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소원은 오직 행복 뿐입니다. 이를 위해 돈과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것이고, 사랑과 성공을 추구할 뿐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소원들은 결국 행복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600여년전 붓다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이고, 둘째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나요?”입니다. 그렇기에 붓다의 모든 답변을 담은 8만 4천 경전은 모두 이고(離苦)와 득락(得樂)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자가 행복을 성취하는 과정은 삼보를 믿고, 이해하며, 실천하는 신해행(信解行)을 통해 이고득락을 얻는(證) 것 입니다. 이처럼 순서에 맞게 올바로 수행할 때 원하는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은 정말 다양합니다. 불교의 바다는 너무나도 넓고 깊기 때문에 사람마다 목격한 불법의 모습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 복잡한 불교에 대한 정의는 한 가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이웃종교를 신앙하는 이들을 보면 종교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자들은 30년을 넘게 절에 다녀도 불교가 무엇인지를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목격하죠.
이러한 차이는 단순성과 일치성에서 만들어집니다. 불교에 대한 정의는 어렵고 다양한데 반해 이웃종교의 정의는 매우 단순하고, 또한 일치되는 의견을 가진 것이죠. 물론 불교가 가진 특수성에 의해 다양한 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불자들을 자신감 없는 상태로 둘 수도 없는 일이죠.
부처님을 만나 위의에 감동하거나, 설법을 듣고 난 후 불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말 간단했습니다. 그저 진심을 담아 삼보에 귀의하는 선언을 외치면 되었죠. 즉, 비불자가 불자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모태(母胎)는 바로 삼귀의의 마음인 것이죠.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승가인 삼보는 불자들의 행복여정에 있어 시작과 끝입니다. 귀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의(依)에 초점을 맞추면 삼보에 의지한다는 뜻이 되고, 귀(歸)에 초점을 맞추면 삼보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즉, 삼보에 의지해 행복해지는 노력을 시작하고, 결국 삼보의 특성인 열반의 행복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죠.
삼보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마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불교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함께 하는 이 삼보를 기준으로 불교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고 같습니다.
먼저 불보(佛寶)를 기준으로 불교를 정의하면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다음으로 법보(法寶)를 기준으로 불교를 정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철학이 바로 불교입니다. 마지막으로 승보(僧寶)를 기준으로 불교를 정의하면 부처님이 되기 위한 수행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가 종교인지, 철학인지, 명상수행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학자들이 서양적인 학문의 틀로써 불교를 가두려는 오류입니다. 서양의 세계관에서는 종교와 철학과 명상수행은 분리된 개별적 영역입니다. 이러한 분리를 강조하는 틀에 갇혀 있으면 불교의 참면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불교는 종교이자, 철학이며, 수행입니다. 이 모든 특성을 포괄하는 것이 불교이기에 그 중 특정한 한 가지로 불교를 묶어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시도는 마치 아버지이자 아들이며, 남편인 A라는 사람을 정의할 때 셋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의 종교적인 면에서는 믿음의 자질이 강조됩니다. 믿음은 초월을 특징으로 하는데, 믿음의 힘으로 범부는 성인으로 도약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철학적인 면에서는 이해의 자질을 강조하는데, 이해는 범부가 성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명확한 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실천이 강조됩니다. 믿음과 이해를 통해 성인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고, 지도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그 길을 걸어가야만 삶이 직접적으로 바뀌니까요.
분명 불교는 종교이자, 철학이자, 수행입니다. 복잡다단했던 불교의 정의를 이 셋으로 줄이기만 해도 물론 쉽고 단순해졌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그것은 이 질문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불교의 목적이 무엇인가?”
부처님을 믿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가르침을 배우는 목적은? 수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존재의 모든 소원은 행복으로 귀결됩니다. 즉,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단순하게 불교를 정의한다면 “불교는 행복”입니다.
천수경의 정의
이 책에서는 불교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천수경>이라는 경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코끼리 발자국 안에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포함되듯, 불교라는 큰 틀에 속한 천수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불교가 행복이라는 정의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수경 역시 종교이자, 철학이자, 수행의 측면을 모두 담고 있고 그 목적은 행복입니다. 천수경의 긴 이름은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경>입니다. 이 제목에서 관자재보살, 무애대비심, 대다라니가 천수경의 핵심입니다.
천수경은 종교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관자재보살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는 경전입니다. 또한 철학적인 면으로 본다면 무애대비심을 배우는 경전이며, 수행적인 측면으로는 대다라니 이근원통 수행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배우는 이들의 소원성취를 목적으로 하죠.
어떤가요? 앞서 살펴봤던 삼보를 기준으로 한 불교 정의의 틀이 천수경에도 역시 그대로 적용이 되죠? 이처럼 불교안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결국 행복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아두면 불교가 쉬워집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성취하고 싶다면 불교를 배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며, 무엇이든 소원을 성취하고 싶다면 천수경에 의지해 노력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테니 일단은 가설로써 이를 받아들여보시기를 권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현수 스님 작성시간 18.08.20 스님~ 감사드립니다.
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강승미 작성시간 18.08.21 네.스님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견이도 작성시간 18.09.30 찬찬히 스님의 글들을 다시 보기 합니다. 최상의 방법임을 확신이 들도록 천수경에 의지해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
작성자도우스님 작성시간 18.10.02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경>
경 제목부터 커다랗고 걸림없는 힘을 주실 것만 같습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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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나 작성시간 18.10.16 ()()()
나무아미타불
뱕게 깨어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