 뚜렷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베네치아의 한 수도원의 식당에 걸릴 <최후의 만찬>으로 청탁 받은 것이었다. 둥근 아치가 있는 큰 홀에서 성대한 향연이 치러지고 있는 이 그림은 웅장한 건축과 호화로운 비단옷을 입은 인물들 때문에 종교적 내면성이 결여된 작품으로 평가되어 베로네제는 종교재판관에게 불려가 조사까지 받았다. 결국 베로네제의 작품은 <최후의 만찬>으로 부를 수 없게 되었고, <레위 집의 향연>으로 제목을 바꾸도록 강요당했다.
이집트 제19왕조 바로 왕이 유명한 람세스다. 히브리민족의 팽창을 두려워한 그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나일강에 버리도록 명령하는데 버려진 모세를 발견하고 양육한 이는 바로의 딸이었다. 공주의 특별한 비호 속에서 성장하게 되는 이 아기를 모세(히브리식으로는 모샤. 어원은 마사)라고 부른 것은 '물에서 건져낸 아이'라는 뜻이다. 광주리, 궤짝, 방주 등을 통한 구원의 스토리는 매우 특별한 인물의 등장을 설정하는 신화소로 그리스신화, 성서 등에 걸쳐 등장한다.
수행과 묵상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히에로니무스는 기독교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모델 중 한명으로 청빈과 헌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조형에서 단골 등장인물이 된다. 일반적으로 히에로니무스는 사자와 함께 등장하는데 그것은 사자의 가시를 그가 빼어주고 사자가 이를 고마워해서 그를 계속 쫓아 다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라틴 교부들 가운데 가장 학식이 높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동안 은수자(隱修者)로 지낸 뒤 사제가 되었고, 교황 다마수스의 비서로 일했으며, 389년경 베들레헴에 수도원 공동체를 세웠다. 성서·금욕주의·수도원주의·신학에 대해 쓴 수많은 저서들은 중세 초기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라틴어 번역성서 〈불가타Vulgata:대중적 〉로 유명하다.
중세 캐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인성보다는 신성이 강조되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육신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 앞에서 실신하는 모습은 제단화로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15세기 초, 북유럽 웨이던의 작품을 거쳐 16세기 후반에 이르자 베네치아에서도 이러한 금기는 깨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