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 완

시작 노트: 죽음의 길, 새로운 시(詩) / 문학청춘 2026년 여름호 집중특집 3편시

작성자김완(25)|작성시간26.06.15|조회수39 목록 댓글 0

시작 노트: 죽음의 길, 새로운 시()

 

 이번 주말에 30년간 제가 근무했던 병원에서 병원장으로 모셨던 분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불러 모아 그 시절 동고동락했던 옛 동료 몇 사람을 만나 고인을 회고하고 환담했습니다. 불현듯 사랑하는 이의 부고를 접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곤 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언제 타계할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삶은 죽음이기도 하고, 죽음이 삶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죽음은 사람의 갈등을 봉합하고 흩어진 사람을 모이게 합니다.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키며 독특한 장례 문화를 만든 남쪽 섬 진도의 ‘다시래기’는 삶과 죽음을 변증법적으로 뒤집어 상황극을 설정한 전통적인 민속놀이의 하나입니다. 삶의 최종 종착지가 죽음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알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놀이임을 말합니다. 다시래기는 ‘다시 낳기’에서 왔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근거일 것 같습니다. 광주보훈병원 시절 오랫동안 내 환자였던 다시래기의 명인 김귀봉 님의 <김귀봉의 삶과 예술>이란 책.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섬, 진도의 '다시래기'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되돌아보면 2025년은 국가적으로 엄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2·3 불법 계엄 이후 한밤에 국회로 뛰어가 계엄을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 '탄핵봉'이 된 응원봉을 흔들며 광장을 빛의 바다로 만든 청년 여성들, 1980년 광주의 주먹밥처럼 2024년에 쏟아진 선 결제 나눔의 물결, 동짓날 밤 남태령에서 매서운 추위를 함께 견뎌내며 끝내 차 벽을 뚫고 나아간 트랙터를 탄 농민들과 시민들, 광장 안에서 타올라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흘러넘치는 연대의 물결, 소한 강추위에 대설 내리는 밤 은박지를 둘러쓰고 온밤을 지새운 '키세스' 시위 등은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놀라운 시민들의 힘으로 결국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아 왔습니다. 지난해는 개인적으로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앓고 있던 병이 암으로 최종 진단되었습니다. 수술 일자를 잡고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이 그렇게 아플 때까지 다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생(生)이 그렇게 허탈할 수 없었습니다. 니체의 “모든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그 불안과 허탈감을 달래려고 이 지역 정자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정자에 깃든 역사를 되돌아보곤 했습니다. 역사는 실로 만만치 않은 상대이며 언제나 밤의 어둠을 틈타 습격해옵니다. 스승이 말한 순녕사달(順寧舍達)을 생각하며 살았던 원교의 삶, 고통과 유배의 시간은 길었고 순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시간. 죽음을 앞두고 그는 순녕이 곧 사달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내가 시인이라면 어떤 시인인가. 끊임없이 내 안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 안의 낡은 것들과 결별하고 갱신하고 헤쳐 가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역사는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삶의 근본적 양상이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버리고 비워야 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내 낡은 언어(言)처럼 ‘생로병사’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그 길 위에서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2025년 6월 4일 병실에서 바라보는 일출. 불안과 근심 속에서 내 몸의 암 덩이를 제거한 후 시나브로 고통이 가시듯 드디어 새로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주권 정부의 막이 올랐습니다. 수술 후 건강 회복에 노심초사할 즈음, 96세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여 결국 11월 그토록 소망하던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죽은 어머니가 산 형제 자녀들을 불러모아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어머니의 평안을 기원하고 한평생 우리에게 베푼 사랑과 헌신을 추모하였습니다. 어머니!!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자양분이자 기둥이었지요. 우리 형제들은 영원히 마음속 고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함께했던 많은 소중한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버리고 많은 것들을 잃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듯 비움은 새로운 것의 시작입니다. 근심과 즐거움, 신명과 슬픔은 서로 반대로 뒤집으면 됩니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길이 인생의 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의 시작입니다. 망월동 구 묘역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진행되는 김남주 시인 추모식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삶과 죽음, 죽은 자와 산 자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합니다. 영원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다시래기의 미학을 곱씹어봅니다. 지금은 새로운 철학과 서사로 갈아타야 할 때. 새로운 시(詩)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