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석복권 박은영 가능성은 긁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사건 우리는 서로의 등을 긁어줬다 꽝인지, 행운인지 손닿지 않는 곳을 긁어주는 사이가 되었지만 잔소리를 하며 바가지를 긁을 때가 많았다 긁을수록 앞날은 보이지 않고 마른 등판만 눈에 들어왔다 일확천금의 불가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가장 쉬운 일 긁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 나을 뻔했다 우리는 꽝이란 것을 안 뒤 즉석요리를 먹듯 뭐든지 쉽게 화를 내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찢어지자며 언성을 높였다 어떤 날은 긁다가 혈흔을 남기기도 했다 손톱은 피를 먹고 자랐다 우리의 관계에서 남은 건 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등골은 물론이고 이마와 미간, 손등…… 온몸은 그야말로 손톱자국으로 이글거렸다 그래도 한 가지 우리가 낳은 자식은 가능성이 많은 아이라고 여겼다 그 희망을 간직하고 살았다 ―계간 《詩로 여는 세상》 2022년 봄호 -------------------- 박은영 / 1977년 강진 출생.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우리의 피는 얇아서』.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