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에도 저녁이 내려
김지헌
김포 들판을 지나다
철조망 근처 눈자위 붉은 재두루미 한 쌍
한 마리는 먼 하늘 그리듯 부리를 쳐들고
또 한 마리는 젖은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 또한 먼발치에서
외롭고 높은 존재라도 만난 듯
간절함에 몰입되다
날개 아래 수천 킬로 비행의 이력이 새겨졌으리라
끊임없이 먼 여정을 왕복해야 하는 운명
해와 달
별의 운행에 맞춰
먼 길 흐트러짐 없이 편대를 이루었으리라
비무장지대 경계선은 경계가 되지 못했다
며칠 후
김포들판을 지났다
눈자위 붉은 재두루미 한 쌍
한 마리는 먼 하늘 그리듯 부리를 쳐들고
또 한 마리는 젖은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생태학습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형이었다니
저 헛것을 위해
지상의 모든 것
따뜻한 저녁을 예비해 두었나보다
—계간 《미네르바》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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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회중시계』 『황금빛 가창오리 떼』 『배롱나무 사원』 『심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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