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인가? 농부인가?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이며 농부의 사명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열매를 따 먹으려면 나무도 있고, 나무를 가꾸는 농부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일하는 농부와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나무이며 농부입니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와 농부가 자기 소명을 바로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가 있다 해도 농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들어 죽어갑니다.
보통 감나무는 해거리를 하여 한해는 많은 열매를 맺고, 다음 해는 적게 열매를 맺습니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 매년 거름을 주어야 해거리 하지 않고 열매가 성실하게 열립니다.
이같이 좋은 나무와 좋은 열매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좋은 나무, 좋은 열매를 원하지만 상호 노력이 없이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합니다.
좋은 가문은 금수저가 아니라 믿음 있고, 교양이 있고,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자비와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나라가 나라다운 것은 정치하는 사람과 국민이 나라 사랑하는 정신이 살아 움직여야 바른 나라에 살고,
잘살고, 좋은 국민이 나오고,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가정도 권력이나 재력이나 명예가 우선이 아니고 자유, 평화, 기쁨이 먼저입니다.
자유스럽게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 자유를 너에게도 전하고, 평화롭게 자란 아이는 평화를 전해주고,
기쁨 중에 사는 아이는 다른 이에게 기쁨을 전해줍니다.
억압, 인색, 무자비, 가정의 기강이 먼저가 아니고 사랑이 먼저이며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로운 계명처럼
가까이 접촉하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가정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정이 혼란해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자기 탓입니다.
교회도 본당 사제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문제입니다.
본당 신부를 바꾸어달라고 주교에게 호소하며 연판장을 돌리는 본당 신자들은 결국 자기 칼에 찔리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자는 다 퇴출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고쳐 사용해야 합니다.
고장 난 자동차를 버립니까? 아닙니다. 바로 수리해서 타고 다녀야 합니다.
하느님은 아무리 망가진 사람도 회개하여 하느님 나라에 살도록 하시려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약한 사람에게 보약이며, 죽음의 병이 든 사람을 살리는 명약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착함, 신용, 온유, 절제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합니다.
이런 열매를 맺고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