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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울대·비유학파’로 서울공대 교수된 김상국씨 -주간조선

작성자품앗이|작성시간02.03.04|조회수1,817 목록 댓글 0
이 사람] ‘비서울대·비유학파’로 서울공대 교수된 김상국씨

“한국대학 수준 인정받아 기쁘다”
포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해 말 서울공대 재료공학부에 전임교수(조교수)로 임용된 젊은 ‘토종학자’ 이야기가 학계에 잔잔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 서울대 재료공학부 실험실에 들른 김상국 교수. 그는 "이제 한국의 대학도 세계 대학들과 겨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사진:이명원)
김상국(金相國ㆍ35) 교수. 그는 서울대에서 학부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 86년 평택고를 졸업한 뒤 과기대(학사)를 거쳐 포항공대(석사ㆍ박사)에서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와는 이렇다 할 학문적 인연을 맺은 적도 없다. 이제는 무척이나 흔해진 미국대학 박사학위도 그의 학력(學歷)에 들어 있지 않다. 말하자면 그는 실력 하나로 ‘서울대 교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서울공대 재료공학부 교수 채용에는 모두 14명이 지원했다. 이들 중에는 국내외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경우가 3명, 하버드 MIT 스탠퍼드를 비롯해 유명한 주립대 등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낸 실력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영광은 김상국 교수가 차지했다.

김 교수는 모교 출신을 단지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모교 교수로 채용하는 이른바 학문적 근친교배(近親交配ㆍinbreeding)가 판을 치고, 외국대학 박사라면 일단 높은 점수를 주는 국내의 해묵은 교수임용 풍토를 극복한 전형으로 꼽힐 수 있을 듯 하다. ‘비(非)서울대 출신, 비(非)해외유학파’를 선발한 서울공대 재료공학부 교수들의 결단도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서울대의 한 교수는 “김상국 박사를 서울대 교수로 임용한 것은 국내 대학의 질(質)을 인정한 것으로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 심사교수 7명이 모두 김 교수 낙점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2월 14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찾아 마침 연구실에서 혼자 짐 정리를 하고 있던 김 교수를 만나 그의 교수임용과 관련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원서를 낼 때 임용을 예상했나요?

“웬걸요. 작년 7월 지원 마감 사흘 전에 인터넷으로 교수 채용 공고를 보고 부랴부랴 추천서를 받고 겨우 원서를 냈습니다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죠. 다만 박사과정 이후 6년 동안 연구생활을 하면서 쌓은 업적을 평가받을 때가 됐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까?

“역시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과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직은 국내 박사에게는 교수임용의 기회가 적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연구업적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받고 싶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서울대가 포항공대 박사를, 그것도 교수 경험도 없는 김 박사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요?

“심사위원들이 연구업적을 높이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연구분야가 나노재료과학 분야인데 그런 저의 전공과 서울대 재교공학부의 방침이 맞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 최근 들어 서울대에 다른 대학 출신 교수가 많아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던데… 그런 점에서 제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니까 덕을 보지 않았을까요?(웃음)”

사실 김 교수의 연구업적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재료공학부의 김도연(金道然) 교수는 “교수 7명이 심사를 했는데 모두 김 박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을 고의로 제외하자는 원칙 같은 것도 없었고 김 박사를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으나 심사위원들의 의견은 만장일치였다”며 “서울공대에서 비서울대 출신의 국내 박사를 교수로 채용한 것은 몇년 전 KAIST 박사를 채용한 데 이어 김상국 교수가 사상 두 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의 연구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는 점과 KAIST나 포항공대가 좋은 학교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본인이 연구에 매진하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고 김도연 교수는 말했다.

김상국 교수는 고교 졸업 후 KAIST 재료공학과에서 학부과정을, 포항공대 대학원 재료금속공학과(현재의 신소재공학과)에서 석사ㆍ박사과정을 각각 이수하면서 좋은 환경 덕택에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던 듯하다. 특히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 것이 연구에 몰두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책을 보지 않을 때도, 실험실에서 나와 캠퍼스를 오갈 때도 주변이 번잡하지 않으니까 머리 속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습성이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학부 시절부터 ‘내가 할 일은 오직 연구’라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자연계의 새로운 사실들을 규명해내고 그것을 인정받으면서 연구자로서 흥미에 빠지고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990년에 입학한 포항공대의 경우 그때까지도 연구실이 체계적으로 정착되지 않아 학생들이 스스로 일을 찾아 수행해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그러한 여건이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나가는 연구자세’로 연결되는 행운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포항공대에서 지도교수였던 구양모 교수는 “(김상국 박사는) 보통 보아넘겨도 되는 현상을 깊이 생각하여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경우가 많았고, 의문이 생기면 밤잠을 자지 않고 파고들어 반드시 해결하는 태도로 연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자의 학문적 업적과 관련, “Co(코발트)계 광자기 박막의 물리적 성격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 그 결과를 세계 유명 잡지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미 Physical Review Letter, Applied Physics Letter, Physical Review B 등 세계가 인정하는 전문 학술지에 40편 가량의 연구논문을 게재했다고 한다. 다시 김 교수와 대화를 계속해보자.

-지금은 무슨 연구를 하십니까?

“흔히 컴퓨터 작업 중 전원이 나가면 통상 작업 중인 내용이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버려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원이 나가도 작업 중인 내용을 저장해주고 부팅과정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 언어문제는 지금도 힘들어

-해외 유학은 안간 것입니까 못간 것입니까?

“유학은 생각해보지 못한 쪽입니다. 사실 과기대나 포항공대는 해외유학보다는 국내에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게 하자고 설립한 대학이어서 외국대학에 가서 박사학위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다만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의 UC 버클리 산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3년4개월 동안 연구원생활을 한 경험은 있습니다.”

-요즘은 해외유학이 유행처럼 되어 있습니다. 박사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초ㆍ중ㆍ고교 시절에도 유학 가는 학생들도 많습니다만.

“저는 한국의 대학 중에도 이제 외국과 견줄 수 있는 곳들이 있다고 봅니다. 굳이 국내냐 국외냐 구분하지 말고 교수 전공 등을 따져 학교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국내 대학도 세계 대학의 일부로 보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조기유학도 목적과 동기를 뚜렷이 한 뒤에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겠다면 역시 영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기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대 박사과정 모집에서는 선발 예정인원의 30% 가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국내 대학원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인데 ‘국내박사’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박사학위 소지자에 대한 대우와 관련된 것입니다. 외국 유학해도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거든요. 국내 대학에서도 최근에는 좋은 논문이 자주 나와 세계적인 학술 전문지에 게재되고 있으니까 시간이 좀더 흐르면 한국 대학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국내 대학원들이 박사학위를 너무 쉽게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교육방법도 창의성을 키워주는 쪽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외국 유학을 가지 않고 ‘영어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논문 쓰는 것은 외국의 좋은 논문들을 자꾸 읽다보면 가능한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언어적 핸디캡을 극복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꾸준히 훈련할 수밖에 없지요. 언어문제는 지금도 힘이 들어요.”

김 교수는 서울대 교수로서 각오를 묻자 “훌륭한 연구여건과 우수한 제자를 만나고 싶어 서울대에 온 만큼 앞으로 연구와 학생 가르치는 일에 50 대 50의 비중으로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살림이 처음이라는 김 교수는 박사과정 2년 때 결혼해 현재 1남1녀를 두고 있다.

( 권문한 주간조선 편집위원 mh33@chosun.com )



2002.2.28 /1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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