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한 국가의 수장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는 다양한 묘책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자신을 향한 국민들의 원성과 비판을 잠재우는 방법인데, 그 중하나는 그 원성이나 비판의 화살을 다른 민족이나 다른 국가로 돌리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국민들을 양분시켜서 서로에게 비판과 원망의 화살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 이 책은 <군주론>이라기보다는 <독재론>이라고 제목을 다는 것이 보다 적합한 듯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군주는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 위정자들이 행한 가장 사악한 방법은 바로 국민을 ‘양분’시켜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에게 협조하고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과 특혜를 주어 소위 ‘친일’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자신들을 향하는 국민들의 원성의 화살을 ‘친일파’들에게 돌리도록 한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30년 전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반공 웅변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웅변을 들은 모든 초등학생들의 마음속에는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적개심을 마치 애국심인 것처럼 생각하였다. 모든 국민들이 공동의 적인 ‘공산당’을 마음속에 가지고 살았고, 이러한 공동의 적에 대한 반공의 감정은 정부에 대한 원망이나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데 매우 용이하였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잘 알고 있는 한국민으로서 ‘반공’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나쁜 것은 ‘반공’을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국민들의 원성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활용한 그것에 있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보다 많은 이익과 이권을 주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이익을 주어 ‘우리 편’과 ‘너희 편’을 갈라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게 하여 자신들을 향하는 원망과 비판의 소리를 서로에게 향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식 군주의 정책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는 ‘철인 왕’이론이 나온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공부하거나 하는 것이 그 이론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곧 철학자의 일인데, 여기서 사랑의 특성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총체성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사랑의 특성이 ‘예외 없이 모든 국민을 사랑의 대상으로 하는’ 군주의 사명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그는 ‘철인왕’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진정한 정치가들이 있는 국가에서는 ‘국가나 민족간’의 화합과 화평이 있고, 위정자들이 득세하는 국에는 반드시 국민간의 혹은 국민간의 분열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인의 척도는 자국의 국민들이 서로 일치하고 사랑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도록 하는가더 나아가 국가간 민족간에 서로 일치하고 화합하도록 하는가, 미워하고 증오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세계화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교류하고 서로 공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베르그송은 <인류애>에 기초한 범세계 시민의 개념이 없이는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어질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현실에서는 ‘철인왕’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철인왕’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상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라는 그 특성상 정치인들에게 ‘철인왕’의 특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간에 혹은 국민들 내부에서 서로 적대시하고 원수지게 만드는 고질적인 풍토를 없애기 위해서 정치가들의 덕성에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애초에 그 원인이 되는 싹을 자르는 것이다. 자신의 이득과 이권을 보다 많이 가지기 위해서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다른 민족이나 자기 국민을 ‘적대시’하게 하는 그 ‘불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마음속에 ‘올바름’ ‘공정함’ ‘정으로움’ ‘진실’ ‘진리’ 이러한 것을 추구하고 이러한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누구이든 ‘내편이든 아니든’ ‘국가의 수장이든 아니든’ ‘정치인이든 민간인이든’ 모든 종류의 ‘불의’ ‘갑질’ ‘적폐’ ‘반칙’ ‘불법’ 등을 결코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러한 불의와 타협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갑질이나 적폐에는 반드시 이를 묵인하고 협조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선량한 국민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갑질이고 적폐인 것이다. 이를 과감하게 거부할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이것이 국민들의 도덕적 성숙함이고 의식의 선진화이다. 국민들의 의식의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오늘 내가 ‘나의 이득’이나 ‘우리의 이득’을 위해서 정당하지 않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올바르지 않는 것을 올바르다고 여기거나, 혹은 ‘공정하지 않는 것’을 ‘공정한 것’으로 여긴다면, 혹은 이러한 것을 의도적으로 알고자 하지 않고 무조건 힘 있는 자의 편을 들고자 한다면 사실상 나는 ‘친일파’나 ‘종북자’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정의와 공정, 진실과 진리를 진정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자는 누구나 애국자이고, 그 반대는 누구나 매국노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천고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