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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좋은시

0 / 정재율

작성자김은우|작성시간20.05.12|조회수3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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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율



 펭귄이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 떨어져서 우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떨어져서 죽은 펭귄의 뼈를 모아 둥지를 만드는 녀석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번 주에 만났던 사람이 오늘은 연락이 되질 않는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죽으려고 다리 위에 올라간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다리 밑에는 강과 인도가 보였는데 자연스럽게 몸이 강 쪽으로 움직였다는 이야기 그래도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선 죽고 싶지 않았나 봐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찻잔을 돌렸다 사랑했던 것을 조금 남기는 기분으로 꼴깍 새끼 팽귄에겐 방수 기능이 없대요 그래서 비가 많이 내리면 집이 사라져서 죽는 게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죽는 게 더 흔하대요 그가 말한 것처럼 겨울은 잃을 게 너무 많다는 느낌 바닥의 투명함이 다 보일 때까지 펭귄은 계속 걸을 수 있었다 TV화면이 꺼진 뒤에도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팔이 발 끝에 닿지 않아 친구들이 등을 눌러주었던 때처럼 살고 싶은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려보았다 우리는 행복을 나눠 가지는 게 쉬울까 불행을 나눠 가지는 게 쉬울까 우리 다시 만나요 그가 했던 말처럼 유연해지고 싶은 몸 마음의 시간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텐데 찻잔 바닥엔 침전물들이 오래 남아 있었다 눈과 얼음이 뒤섞여 진흙투성이가 된 얼굴이 떠올랐다




- <웹진 비유>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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