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내가 읽은 좋은시

의성어(擬聲語)의 가을 / 구석본

작성자김은우|작성시간22.06.26|조회수27 목록 댓글 0

의성어(擬聲語)의 가을

 

구석본

 

 

가을 산 나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와 잎과 바람의 몸들이 무너지면서 울리는 소리

쓸쓸, 쓸쓸,

 

우리가 처음 손잡았던 그해 가을날 저녁

어둠 속에서 무너지던 너의 목소리,

‘사랑한다는 것은 쓸쓸함을 나누는 것이야, 쓸쓸함의 체취를 주고받는 것이야’

 

이제야 들려온다, 너 안의 쓸쓸함이 내게로 건너온다.

 

이 가을엔 나무와 잎, 나무와 나무, 잎과 잎, 숲과 하늘의 경계가 쓰으쓸 바스라져 무너진다. 서로를 지워서 하나가 된다. 존재의 몸들이 무너지고 지워진 다음, 하늘의 허공이 내려와 숲이 되고 몸 없는 존재가 명료한 소리로 울려온다.

 

쓸쓸, 쓸쓸, 쓸쓸,

 

쓸쓸함이 나무처럼 일어서고 잎처럼 팔랑이고

드디어 눈물처럼 영혼의 계곡을 흐른다.

 

쓸쓸, 쓸쓸, 쓸쓸, 쓸쓸,

 

너와 나와 바람과 허공과

나무의 몸들이 무너지면서 울려오는 말씀 이전의 말,

가을의 의성어다.

 

 

구석본 I

1975년 《시문학》 등단. 시집 『지상의 그리운 섬』 『추억론』 『고독과 오독에 대한 에필로그』 등이 있음. 〈대한민국문학상〉 등 수상.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