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성접대 강요 당하다 결국 자택서 숨져…한 번에 4명 상대한 적도, 너무 심하게 당해 걸을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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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장자연은 원래 재벌가의 딸이었다.
그녀는 19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어느 날 연예계에 강제로 밀려 들어가 남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99년, 뜻밖의 교통사고로 장자연은 부모님을 잃었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인생 궤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부모님의 보호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레고 과자’ CF 촬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녀를 발탁한 곳은 더 콘텐츠(The Contents)라는 연예 기획사였고, 이 회사의 사장은 김성훈이었다.
장자연이 머지않아 꽃과 박수 속에 살아가는 대스타가 될 날을 꿈꾸며 기대로 가득 찼을 때, 그녀는 자신이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먼저, 김성훈은 그녀와 맺은 계약서에 무려 1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 조항을 넣어 두었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연기 기회라는 것은 전적으로 ‘몸’을 팔아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다른 기획사들이 어떻게든 연예인에게 일정을 잡아주기 위해 애쓰는 것과 달리, 김성훈은 한국의 권력자, 정치인들에게 아첨하는 데만 골몰했다.
어느 날, 장자연은 김성훈에게 밀려 세트장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자신이 연기해야 할 것은 ‘정사 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장자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이미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단순히 오버 액션 정도일 거라 생각한 그녀는, 험악한 표정의 ‘남자 배우’가 팬티만 입은 채 자신에게 다가와 무작정 바지를 벗기려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진짜처럼 꾸민 ‘정사 신’이 세트장에서 거침없이 펼쳐졌고, 그 순간 장자연의 마음은 죽은 듯했다.
사건 직후 그녀는 김성훈에게 따지러 갔지만,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장자연 앞에 내던지며 말했다. “계약 위반하면 위약금 10억이다!”
장자연은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고, 괴로움에 오열했다.
위약금을 물 수 없었지만, 장자연은 ‘접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김성훈에게 맞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김성훈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장자연을 작은 방에 가둬 놓고 마구 폭행했다.
지칠 대로 지치고 공포에 휩싸인 장자연은 그때부터 강제로 한국 남성 권력자들을 상대하는 길에 내몰리게 되었다.
02
어느 날 밤, 장자연은 비밀스러운 장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칠순이 훌쩍 넘은 부자를 보자 그녀의 온몸이 벌벌 떨렸다. 바로 롯데그룹의 신격호, 신동빈 부자였다!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롯데그룹 총수 부자는 그날 밤, 그녀에게 비인간적인 모욕과 성폭행을 가했다.
그 후로 이 권력자, 정치인들이 소문을 듣고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진로그룹 박문덕 회장,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국회의원 등 이들은 예외 없이 모두 거물급 인물들이었다.
이들을 더 잘 ‘모시기’ 위해 김성훈은 아예 3층 회의실을 성접대실로 개조해 버렸다.
“새 옷으로 갈아입는 날은 꼭 새로운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자야 하는 날이었다… 너무 더럽고, 내가 너무 비참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이것이 당시 장자연의 진심이었다.
그녀는 그저 권력자들의 장난감이자 도구, 물건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저 즐기기만 할 뿐,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가장 심할 때는 동시에 4명의 손님을 상대해야 했고, 그 후에는 너무 심하게 당해 걸을 수도 없었다.
이런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을 장자연은 수없이 자신에게 던졌다.
그녀는 순진하게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모욕적인 말투로 그녀를 비웃었다.
그녀의 손님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힘이 셌기 때문에, 그녀가 한국 어디에 가도 그녀의 사건을 감히 맡을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장자연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매니저가 선배 이미주를 데려왔다.
이미주는 자신이 장자연을 도와 억울한 일을 풀어주겠노라고 말했다…
장자연은 또 다시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
그녀는 그때 그 일이 자신을 끝장내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03
이미주의 꼬임에 빠진 장자연은 ‘성접대’ 내용과 상대 명단을 직접 적어 주었다.
이미주는 장자연의 필기장을 손에 넣고는 기뻐하며 장자연을 안심시키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주는 돌아서자마자 장자연이 적은 ‘성접대’ 내용과 명단을 들고 사장 김성훈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미주는 예전부터 김성훈과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의 결혼 생활 중 외도 사실이 김성훈에게 쥐여 있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장자연의 ‘성접대’ 내용을 이용해 김성훈을 협박해 계약을 해지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장자연의 귀에 들어갔다. 그녀는 이미주가 자신을 배신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31명의 권력자들은 자신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장자연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학대와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고, 살아도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자신 같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해방일지도 모른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은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29세.
그녀는 자신의 죽음으로 해방과 경각심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죽마저도 그 권력자, 정치인들에 의해 왜곡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04
장자연이 세상을 떠난 후, 언론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19세에 부모를 잃고 성격이 폐쇄적으로 변했으며 우울증을 앓아왔다. 2009년 방영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자신의 분량이 대폭 삭감된 사실을 알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바로 31명의 권력자들이 쓴 수법이었다. 옳고 그름을 뒤바꾸고 진실을 감춘 것이다.
2년 후, 몇몇 정의로운 인사들의 노력 끝에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장자연이 생전에 친구에게 보낸 50여 통의 자필 편지가 공개되었다.
이 편지들에서 장자연은 기획사 사장에게 강요당해 연예계, 금융계, 언론계 등 31명에게 100회 이상 성접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편지 마지막에는 이 31명의 명단도 적혀 있었다.
이 뉴스가 공개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국회에서 ‘장자연법’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된 31명의 권력자들은 교묘하게 처벌을 피해 갔다.
2011년 7월, ‘장자연 성접대 사건’은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알려진 장자연의 전 남자친구 박일택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면서 법원에서 ‘성접대 혐의 증거 불충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기획사 사장 김성훈이 1년형에 2400만 원(약 14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 외에는
그 추악한 31명의 권력자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법망을 빠져나갔다.
8년 후,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자연 성접대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여론의 압박 속에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버닝썬 사건’과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수사를 지시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하는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5월 20일 오후, 대한민국 역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의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자연 명단’을 볼 때 성접대 요구 가능성이 있었으나, 성폭력 관련 수사를 진행할 만한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고 실제 파일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조사는 종료되며 재수사는 어렵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한마디로 말하면, 장자연이 강제로 성접대를 당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 31명의 권력자들도 검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첫째, 핵심 증인이 사라졌다. 장자연의 전 남자친구 박일택과 유일한 목격자 윤지오는 각종 협박과 박해를 받으며 한국을 떠났다.
둘째, 핵심 증거가 없어지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장자연이 직접 쓴 ‘성접대 내용’은 불태워졌고, 그녀의 편지는 경찰이 위조한 것으로 판단했다.
셋째, 사건의 주범들이 워낙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어 하늘을 찌를 듯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인해 ‘장자연 성접대 사건’은 더 이상 뒤집을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연예계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권력을 가진 재벌과 정치인들은 두려울 것이 없다.
법정에 섰을 때조차, 사건에 연루된 진로그룹 박문덕 회장은 장자연 유족에게 왜 1000만 원이라는 출처 불명의 돈을 보냈느냐는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김밥 사주려고 보낸 겁니다.”
박문덕 회장의 숨은 뜻은 분명했다. “그래, 변명조차 하기 귀찮다. 너희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실제로 그랬을까?
그렇다.
바로 올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장자연 성접대 사건’ 재수사 지시를 내렸다는 이유로 ‘명예 훼손’이라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는 분명 그 권력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보복이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전체에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사실 그랬다.
결국 ‘장자연 성접대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