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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문들

토마스 아퀴나스 / 완전한 사랑은 가능한가?

작성자보스꼬|작성시간12.05.29|조회수404 목록 댓글 0

  토마스에게 있어서 사랑의 개념은 1차적으로 ‘모든 감각적 정서적 행위의 뿌리’ 즉 ‘감각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좋아하는 행위의 근거’라고 정의된다. 여기서 ‘자연적인 사랑’개념이 도출되는데, ‘욕구(appetitus)’에 근거한 善(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사물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사물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선’을 위한 것이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善을 바라는 것’이다. 즉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선을 위해서 라는 자기 헌신적 요소 즉 ‘아가페적 요소’가 포함된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오직 사랑하는 대상의 선을 위한 사랑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다. 이러한 사랑이 가능한 것은 ‘선에 대한 정신의 요청’에 의해서 이다. 이러한 사랑은 ‘선에 대한 정신적 사랑(l'amour spirituel du bien)'이다. 그럼에도 ‘정언명령’을 의미하는 윤리적인 의무로서의 사랑과 구별되는 점은 토미즘의 사랑은 언제나 정서적인 ‘원함’이라는 ‘주체의 자발적인 욕구’에 기초해 있다. 즉 사랑은 자기완성을 위한 존재의 근원적인 운동처럼 고려되고 있다. ‘善에 대한 정신적이고도 절대적인 요청’과 ‘나 자신의 내적이고도 순수한 자발성의 일치’는 토미즘에 있어서 ‘순수한 사랑’의 본질적인 특성이 된다, 이러한 사랑은 최고선을 갈망하는 의지의 특성에 의해서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게 되는데 토마스에 의하면 이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지닌 자연적인 사랑 외에 초자연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욕구(appetitus)를 가지게 하고, 모든 불완전한 윤리적인 덕을 완성시키는 카리타스(caritas)'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사랑들의 형상(forma)으로서의 카리타스는 또한 ‘발생인(發生因)’이요, ‘동인(動因)’ 이며 나아가 ‘목적인(目的因)’이다.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완성이나 완전한 충족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요청되는 형이상학적인 필연이다. 카리타스는 인간과 신과의 상호관계 안에서 성립되는 종교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성의 지위를 ‘사유하는 이성적인 존재’보다도 한층 차원 높은 곳에로 상승시키면서 인간존엄성의 근거를 확보해 주고 있으며, 왜 인간적 행위가 자기초월의 성격을 띠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또한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완전한 자유의지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카리타스는 또한 ‘인간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첨부파일 완전한사랑이가능한가.(완성본)hwp.hwp

논문정보: 신학과 철학(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제 13 호, 2008, pp. 24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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