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역사적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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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는 기원전 1세기경 간다라 지역과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 서부 지역에 유입됐다. 불교는 중국 고유 사상과 결합해 불교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을 이뤄 동양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한나라가 중국 대륙의 상당한 지역을 통치하고 있을 무렵, 인도 스키타이 종족인 월지족(月支族)이 소그디아나(Sogdiana)부터 북인도.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서부지역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나라와 월지족의 지배와 문화적 영향에 노출된 실크로드 주변의 작은 국가들은 중국과 인도 문화가 교류하고 혼합되는 ‘문화 중심지’였다. 이는 불교 전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불교는 중국 서쪽 끝에 해당하는 옥문관(玉門關)을 통과하면서 커다란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다.
한나라 문명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규정된 정치적.사회적 이념과 규범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때문에 개인적 해탈이라는 불교의 교의(敎義)가 스며들 틈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불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나라가 와해되고, 중국 대륙이 분열되는 시대(331년~589년)에 이르러 ‘강력한 종교운동’으로 발전하게 됐다.
기원전 1세기 서부로 유입 고유사상과 결합하며 ‘확산’
589년 중국이 다시 통일 되면서 불교는 정신적.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통치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이르렀다. 지배 이념인 유교와 불교의 충돌이 일어났다.
유교는 생산을 담당하는 백성과 이들을 권위적인 방식으로 다스리는 학자 관료인 두계층으로 이뤄지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인 업.윤회.해탈 같은 관념들이 중국인의 개념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면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일체의 사회적 굴레와 의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불교는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을 효도의 핵심으로 삼았던 중국인들이 수용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초기 중국불교는 기존 이데올로기와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불안정한 공존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중국불교의 성격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지리적 상황에 있다. 3세기 이후 인도 탐랄립티에서 스리랑카와 인도차이나를 지나 중국 광동(廣東)에 이르는 해상로로 불교가 유입됐지만 실크로드에 비해서는 미미했다. 북부 중국을 장악한 비(非)한족 출신의 통치자들은 한족에 비해 불교에 유연하고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경전 번역이 이뤄진 곳도 북부지방이었다.
중국은 인도불교의 다양한 부파와 대승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2세기 대지도론(大智度論), 4세기 중관학(中觀學), 6세기 유식학(唯識學), 8세기 밀교(密敎) 등이 들어와 중국불교로 흡수됐다. 광활한 대륙의 여러 경로를 통해 유입되어 형성된 중국불교는 다양한 교의 체계를 받아들이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불교신문 241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