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중에 관상 수도회 수녀가 있지요.
최근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철학적 서적을 독서하고 있는데...
가장 어려운 용어가 '실존적'이라는 형용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제법 많은 예들을 뽑아 질문해 왔습니다.
나름 알기 쉽게 설명을 해 답장으로 보냈는데...
카페에서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분량이 많아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1부=
(...)
사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막연하게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개념이나 내용을 가지고
사용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이 선뜻 그 뜻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실존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구나.
네가 예를 들어서 묻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설명하다 보면
실존적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예를 든 것을 설명하기 이전에 간략하게
실존이란 개념을 이와 대립되는 본질이란 개념과 대비하여 간략하게
먼저 설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하구나.
그리고 예를 든 것들을 하나씩 설명해 보마.
<실존과 본질의 구분>
중세의 라틴어에서 본질에 해당하는 용어는 ‘essentia’이고 실존에 해당하는 용어는 ‘existentia’이다. 이 두 용어는 다의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essentia’는 그것이 무엇인 것(quid)으로서 즉 영어의 ‘what is this?’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해변 가에서 이상한 것을 주운 꼬마가 ‘이게 뭐지?’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것은 ‘가재야’ 혹은 ‘꽃게야’라고 답한다. 이때 이 어떤 것의 본질은 곧 그것이 '무엇인 것' 즉‘가재’이거나 ‘꽃게’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질은 어떤 것의 정체성 혹은 동일성으로서 사전적인 정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본질의 1차적인 의미라면 본질은 2차 3차로 다양하게 분화될 수 있다. ‘가재’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북미산 가재’라든가 혹은 ‘제주산 가재’라든가 더 나아가 ‘북미산 붉은 수염가재’라든가 ‘제주산 긴꼬리 가재’라는 식으로 더 구체적으로 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본질의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시킨다면 ‘인간으로서의 본질’ ‘개인으로서의 본질’ ‘남자 혹은 여자로서의 본질’ ‘시인으로서의 본질’ ‘정치가로서의 본질’ 등 다양하게 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 무엇이라고 규정되는 모든 것은 곧 ‘본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실존은 근원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 규정되지 않은 것, 모호하거나 혼란한 그 무엇을 말한다. 즉 한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지만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될 수 없는 어떤 불안, 고통, 애매모호한 상황, 다의적인 심리적 상태, 왔다 갔다 하는 정신적인 가치감정 등 한마디로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감정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직 '본질화'되지 않지만 '나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모호한 일체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실존은 ‘불안이다’고 하는가 하면, 사르트르는 ‘실존은 자유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제 네가 예를 들어 질문한 것들을 설명해 보자.
네가 예를 든 것은 아래와 같다.
예1). “이는 우리의 나약함과 연결된 실존적 문제이다.”
설명 : 인간의 나약함이 왜 실존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것일까? 왜냐하면 한 개인을 실존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면, 그의 본질에 비해 매우 나약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톨릭의 사제(본질)’란 매우 고매하고 의로우며 진리를 으뜸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제들을 보면 전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다양한 사회적 가족적 문화적 상황 속(실존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어서, 고매하거나, 의롭거나, 진리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살 수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한 가톨릭 사제가 복지단체를 맡아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지만, 그 역시 가난하고 병든 노모를 고향에 두고 있다면, 그리하여 돈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복지단체의 기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진리를 사는 것이 먼저인 사제가 돈을 밝히고 있다면 사람들은 이를 ‘나약한 사제’라고 하겠지. 가톨릭의 사제가 사제답지 않게(자신의 본질에 걸맞지 않게) 돈을 탐하는 행위는 그의 가족적 상황(실존적 상황)에 얽혀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위의 진술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는 우리의 실존적 상황과 연계된 인간의 나약함의 문제이다”가 되겠지.
예2) “인간의 실존을 감싸고 있는 근원적인 물음. 무슨 뜻?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지?”
설명 : “우선 실존을 감싸고 있는 근원적인 물음”이라는 표현에서 이 글을 쓴 저자가 ‘실존의 의미’와 ‘근원적인 물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실존적” “근원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가 가진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유신론자에게 그의 실존의 문제에는 “신의 섭리나 소명” 등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겠지만, 무신론자에게 “신과의 관계”는 전혀 실존적이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일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이 표현을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한 개인의 실존의 문제란 그것이 어떤 문제이든 지금, 현재, 나의 마음과 의식을 채우고 있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말한다. 그런데 이 같은 현실적이고 매우 의미 있는 나의 문제 중에서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피상적이지 않고,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근본적이고 지속적이며 다른 모든 문제들이 여기에 관계되는 어떤 문제 일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는 ‘먹고 사는 문제’일 수 있고, ‘사랑하는 애인에 대한 문제’일 수 있고 ‘가족과의 불화’ 일 수 있고 또 ‘신의 뜻은 무엇인가?’하는 문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중 두 세 가지가 동시에 문제일 수도 있겠지. 따라서 내 생각에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실존을 감싸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한 개인에 대해서 이 말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겠지! 아니면 저자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생존의 문제’ ‘삶의 의미의 문제’ ‘진실과 허위의 문제’ ‘행복의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야겠지.
예3) “자신의 실존적 의미. 자신의 참된 의미? 로 이해하면 되는지?”
설명 : ‘자신의 실존적 의미’라는 표현은 사실 매우 막연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실존적인 의미’라는 말 속에 이미 ‘자신만의 의미’라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은 남과 다른 고유한 자신만의 상황 속에 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말의 의미가 자신만의 고유한 상황 속에서 말해지고 있어서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가 ‘중생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보통의 기업 사장이 ‘고객을 사랑해야지’라는 말할 때에는 그 의미가 매우 다르겠지. 즉 이 경우 각자 자신이 말하고 있는 표현을 통해서 진짜 의미하는 그것이 ‘자신의 실존적 의미’가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실존적인 의미와 자신의 참된 의미는 다르다고 본다. 지금 나에게 매우 실존적인 문제일 지라도 훗날 지나고 나면 그것이 무의미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의미란 나의 깊은 본질에 일치하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부로 이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