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이용교’입니다
이용교
(광주대 명예교수, 한국복지교육원 원장)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이용교’입니다.
[구글에서 이용교 검색된 이미지]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를 꿈꾸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이용교’로 검색된 책]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를 지향했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이용교로 검색된 연구보고서 등]
https://johntony.tistory.com/401
[조형준이 만난 사람들— 이용교]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이용교’로 검색된 기사]
https://www.facebook.com/share/v/1D1i1kPQdX/
[이용교 교수- 은퇴기념 영상]
제가 지향하는 삶은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입니다.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키운다”고 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3791153
[알라딘에서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키운다- 소개글]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로 잘 살았고, 살 것입니다.
서울사회복지사협회 ‘사회복지 역사와 인물’
https://wish.welfare.seoul.kr/swflmsfront/board/boardlist.do?bmno=10170&pno=10480##
공유복지플랫폼- 이용교 복지상식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한국복지교육원”을 운영할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ewelfare/24PQ
[복지공동체- 자료실]
삶을 성찰하면서 몇 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https://cafe.daum.net/ewelfare/24PQ
[제미나이에게 ‘이용교에 대해 알려줘’ 질문]
https://www.google.com/webhp?hl=ko&sa=X&ved=0ahUKEwj2_5-1iaORAxUqqVYBHdnvC_sQPAgK
[구글에서 이용교로 검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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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이용교’입니다
https://cafe.daum.net/ewelfare/24PQ/4646
이용교
(광주대 명예교수, 한국복지교육원 원장)
안녕하십니까?
이용교입니다. 65년이 넘은 삶을 몇 장의 글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진솔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알려드린 웹사이트를 클릭하면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습니다.
고향이 보성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녹차는 원 없이 먹었겠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도록 녹차를 마셔본 적이 없었습니다. 보성 녹차는 주로 ‘회천면’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23살 때 처음으로 회천면에 가보았습니다. 같은 보성군이지만 녹차가 생산되는 곳과는 생활권이 달랐습니다.
고향인 율어면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해방구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러한 사실도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야 알았고, 자랄 때에는 평범한 농촌이었습니다. 일곱 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 때 급장을 했으며, 졸업식에서 ‘전라남도교육위원회 교육감상’을 탔습니다.
율어중학교에 입학하여 교장, 교감, 다섯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120여 명의 졸업생 중에서 서울대, 중앙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건국대, 부산대, 전남대 등 유명 대학교에 입학한 동기들이 상당했습니다. 시골의 신설 중학교 졸업생들의 성적치고는 괜찮았습니다.
그 당시는 자식농사가 최고라고 했지만 여자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함께 졸업한 44명의 여학생 중에서 제때 혹은 재수로 대학교를 간 사람은 2명에 불과했는데, 한 사람은 면장 딸, 또 한 사람은 교장 딸이었습니다. 다른 딸 대다수는 부산 당감동의 고무신공장이나 서울 구로공단에 가서 미싱을 돌리거나 전자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딸은 집안의 살림 밑천으로 여겨져서 그들의 희생으로 아들이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여섯 살부터 소를 먹이기 시작하여 중학교 졸업까지 10년간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서는 소를 한 마리씩 키웠지만,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었을 때는 늘 2~3마리씩 키웠습니다. 매년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그것을 키워 팔아서 학비에 보탰습니다. 보리와 벼를 수확할 때를 제외하고는 현금이 별로 없는 농촌에서 송아지를 판돈은 큰돈이었고, 3~4년에 한 번씩 캔 ‘작약’은 우리 집안의 재산을 증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를 꿈꾸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는 형을 따라 서울로 가서 학원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1년 반만에 고졸 검정고시를 마쳤지만, 그해 희망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2년을 졸업한 후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학년으로 편입학하였습니다. 이후 방송대는 5년제로 바뀌었는데, 5년제 행정학과도 졸업하였습니다. 행정학을 공부한 것은 사회정책을 형성하고 평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학과”가 생소했기에 제가 중앙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닌다고 하니 사촌형은 “겉보리 팔아서 대학을 간 놈이 고아원 원장 될래, 양로원 원장 될래”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저는 대망의 80년대가 되면 복지사회가 된다고 하여 사회복지학과가 전망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꿈은 “동방의 대학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교수가 되었으니 학자는 된 셈입니다. 대학자에 미치지 못했지만, 사회복지학에 관한 저서와 공저가 200여 권은 넘으니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 잘한 것은 두 가지이었습니다. 하나는 2학년부터 3년간 근로청소년을 위한 야학인 ‘다울중학원’의 교사로 일했습니다. 당시에는 강의하는 학생을 강학, 일하면서 배우는 학생을 노학이라고 했는데, 그때 야학을 통해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다울야학에 가서 강의하면 되었는데, 담임교사, 상담부장, 회장을 맡으면서 거의 매일 다울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첫사랑을 하였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입니다. 고향 친구였던 아내를 세월이 흐른 20대 초 다시 서울에서 만나 십여 년을 교제하다 결혼하였습니다. 아내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풍물패 단비’ 활동을 하다가, 광주로 이사한 후 광주여성의전화에서 상담활동을 하였습니다. 상담과 복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하여 호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1급 사회복지사가 된 후에는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의 소장으로 일하였습니다. 그 현장 경험을 나누고자 성교육및 성희롱예방교육과 가정지원 협의·재판이혼 상담, 대학강사로 일하였습니다.
아들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졸업후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딸은 소비자학을 공부하였는데, 사회복지학도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1급을 취득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사회복지사 1급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를 지향했습니다.
제가 지난 42년간 월급을 받고 상근한 직장은 총 3개입니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복지정책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일하였습니다. 지도교수인 김영모 교수님이 설립한 연구소에서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복지서비스 등 사회복지정책을 연구하였습니다. 종합사회복지관의 시범운영 연구(1985년경), 복지사무소의 시범운영 등을 연구하였고, 400여개 의료보험조합으로 분산된 건강보험의 통합방안, 국민연금을 농어민과 자영자에게 확대하는 방안 등을 연구하였습니다. 대부분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복지정책 연구에 대한 기본을 배우고, 연구한 것을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게 하는 사회운동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이 후에 서울특별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이 된 성공회대 정종우 교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일한 중앙대 김연명 교수 등입니다.
두 번째로 일한 직장은 1989년에 창립된 한국청소년연구원(후에 한국청소년개발원, 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1997년초까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청소년쉼터’를 1991년에 제안하고, ‘청소년자원봉사센터’(현 청소년활동진흥센터)를 1995년에 설립방안을 제시했으며, 1991년에 청소년상담의 발전방안을 연구했습니다. 제안된 청소년정책은 대부분 그대로 집행되었습니다.
1992년과 1993년에 청소년지도자 총서 9권을 개발하였으며, 청소년지도사, 청소년상담사의 제도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청소년복지론, 청소년지도론, 청소년심리학, 청소년문화론 등의 교재를 최윤진 책임연구원(후에 중앙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김혁진 연구원 등과 기획하였고, 그중 일부를 집필하였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필요로 하는 것을 새로 만들거나 초보적인 수준에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데 나름 공헌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91년에 한국청소년학회를 발기하여 창립하고, 초대 간사로 일하면서 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소년학을 정립하였습니다. 한국 청소년정책의 형성과정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국YMCA전국연맹의 청소년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였고, 서울・고양・광주YMCA 청소년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참여자치21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등 엔지오활동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제가 사회운동을 활발하게 펼칠 것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으로 30년간 참여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복지운동을 펼친 사회복지학과 교수, 법률가, 사회운동가들과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사회복지학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 등 다양한 전문가단체도 참여했습니다. 특히, 2013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광주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권익을 옹호하는 강한 협회”를 공약했고, 그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2013년에 광주지역 사회복지사들은 ‘2011년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았습니다. 사회복지사협회가 중심이 되고 사회복지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과 연대하여 ‘처우개선연대’를 만들고, 정책토론회, 시장・시의회 방문, 언론홍보, 시청앞에서 1인 시위 등을 통해 마침내 2016년에 그해 기준에 맞는 임금을 받도록 했습니다. 또한,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향상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여, 처우개선지원협의회에 ‘사회복지기관의 직원’과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추천하는 사람’을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성과를 정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을 때와 그 이후에 인권에 기반한 사회복지실천을 위해 ‘인권교육총서’를 10종 이상 개발하였습니다. 즉, ‘인권과복지’, ‘아동인권’, ‘노인인권’, ‘장애인인권’, ‘사회복지사의 인권’ 등을 수년간 지속적으로 출판하고 보급하였습니다. 인권 전문가로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정립하고, 사회복지사의 인권까지 보장하는 방안을 연구하였습니다. 인권 관련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권전문직으로서 사회복지사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키웠습니다.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997년 3월부터 2026년 2월까지 29년간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사회복지를 발전시키고, 한국 사회복지의 지평을 넓히며, 지구촌 사회복지사의 길을 꿈꾸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광주사회복지에 기여한 것을 몇 가지만 소개하면, 광주・전남에 있는 사회복지학과 교수들과 협력하여 광주복지아카데미를 기획하여 ‘광주사회복지론’이란 책을 만들었습니다. 참여자치21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복지정책을 제안하고, 광주광역시 청소년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복지정책의 형성에 기여하였습니다. 후에 남구청장이 된 황일봉 회장과 함께 남구사회복지협의회를 창립하였고, 남구지역사회복지협의체 대표 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복지성지 남구 뿌리찾기아카데미’를 기획하였습니다.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서 학부장으로 일하면서 학부 행정을 표준화하고 전산화시켰으며 2년간 학부행사와 각종 활동을 학부 홈페이지에서 게시하였습니다. 학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연간 1억 원이 넘는 학부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여 그 주요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지하였습니다.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0년사를 발간한 것은 학과(부)의 자부심이고 저의 자랑입니다. 이후 광주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20년사도 기획하였고, 사회복지학부 33주년 기념 사진전도 제안하여 알차게 수행하였습니다.
2005년에 참여복지센터를 설립하여 사회복지사와 시민을 위한 복지교육의 산실로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2009년부터 3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서 수행한 ‘농어촌복지활동가 양성사업’은 전국에서 128회의 복지강좌를 기획하여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복지교육의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광주대학교 교수로 일하면서 늘 대한민국 사회복지교육의 표준을 만들고 복지정책을 개발하여 복지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주로 관심을 가졌던 아동복지와 청소년복지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때 비인가시설이었던 공부방을 아동복지법상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시키고 전국화 시켰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지역아동센터가 가장 많은 곳이 광주와 전남인데, 제가 ‘지역아동센터의 설치와 운영’을 가르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국에서 광주에 공동생활가정이 가장 많은 이유도 같습니다. 학교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 교육복지사의 직무 개발과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고, 학교사회복지사의 제도화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아울러, 청소년쉼터, 청소년자원봉사센터(현 청소년활동진흥센터),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단체 등은 저의 활동 근거지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청소년복지학회를 창립시키고 학회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복지학회 총무분과위원장,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 인증분과위원장, 한국사회복지사협회 1급 시험 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복지정책을 실용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와 예비 사회복지사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7월에 만든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http://cafe.daum.net/ewelfare 덕분이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설립과 운영을 가르친 아동복지아카데미,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대비하여 노인복지시설의 설립과 운영을 가르친 노인복지아카데미를 비롯하여 20여 개가 넘는 복지아카데미를 기획하여 오프라인·온라인 강의를 운영하였습니다.
제가 특별하게 개척한 분야는 ‘국제사회복지’입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도움을 받았던 한국에서 도움을 주는 대한민국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고, 실천 방안을 강구하였습니다.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함께 일했던 천정웅 박사가 미국 캔사스대학교에 유학 중일 때 ‘아동청소년학월드포럼’을 함께 기획하고,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복지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고, 이후 글로벌청소년학회 회장으로 일하였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서 광주대학교에서 ‘국제개발협력과 국제복지’를 강의하였고, ‘국제사회복지사의 길’을 출판하는 등 국제사회복지학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삶은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입니다.
제가 지향하는 삶은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이고 이미 온라인을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처음에는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학생들과 과제물을 ‘이메일’로 받아서 1997년에 ‘복지대통령 만들기’를 기획한 이후 대학생·대학원생과 1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복지시장 만들기, 복지공동체 만들기, 시설과 인물, 새천년을 열어갈 사회복지사의 길, 디지털 사회복지사의 길, 사회복지대학생의 길, 지구촌 청소년과 내가 할 일 등은 그중 일부입니다.
새천년이 시작될 때 저는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적응능력이 뛰어난 ‘디지털 사회복지’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2000년에 한국복지교육원을 만들어서 다양한 복지아카데미 http://www.okwelfare.net 를 기획하였습니다. 한일월드컵이 끝난 직후 2002년 7월 23일에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http://cafe.daum.net/ewelfare 를 통해서 복지세상을 활짝 열었습니다. 카페를 만들 때는 회원이 한 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51,581명으로 늘었습니다. 다음 포털 복지분야 카페에서 수년간 랭킹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생은 사회복지학을 학습하고, 사회복지사 1급 시험 수험생은 모의고사를 보았습니다. 청년 사회복지사들은 ‘구인구직 게시판’을 통해 일자리를 얻고, 현장 사회복지사들은 ‘교육과 행사’ 정보를 공유하였습니다. 복지자료실에서는 6000개 넘은 복지정보를 ‘한글파일’로 내려받았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역량을 개발하고 정치적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의 공개를 주장했고,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만 한 문제당 50초이었던 부당한 차별을 60초로 연장하도록 주장하여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세계 최초로 ‘복지평론가’란 새 직업을 창출하여 복지칼럼을 쓰고 그것을 묶어서 ‘복지는 생활이다’, ‘디지털 복지시대’ 등 다수의 복지평론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대학생들과 복지를 함께 공부하고, 사회복지사와 복지정보를 나누며, 시민을 위한 복지교육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알아야 챙기는 산재보험’, ‘알아야 챙기는 건강보험’, ‘알아야 챙기는 고용보험’, ‘알아야 챙기는 복지상식’ 등을 발간하였습니다. 이후 ‘상식으로 알아야 할 국민연금’, ‘상식으로 알아야 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알아야 챙기는 주거복지상식’, ‘알아야 챙기는 건강보험상식’ 등을 기획하였습니다.
한국복지교육원을 만든 이유도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에게 더욱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대학생이 훈련받았고, 다양한 아카데미를 통해 수많은 사회복지사와 시민들이 복지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연구원인 정민기 문화행동샾 대표를 비롯하여 수많은 연구원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실력있는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지교육의 참여자를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넘어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에 관심있는 시민으로 확장하기 위해 2005년에 참여복지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참여복지센터는 전국민을 상대로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교육사업을 기획하였습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매년 2억 원씩 3년간 ‘농어촌복지활동가 양성사업’을 수주하여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키운다”고 봅니다.
저는 46년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39년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복지학을 발전시키고 사회복지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동안 혼자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책과 보고서 200여 권의 해제집으로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키운다’를 발간하였습니다.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 책(보고서)을 썼고, 무슨 내용을 담았으며, 그 책이 미친 사회적 영향 등을 기록했습니다. 출판된 책은 독자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것을 쓴 과정과 이후 영향 등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새로 집필하였습니다.
필자는 1984년 9월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사회복지학과) 입학을 앞둔 여름에 한국복지정책연구소의 연구사업에 조사요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1986년 6월부터 같은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청소년 생활실태조사, 도시빈민 연구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1989년 7월에 설립된 한국청소년연구원에서 주임연구원으로 청소년복지를 연구하고 청소년지도자 총서를 개발하는 등 청소년학을 정립하였습니다. 1989년에 아동권리협약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고 1991년에 한국도 이 협약을 비준하면서 아동·청소년인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1997년 3월부터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부) 교수로 일하면서 사회복지학의 교재로 디지털 사회복지(학)개론, 디지털 청소년복지, 디지털 사회보장론 등을 집필하여 ‘디지털 복지시대’를 열었습니다. 또한, 2000년에 한국복지교육원을 만들어서 시민에게 사회복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복지평론을 쓰고, 복지상식을 널리 알리는 복지교육을 실천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후 아동·청소년인권 관련 연구에 많이 참여하였고, 정부와 엔지오가 발주한 연구용역을 수주하여 지역사회복지(보장)계획 수립을 비롯하여 다양한 연구보고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사회복지 역사와 인물에 관심이 많아 꾸준히 연구하였습니다. 정년을 앞두고 집필한 책과 보고서 중 200권에 대한 ‘해제집’을 만들어 도움을 준 분들께 마음의 빚을 갚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원고를 쓸 때 ‘사초’를 쓰는 자세로 기록하였습니다. 책에 거론된 사건이나 인물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해당 인물의 당시 역할을 기록하였습니다. 고인이 된 분도 있고, 생존한 분도 있지만 사실을 가감없이 기록했습니다. 필자와 함께 책을 쓴 집필자들이 많아서 ‘인명 색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소개된 사람 중에는 여러 차례 참여한 사람이 적지 않아 필자와 책을 통한 교류를 넘어 학문공동체를 형성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하고 필자의 시각과 다를 수도 있기에 이 책에 쓰인 ‘사실’은 ‘진실’ 자체라기보다 필자의 관점에서 쓴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사실도 왜곡될 수 있기에 필자는 알고 있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기억을 더듬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글, 주고받은 이메일, 신문 기사, 다른 사람이 쓴 글, 해당 기관 홈페이지 내용 등을 인용하여 객관성을 최대한 높였습니다. 한국복지교육원,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에 당시 문서가 있어서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단행본을 발행한 출판사와 관계자, 보고서를 의뢰한 연구기관을 비롯한 발주처와 관계자, 다양한 학술모임을 이끌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로 잘 살았고, 살 것입니다.
저는 1980년부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1984년에 사회복지사를 취득한 후 한국복지정책연구소, 한국청소년개발원, 광주대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1986년에 직장생활을 한 이래로 하루도 ‘실업급여’를 받지 않고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로 살았습니다. 제 이름 이용교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얼굴용(容)이란 항렬에 가르칠교(敎)를 붙인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라”는 뜻을 이름에 새겨놓았고,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대학생을 가르친 것은 1987년 9월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학교)이었고, 이후 청주대, 중앙대, 중앙승가대, 동국대, 영산원불교대, 광주대, 한국디지털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방송통신대, 동신대 등 수많은 대학교에서 강의했습니다. 돈을 받고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졸업 직후 사촌과 그 친구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과외 지도했고, 대학생 시절에는 2년간 다울중학원에서 야학교사를 했으니 강의경력은 50년이 넘는 셈입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는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미국 사회사업학은 사회사업가에게 개인·가족·집단·지역사회의 변화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는 개인·집단·지역사회의 변화를 넘어 세상을 바꾸고,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 변화는 자신이 몸담은 학교, 직장, 지역사회, 나라, 지구촌, 그리고 가상공간 등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만약, 대학생이 어떻게 살면 좋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광주대 사회복지학과 97학번의 학창생활과 졸업 이후를 보기 바랍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어깨동무’라는 최초 소모임을 만들어서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학기를 마칠 쯤에는 무등산에 올라 수박도 깨먹고 노래자랑도 하였습니다. 졸업한 이후에는 대부분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모임을 만들어 결혼 등 경조사를 챙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이 조직을 더욱 강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사회복지학부 학부장으로 23명의 교수진과 함께 1000여 명의 대학생을 가르칠 때, 주요 학부 행사는 교수님과 학생 대표들과 의논하였습니다. 실습비, 장학금 배정과 같은 중요한 사항을 학부 홈페이지에 보고하고, 학생의 의견을 들어서 소모임 지원하며, 학생 주도로 현장실습 발표회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지도력은 실제 일을 하면서 개발되고 성장하기에 실무를 익힐 기회를 갖도록 했습니다. 광주대학교에서 29년간 1만 여명의 사회복지학부 대학생과 대학원에서 1천 여명의 석사・박사를 배출시켰습니다.
저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이 땅의 사회복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길 희망했습니다. 대학 강사시절에 중앙대생들과 복지선각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야기 사회복지’를 편집했고, 광주대학교 대학원생들과 시설과 인물, 한국 사회복지를 개척한 인물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지난 100년 최흥종 목사, 강순명 목사, 이현필 선생, 서서평 선교사, 조아라 여사 등 광주 어른들의 복지활동을 정리하여 ‘한국 사회복지를 개척한 인물’을 출판하였습니다. 단독으로 저술한 ‘사회복지 역사와 인물’은 대한민국학술원이 선정한 ‘2025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현재 서울특별시사회복지사협회 홈페이지에 매달 ‘사회복지 역사와 인물’을 한편씩 기고하고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한국복지교육원”을 운영할 것입니다.
2026년 2월말 정년 퇴임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은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입니다. 저는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숨 잘 쉬고, 밥 잘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 생각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사회복지사,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는 사회복지사”로 살아갈 것입니다. 2000년 1월 1일에 만든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한국복지교육원을 통해 시민 복지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지구촌에서 최초로 만든 ‘복지평론가’로서 모든 시민이 헌법에 규정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복지상식을 널리 전파하겠습니다. 10년 넘게 매주 ‘이용교 복지상식’을 집필하여 일간신문 드림투데이에 기고하는데, 같은 내용을 ‘광주평화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전달했습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나 방송 혹은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브런치, 공유복지플랫폼, 유튜브 등에서도 ‘이용교 교수의 복지상식’을 보거나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ish.welfare.seoul.kr/swflmsfront/sharemain.do
공부한 내용을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이나 각종 시민을 위한 복지강좌 등에서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강의는 불러주어야 할 수 있으므로 여러분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알아야 챙기는 국민연금, 알아야 챙기는 건강보험, 알아야 챙기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복지사각지대의 예방과 발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책의 파일을 최신 정보로 고쳐서 공유할 것입니다. 2026년 기준에 맞추어서 대부분 수정하여 파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무상으로 내려받을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으니 널리 활용하기 바랍니다. 저의 꿈은 오천만 국민이 헌법에 규정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ewelfare/24PQ
한국 사회복지 역사와 인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입니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대부분 서양의 역사이고 한국 역사가 빈약합니다. 한국 사회복지역사도 조선시대 이전의 내용이 많고, 해방 후 역사는 제도나 법령의 변화를 중심으로 기술된 것이 많습니다. 필자는 조선 후기부터 최근까지 한국 사회복지 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합니다. 특정 인물의 생애사와 특정 기관·단체·시설의 역사를 좀 더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입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사회복지계 원로를 인터뷰하여 영상과 문서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삶을 성찰하면서 몇 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복지학자로 살아온 삶을 성찰하면서 여러분께 몇 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여행은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시즌 무더운 여름날에 광주대학생들과 뉴질랜드 로토루아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옆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한 것을 기억합니다. 광주대학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교수님들과 한겨울에 해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등반한 것도 선명합니다. 온 가족이 34일간 800키로를 걸었던 ‘산티아고 가족여행’은 책으로도 발간되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기 바랍니다. 청년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찌고 움직이기만 해도 근육이 붙습니다. 노년기가 되면 근육을 만들기는 어렵고 덜 빠지도록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맛있게 먹고, 주기적으로 운동하기 바랍니다. 저는 코로나 19 기간에도 매일 집 앞에 있는 송화산을 걷고 등산로를 정비했습니다. 지금은 송화산 등산로가 맨발걷기에 좋은 오솔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한 시간 정도 운동하면 삶의 질을 높이고 병원비를 확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AI시대이니 이들과 친구가 되기 바랍니다. 제미나이에게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이용교 교수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었더니, 답변은 “이용교 교수는 한국 사회복지 및 디지털 복지 패러다임 개척에 관한 전문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s://cafe.daum.net/ewelfare/24PQ
또한, 지금 여기에서 구글에서 ‘이용교’로 검색해보기 바랍니다. 전체 검색, 이미지, 영상 등 어떤 내용이 검색됩니까?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이나 익숙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하기 바랍니다. 만약 이용교와 여러분에 대한 검색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AI도 텍스트가 있어야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귀하가 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텍스트를 만들어서 올려야 그것을 바탕으로 일합니다. 생성형 AI에게 묻지만 말고, AI에게 밥을 주기적으로 주기 바랍니다.
https://www.google.com/webhp?hl=ko&sa=X&ved=0ahUKEwj2_5-1iaORAxUqqVYBHdnvC_sQPA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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