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아이러니’ 개념과
5부류의 아이러니한 사람들
“그런데 여기 올바른 말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따라서 그는 그것에 대해서 당연히 이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전혀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행동이 그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음을 폭로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아이러니한 것이다. (...)”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
위 키르케고르의 말은 ‘아이러니’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키르케고르가 구체적인 예를 든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이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개념은 “만일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올바른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소크라테스적 ‘무지의 지(네가 알지 못하고 있음을 알라!)’에 대한 개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즉 그가 단순히 무지한 것이 아니라, 자기-모순적이고 위선적임을 주장하기 위해 정립한 개념이다. 아이러니는 “역설”, “모순”, “우스꽝스러움” 등의 이미를 가진 용어이다.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아이러니하다’라고 말한 다는 것은 ‘자기 모순적이다’는 의미가 될 것이며, 도덕적 행동에 있어서는 ‘위선적이다’는 말이 될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소개하는 ‘아이러니한 사람’의 예는 다음과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2가지 3가지 혹은 5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 선하고 정의로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선하고 정의로운 것을 이해한 사람이다. 하지만 만일 그가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면 이 행동이 그가 올바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는 올바른 것을 이해하였지만 그러나 올바른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아이러니한 사람이다.
2)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고귀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읽고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한 사람은 희생이나 헌신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갑자기 돌변하여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자신의 알량한 재능을 쥐어짜서 허위로 승리를 얻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면, 이러한 그의 행동이 희생이나 헌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폭로해주고 있다. 그는 희생이나 헌신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3) 목소리에나 몸짓 하나에도 진리가 가득 배여 있는 어떤 연설가가 스스로도 깊이 감격하고 사람들도 깊이 감격시키면서 침착하고 단호한 눈초리로 진리를 전하며, 놀라울 만큼 분명한 발걸음으로 권력과 지옥의 모든 악과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의로움이 무엇인지 이해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세련되게 손질된 머리카락을 뒤로 젖히며 지극히 사소한 번뇌에도 무서워 떨면서 비겁하게 슬금슬금 도망가고 가족이나 권력자의 뒤에 숨어 있다고 한다면 이 행동이 그가 의롭지 않음을 폭로하고 있다. 그는 의로움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그는 의로움을 알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아이러니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4) 어떤 사람이 세상이 얼마나 야비하고 추한 것인지 그리고 세속적 가치들의 부질없음을 이해하고 그것에 한탄하며 소리 높여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세속적 삶의 허무’를 이해한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는 세상 사람들 속에 끼어 들어가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명예도 받으면서 세속적 가치들을 지극히 긍정하고 있다면 이러한 그의 행동이 사실은 그가 ‘세속적 삶의 허무’를 알지 못하고 있음을 폭로해주고 있다. 그는 세속적 삶의 허무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그는 세속적 삶의 허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아이러니한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다.
5) 어떤 목회자가 자신은 ‘그리스도가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얼마나 가난하였으며 또 얼마나 경멸받았고, 조롱당하고 침 뱉음을 당했는지를 완전히 이해하였고’, 그 겸손함과 큰 사랑에 감동하였다고 눈물을 흘리며 설교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이해한 목회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세속적인 의미로 살기 좋은 곳으로 슬며시 도망가서 거기서 참으로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었고, 만약 이쪽저쪽에서 조그만 풍파라도 다가올라치면 마치 목숨이라도 달린 듯이 벌벌 떨면서 그것을 일일이 피하려고 애를 썼고, 또 자기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조건 신뢰받고 존경받는 다는 사실에 대해서 마냥 행복감을 느끼며,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그런 나머지 감격하여 그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그의 행동이 그가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함을 폭로해주고 있다. 그는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실에 있어서는 그가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하였다. 이것이 그가 아이러니한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진리를 안다는 것’, ‘진실하다는 것’ 혹은 ‘진리를 산다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은 우선 ‘자기-모순적이지 않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다, 사실을 숨기다, 떳떳하지 못하다, 위선적이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이며, 모름지기 사실, 실재,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덕목이자 진정한 크리스천의 기초적인 덕목은 '자기-모순적이지 않아야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