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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수다

서울 아현동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작성자박미미|작성시간26.06.13|조회수15 목록 댓글 6

     이국적 비잔틴 양식 돔 건물…

                     천장과 벽까지 성화로 가득한 도심 속 성소

서울 아현동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전경. 푸른빛 도는 돔 지붕으로 과거 이 지역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이정표 같았던 건물…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1980~1990년대 서울 여의도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동쯤에 이르면 아현동 언덕길에 뚜렷한 ‘이정표(?)’가 보였다.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건물과 주택들 사이로 둥근 돔이 큼지막하게 자리한 것.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다. 천주교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의 첨탑에 익숙하던 사람들의 눈에 동그란 돔의 대성당은 왠지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흰색 벽 건물은 사진으로만 보던 지중해 인근의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젠가부터 정교회 대성당이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게 됐다.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주상복합 건물과 아파트 등이 대성당을 둘러싸게 된 것. 이정표 역할은 이제 접었지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정교회 시작은 1900년… 대성당은 1968년 건축

대성당이 현재 위치에 지어진 것은 1968년. 그 뿌리는 1900년 정교회가 한국에 처음 전해진 인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에서 흐리산프 신부가 한국에 파견된 것. 흐리산프 신부는 1903년 서울 정동 옛 러시아 공사관 인근에 니콜라스 성인에게 봉헌한 임시 성당을 마련했다. 현재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정교회는 전파 직후부터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한복판에 휩쓸리게 된다. 러일전쟁(1904~1905)이 첫 고비.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한국에 거주하던 모든 러시아인을 출국시켰다. 흐리산프 신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의 파도는 계속됐다. 러시아 혁명,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정교회는 성직자도 건물도 모두 잃게 된다. 신자들도 피난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정교회 공동체도 위기를 맞았다.

정교회가 재건 발판을 마련한 것은 역설적으로 6·25 전쟁이 계기가 됐다. UN군으로 참전한 그리스군(軍) 종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의 노력 덕분에 서울의 교회 공동체는 다시 활기를 띠게 것. 또한 그의 노력 덕분에 한국인 보리스 문이춘 사제가 서품됐다. 이후 정교회 공동체는 적산(敵産)으로 몰수된 토지를 되찾기 위해 애쓰다 1968년 현재의 아현동 자리에 비잔틴 양식으로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짓게 됐다.

로마 시대 ‘카타콤베’ 연상시키는 지하 성 막심 성당

이 성당 안토니오스 임종훈 신부 안내로 성당을 둘러보았다. 임 신부는 먼저 대성당 맞은편 건물 지하의 막심 성당으로 안내했다. 지하라서 캄캄했다. 성당 입구엔 가느다란 양초가 쌓여 있었다. 성당에 온 신자들은 가장 먼저 초를 켠다고 했다. 임 신부는 “로마 시대 지하 묘지 예배소인 ‘카타콤베’가 원형”이라고 했다. 지하 묘지에 불을 밝히며 들어서듯이 어둠을 밝히는 동시에 ‘빛’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정성스러운 행위다.

불을 켜자 성당 안을 가득 채운 금빛 성화(이콘)가 방문객을 맞는다. 천장까지 성화로 가득하다. 성화 덕분에 정교회 성당은 하나의 ‘교실’을 연상케 했다.

예배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신자들이 나누는 성찬례를 거행하는 지성소 위에는 ‘최후의 만찬’ 성화가 걸려 있다. 지성소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모습이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 성당에 앉아 있기만 해도 성화를 통해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삶과 신앙을 배울 수 있도록 한 공간적 배려다.

막심 성당은 현재 로만 카브착 사제의 인도로 슬라브어권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다. 막심 성당의 지성소를 비롯한 많은 부분은 서울 정동에 있었던 최초의 성당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지성소 안에는 사람 이름을 적은 쪽지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신자들이 적어 낸 죽은 이들의 이름이다. 성찬 예배 때에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추도식을 하는데, 추도식만 15~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2층 성가대석에서 내려다본 내부 모습. 

 

성당 바닥엔 세례식 위한 세례조 설치

임 신부가 성당 뒤쪽 바닥에 깔린 카펫을 걷고 돌판을 들어냈다. 그 아래엔 직사각형으로 파인 부분이 나타났다. 세례조(洗禮槽)다. 세례식 때 사제와 세례받을 사람이 들어가 침례(浸禮)하는 곳이다.

막심 성당 입구엔 수도꼭지가 달린 작은 물통이 있었다. 성수(聖水)통이다. 천주교 성당에도 성수대가 있다. 천주교 성수와 다른 점은 연초에 성수 축성을 하면 1년 내내 사용하고 마실 수도 있다는 점. 신자들은 실제로 성수를 작은 컵에 따라 집에 가져가서 일반 물과 섞어서 마신다고 한다.

지하 막심 성당을 나와 대성당으로 향한다. 대성당 입구 왼편 종탑에는 크고 작은 종 5개가 매달려 있다. 가운데 큰 종과 작은 종 하나는 러시아에서 제작된 정동 시절부터 있던 종이며 나머지 종 3개는 6·25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군 장병들이 귀국할 때 봉급을 모아 만들어 보내준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로부터 시작돼 그리스 종군 사제의 노력으로 재건된 한국 정교회의 역사를 실물로 간직한 종탑인 셈이다.

성경 내용 담은 벽화로 가득한 대성당

막심 성당이 카타콤베를 연상시킨다면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빛으로 가득하고 규모 또한 몇십 배로 확대해 놓은 느낌이다. 성화로 가득한 점은 같다. 성당 중앙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본다.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져 있고 ‘만물의 주관자’라고 적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두 개의 동심원 형태로 천사들과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그려져 있다.

정면엔 궁륭 위에서부터 지성소 뒤편까지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의 ‘최후의 만찬’ 장면이 차례로 묘사돼 있다. 만찬 장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손에는 빵, 왼손에는 포도주 잔을 들고 있다. 좌우로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려 두 손 모아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다.

성당 오른쪽 벽면 위에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는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 위쪽 원에서 아기 예수 머리 위로 직선이 내려오는데, 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의미한다. 정교회 성화에서 하느님은 빛이나 원으로 표현된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에서 하느님을 할아버지 모습으로 그린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 아래로 ‘주님의 변모’, 부활 후 ‘성신 강림’ 장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성당 왼편 벽엔 ‘주님의 부활’이란 제목 아래 예수가 지하 세계에서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모든 죽은 이를 살리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 속 예수 아래로는 부서진 경첩과 문이 보인다. 원래는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죽음의 문이지만 예수님이 깨부순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 아래로는 ‘십자가에 달리심’ ‘주님의 세례’라는 제목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당의 네 기둥 위에는 4대 복음사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입구 위에는 이 성당의 주보성인인 성 니콜라스의 모습이 장식돼 있다.

이렇듯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실내외의 성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경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구조이다. 대성당이 이 지역 재개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성당을 가득 메운 성화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방문객과 기도 발길 이어지는 도심 속 성소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서양인 부부가 들어와 성호를 긋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잠시 후엔 한 남성이 혼자 들어와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임 신부는 “천주교, 개신교 신자들의 단체 방문 신청도 많고 혼자 오셔서 기도하는 분도 많다”고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가운데 두 손 모은 신자들의 모습은 이곳이 지금도 도심 속의 성소(聖所)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내부 모습. 천장과 벽엔 성경의 내용을 담은 성화가 가득하다. /사진=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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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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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미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지하철 애오개역 옆이네. 주위에는 아파트들이고, 바로옆에는 교회도 있고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이원정 | 작성시간 26.06.13 한국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 in Korea)는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큰 줄기(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중 하나로,
    2,000년 전 초기 교회의 전통과 예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례(예배)의 형태와 신학적 강조점에서
    천주교(가톨릭)나 개신교와는 아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1. 한국 정교회 전례(성체성혈예배)의 핵심 특징
    정교회의 미사 혹은 예배는 '성체성혈예배(Divine Liturgy)'라고 부르며,
    온 감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작성자이원정 | 작성시간 26.06.13 무반주 성가(아카펠라): 정교회 전례에서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의 목소리만이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순수한 악기라고 믿기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이 주고받는 모든 기도가 아름다운 무반주 찬양으로 진행됩니다.

    성향(향을 피움): 전례 내내 끊임없이 향을 피웁니다. 올라가는 향 연기는 신자들의 기도가 하늘로 상달됨을 뜻하며,
    ..........................성당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후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이코노스타시스(성화벽): 정교회 성당 내부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
    ...........................신자들이 앉는 공간과 지성소(제단)를 분리하는 거대한 성화벽입니다. .
    ..........................이는 하늘나라와 지상을 연결하는 문을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이콘(Icon)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작성자Younghee Kim 오하이오 영희 | 작성시간 26.06.14 한국에도 그리스 정교회가 있구나 !! 경건하다 !!
  • 작성자재경이가 | 작성시간 26.06.16 이 이야기가 내가 서울에 있었을 때보았다면 아마 꼭 가 보려고 했을거야..
    정교회는 성공회와 또 달라 신기하게 보았을텐데…
    정동에 있던 성당을 문화방송에 팔고 이사 간곳으로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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