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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좋은시

무엇이 그곳에 오래 서 있게 하는가 / 김윤배

작성자김은우|작성시간22.06.26|조회수45 목록 댓글 0

무엇이 그곳에 오래 서 있게 하는가

 

김윤배

 

 

가문비나무 숲은 끝없이 이어졌다

 

바람은 가문비나무 끝을 잠시 휘어볼 뿐, 소리로 숲을 지나가고 있다 바람이 가문비나무 숲을 매일 연주하는 것이다 가문비나무 숲은 바람으로 오케스트라며 바람으로 강물이다

 

가문비나무 숲을 운명이라고 말했지만 정말 운명이 있는 것인지, 서로 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가슴으로 밀어 넣었다 가슴이 아팠다 울음이 터졌으나 낙조가 더 붉었다 가슴속에서 꽃다발의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가문비나무 숲의 낙조는 파이프오르간의 장엄한 미사곡처럼 온몸의 전율이었다

 

전율에 걸려 그곳에 오래 서 있었다

 

가문비나무 숲을 건너가는 여러 갈래의 바람의 길들이 보였다 오월의 가문비나무 잎들은 찰랑이며 서로 포옹하고 있다 잎마다 바람의 길이 새겨진다 숨어서 보니 바람을 슬몃 잡았다 놓아주는 가문비나무다

 

햇빛이 가문비나무 숲으로 들어 깊숙이 사선을 긋는다

 

가문비나무 숲이 조용해진다

 

 

김윤배 I

1986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떠돌이의 노래』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바람의 등을 보았다』, 장시집 『사당 바우덕이』 『시베리아의 침묵』 『저, 미치도록 환한 사내』, 평론집 『김수영 시학』, 동화 『비를 부르는 소년』 『두노야, 힘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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