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_시인_나의_애송시_류시화_시인_길_위에서의_생각
#2026년_광주일보_월간_예향_6월호
<예향> 나의 애송시
김완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전문,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도서출판 푸른 숲, 1991.
1연 15행 8문장으로 구성된 잘 짜인 시입니다. ‘모든 중요한 것들은 길 위에 있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류시화 시인은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아침」이라는 시로 등단한 이후, 세상과 문단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행을 하며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음은 익히 알려진 일입니다. 1980년대 민중과 역사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불투명한 전망의 소용돌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나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하고 큰 영향을 준 시입니다. 저 들끓은 80년대에서 자기를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지상에 잠시 머물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덧없는 생(生), 떠도는 자,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에 정착한 자는 여행을 꿈꾸며,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하며’ 양가감정으로 사는 것. 우리 장삼이사들이 가는 길 위의 인생이지요. 비록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같은 집이 존재하면 좋겠지만 길 위에서 태어나 자라고 스쳐 가는 모든 삶의 도반들과 함께 견디며 배우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집’, ‘빈 들녘의 바람’, ‘삶’, ‘세월’, ‘웃음’, ‘울음’, ‘풀’, ‘살아 있는 자’, ‘죽어가는 자’, ‘자유’, ‘나그네’, ‘길’ 같은 명사와 ‘그리워하는’, ‘울면서’, ‘웃고’, ‘두려워하는’, ‘아쉬워하는’, ‘염려하고’, ‘쓰러지는’ 등의 동사로 구성된 류시화 시인의 이 시는 알기 쉬운 말들로 직조하여 어렵지 않은 구문으로 불꽃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훨훨 떠나고 싶었던 내 젊은 날의 영혼을 들뜨게 했습니다. 이 시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덧없는 생의 슬픔을 위로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지상에서 떠나야 할 시간은 누구에게나 봄눈이 녹듯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듯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요? 유목과 정주의 삶,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고민하는 당신에게 이 한 편의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길 권합니다.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삶이라는 인생의 길 위에서 미아가 되지 않도록 나와 여러분들을 붙잡아줄 것입니다.
시인 김완(金完) 약력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등이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 시인상 수상.
#김완_시인_나의_애송시_류시화_시인_길_위에서의_생각
#2026년_광주일보_월간_예향_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