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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좋은시

무궁무궁 / 김정진

작성자김은우|작성시간19.11.18|조회수37 목록 댓글 0

무궁무궁



김정진



내가 갖고 있는 너에 관한 이론은 너보다 완벽할까

바다의 깊이를 상상할 때마다 바다는 매일 깊어진다

요요(寥寥)한 잠 속에 어렴풋이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 한 마리가 더 깊은 물로 가려고 가시 돋친 돛을 펼친다

어둡고 무궁한 곳으로

갈수록 붉어지는 꽃의 중심으로

 

오래 쌓인 먼지 위를 먼지만한 벌레가 기어간다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존재하는 줄도 몰랐을 벌레가

두께라고 할 수도 없는 몸을 굽혔다 펼치며 앞으로 가고 있다 현미경으로 보는 입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보이지 않는 사물의 작은 틈 사이를 오가며

수백 배는 느린 시간 속에서

 

그곳 어딘가에 있다는 해저의 극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정확한 가로축과 정확한 세로축이 만나는 그곳엔 망망한 바다를 터뜨렸던 작은 기포가 꽃술에 싸여 영겁의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다

친구들이 손을 잡고 주변을 도는 동안 술래는 눈을 가린 채 의자에 앉아 숫자를 센다 하나, , ……

앞을 지나는 아이의 머리 위로 해가 비치고 뒤를 지나는 아이의 머리 위에 달이 뜬다 눈을 뜬 술래에게 낮과 밤이 모두 보였다

 

눈여겨보던 벌레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벌레를 찾기 위해 느리게 움직일 수도 안 보이는 틈을 들춰 볼 수도 없었고

죽은 뒤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벌레가 간 곳을 상상하자 무궁한 기분이 되었다

 

 

 계간『포지션』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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