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책 이야기] 암기는 창의력의 敵인가
고대의 서사시 전통이 대부분 그렇듯,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민족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억과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왔다. 18편 10만 송(頌)의 시구와 부록 '하리바니사' 1편 10만 6천송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것을 암기하여 노래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전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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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최대의 천재로도 일컬어지는 승조(僧肇: 383?~414?)는 책 베끼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책을 베끼면서 승조는 책 내용을 모두 암기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승조가 중국 최고의 학승이 되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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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는 문맹이었지만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유명했다. 그는 문학.예술.사상 등에 두루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지식인 군주였다. 동서 사상 교류사의 거인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또 어떤가?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출판사)에서 기억과 관념을 구체적 형태를 가진 기억용 이미지로 만들어 보전하는 기억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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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여러 가지를 열람하여 기억을 잘하는 것,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사례들이라 할만 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기억의 필요성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매체가 '뇌수의 분실'(이하윤의 수필 '메모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도구가 있으니,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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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육에서도 창의력을 워낙 강조해서 그런지 암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차라리 '공공의 적'으로까지 지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암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이지 암기 자체가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은 아니다. 좋은 시, 좋은 문장이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건 지성과 감성의 도야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창의력과 암기를 일종의 상호 모순관계로 파악하는 관견(管見)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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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그 기관은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유명한 라마르크가 '동물철학'(1809)에서 설파한 제1법칙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흔적 기관, 아니 흔적 기능이 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부분적으로는 책의 위기와 기억력의 위기가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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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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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 16:57 입력 / 2003.09.19 17: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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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Joins.com All rights reserved
고대의 서사시 전통이 대부분 그렇듯,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민족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억과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왔다. 18편 10만 송(頌)의 시구와 부록 '하리바니사' 1편 10만 6천송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것을 암기하여 노래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전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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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최대의 천재로도 일컬어지는 승조(僧肇: 383?~414?)는 책 베끼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책을 베끼면서 승조는 책 내용을 모두 암기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승조가 중국 최고의 학승이 되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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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는 문맹이었지만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유명했다. 그는 문학.예술.사상 등에 두루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지식인 군주였다. 동서 사상 교류사의 거인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또 어떤가?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출판사)에서 기억과 관념을 구체적 형태를 가진 기억용 이미지로 만들어 보전하는 기억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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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여러 가지를 열람하여 기억을 잘하는 것,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사례들이라 할만 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기억의 필요성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매체가 '뇌수의 분실'(이하윤의 수필 '메모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도구가 있으니,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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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육에서도 창의력을 워낙 강조해서 그런지 암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차라리 '공공의 적'으로까지 지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암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이지 암기 자체가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은 아니다. 좋은 시, 좋은 문장이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건 지성과 감성의 도야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창의력과 암기를 일종의 상호 모순관계로 파악하는 관견(管見)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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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그 기관은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유명한 라마르크가 '동물철학'(1809)에서 설파한 제1법칙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흔적 기관, 아니 흔적 기능이 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부분적으로는 책의 위기와 기억력의 위기가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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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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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 16:57 입력 / 2003.09.19 17:01 수정
고대의 서사시 전통이 대부분 그렇듯,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민족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억과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왔다. 18편 10만 송(頌)의 시구와 부록 '하리바니사' 1편 10만 6천송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것을 암기하여 노래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전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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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최대의 천재로도 일컬어지는 승조(僧肇: 383?~414?)는 책 베끼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책을 베끼면서 승조는 책 내용을 모두 암기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승조가 중국 최고의 학승이 되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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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는 문맹이었지만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유명했다. 그는 문학.예술.사상 등에 두루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지식인 군주였다. 동서 사상 교류사의 거인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또 어떤가?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출판사)에서 기억과 관념을 구체적 형태를 가진 기억용 이미지로 만들어 보전하는 기억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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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여러 가지를 열람하여 기억을 잘하는 것,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사례들이라 할만 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기억의 필요성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매체가 '뇌수의 분실'(이하윤의 수필 '메모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도구가 있으니,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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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육에서도 창의력을 워낙 강조해서 그런지 암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차라리 '공공의 적'으로까지 지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암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이지 암기 자체가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은 아니다. 좋은 시, 좋은 문장이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건 지성과 감성의 도야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창의력과 암기를 일종의 상호 모순관계로 파악하는 관견(管見)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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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그 기관은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유명한 라마르크가 '동물철학'(1809)에서 설파한 제1법칙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흔적 기관, 아니 흔적 기능이 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부분적으로는 책의 위기와 기억력의 위기가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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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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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 16:57 입력 / 2003.09.19 17: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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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Joins.com All rights reserved
고대의 서사시 전통이 대부분 그렇듯,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민족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억과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왔다. 18편 10만 송(頌)의 시구와 부록 '하리바니사' 1편 10만 6천송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것을 암기하여 노래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전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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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 최대의 천재로도 일컬어지는 승조(僧肇: 383?~414?)는 책 베끼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책을 베끼면서 승조는 책 내용을 모두 암기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승조가 중국 최고의 학승이 되는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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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는 문맹이었지만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유명했다. 그는 문학.예술.사상 등에 두루 조예가 깊은 전형적인 지식인 군주였다. 동서 사상 교류사의 거인 마테오 리치(1552~1610)는 또 어떤가?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산출판사)에서 기억과 관념을 구체적 형태를 가진 기억용 이미지로 만들어 보전하는 기억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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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여러 가지를 열람하여 기억을 잘하는 것,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사례들이라 할만 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기억의 필요성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매체가 '뇌수의 분실'(이하윤의 수필 '메모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도구가 있으니,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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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육에서도 창의력을 워낙 강조해서 그런지 암기는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차라리 '공공의 적'으로까지 지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암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이지 암기 자체가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은 아니다. 좋은 시, 좋은 문장이나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건 지성과 감성의 도야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창의력과 암기를 일종의 상호 모순관계로 파악하는 관견(管見)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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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차차 그 기관은 약해지고 기능도 쇠퇴한다.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작아져 마침내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유명한 라마르크가 '동물철학'(1809)에서 설파한 제1법칙이다. 인간의 기억력이 흔적 기관, 아니 흔적 기능이 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부분적으로는 책의 위기와 기억력의 위기가 궤를 같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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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 16:57 입력 / 2003.09.19 17: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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