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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좋은시

나에게 던진 질문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작성자김은우|작성시간19.09.04|조회수276 목록 댓글 2

나에게 던진 질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 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시집 끝과 시작(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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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을 탄 폴란드 여성시인 쉼보르스카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실존철학에다 접목시킨 시를 즐겨 썼다. 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많은 금언들이 있다. 에디슨은 진정한 행복은 처음엔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 다음엔 몇몇 선택된 친구와의 우정과 대화에서 온다.”고 하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당신과 리무진을 함께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잘 몰랐던 사람의 성격도 다급한 위기 상황 아래서 그 성격이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흔히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만 꼭 겪어봐야 그 심정을 아는 건 아니다. 심지어 고스톱 칠 때 보면 사람의 성격을 안다는 말조차 있다. 어제는 모처럼 친구와 종로에서 만나 둘이서 소주 네 병을 마셨다. 예전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과음의 수준이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버렸다. 결국 내 우울증으로 화제가 옮겨갔고 친구의 실패한 넥타이이야기까지 들었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할 줄 알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민족성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한도 흥도 울분도 많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며 다른 특별한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 가동이 잘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공감능력'이다. 공감은 상대방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 심정이 헤아려져 공명이 된다면 결코 남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거나 말의 맞장구만으로 공감능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이다.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물론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은 뜨거워야 진정성이 확인되지만 우정은 반드시 뜨거울 필요는 없다. 대신 우정의 가장 기본이 공감능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공감은 내가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거나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제거하지 않으면 공감이 들어설 자리는 비좁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없어진 자리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채워지면서 공감은 완성된다. 꼭 우정이 아닌 사람의 도리라 해도 마찬가지다.

 

   벗에도 인연에 의해 엮인 친구가 있고 어떤 목적과 가치를 더불어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기투합된 친구도 있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이익이 있어야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정은 모름지기 진실해야 한다. 친구의 아픔과 우울을 함께 공감하고, 가슴으로 관통시켜 그를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리라.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때 외면하거나 실실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짐이 참된 의리이며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하지만 그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일까? 이는 곧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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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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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와사람시학회 | 작성시간 19.09.06 공감능력.. 요즘 ~~ 에 대한 공감능력이 대세인 듯.. 우정에 대한 공감능력, 청소년에 대한 공감능력,, 소수자에 대한 공감능력 등등...
  • 작성자김은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9.06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
    공감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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