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예수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아 얻는 구원
민수기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오늘 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3대 성인 중의 한분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바에 의하여 예수님은 존경받는 인물로서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의도하는 예수님은 3대 성인이 아니라 그냥 우리와 동일한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은 그 예수님을 나와 동일한 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성도의 구원이라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을 물어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구원받는(살아나는) 통로가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매단 그 놋뱀을 바라본 자는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바라본 장대의 그 놋뱀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바라본 자들의 회복의 역사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뱀은 광야의 백성들을 물어 죽게하는 사단으로 계시록에서 그 뱀을 다른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오늘날의 세상 교회는 마귀를 성도를 대적한는 존재로 여기고 있으면서 또한 그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절제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마귀를 자기 밖에서 들어오는 존재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귀는 인간과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 없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행동을 하게 되는 이면에는 반드시 어떤 생각에 의거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그 근원은 생각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라는 것 역시 인간에게 포착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두 주인을 언급하면서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두 주인이라면 그 구체적인 주인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마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인간은 어떤 영의 휘하에서 통제를 받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나와 동떨어진 나 밖의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존재를 마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종노릇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종인가 두 기로에 서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항상 영의 지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귀가 쫓겨나가는 것을 성경은 인간이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게 됨으로 멸해질 수 있는 사건으로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한1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생각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면서 그 생각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마음을 이김을 다음과 같이 인간으로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난공불락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과 하와라는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살펴보면 인간의 생각이 왜 마귀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말씀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였지만 여자가 뱀(마귀)에게 들은 교훈은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가르침 받은 그 교훈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살지 않고 뱀의 교훈에 이끌리게 된 것이 바로 여자가 선악과를 자기도 먹고 남자에게 먹임으로 되어진 뱀(마귀)의 교훈으로 사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생각으로(여자가 남자에게 줘서 먹게 한 선악과) 말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자식들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욕의 개념이 아니라 독사(뱀)에 의해 생산된 행위를 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즉, 생각이 행위를 만들어내는 그것을 자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입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위를 마귀의 행위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신분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살던 엘리트 계층의 사람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던 성인군자의 부류에 속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나가면 문안받고 자리의 상석에 위치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마귀의 행위에 지배당하고 있으면서 마귀를 욕하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는 그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듯한 행위를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창조의 역사는 혼돈하고 공허한 수면(인간의 교훈) 위에서 일하십니다. 구원자(예수님)가 세상에 보내졌다는 것은 세상이 혼돈하기 때문에 보내졌지 세상이 깨끗해서 보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을 빛이라고 깨끗함이라고 여기면서 살고 있던 상태가 실제는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어둠을 알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악이 어떠한지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파송된 그 예수님을 바알세불(마귀, 귀신의 왕)로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그 예수가 마귀로 보였다면 자신들도 마귀였음을 알 수 있어야 하였는데 자기들은 선한 존재로 예수님은 악한 존재로 판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칭하여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예수님은 실체 죄인으로 살고 있던 바리새인에게 너희들은 죄인이다를 가르치시기 위해 세상에 보내짐을 죄의 모양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모양이라는 단어는 “대표”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모양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죄의 대표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간다는 말씀의 의미는 나의 죄까지 다 짊어지고 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 안에 상존하고 있는 그 죄가 되어 인간은 누구나가 예외없이 죄로 인한 사망을 당해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대표(샘플)가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연약한 자로 묘사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히5;1-2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
예수님은 오늘을 사는 세상 교회의 어느 누구를 위해 죽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의 죄만 지시고 죽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성도가 당하는 그 죽음은 오직 그 하나님에 의해 죽는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 자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
예수님이 만약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면 그 이후에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일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여전히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죄인들에게 죄인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오심이라는 것입니다.
죄인들에게 죄의 대표자가 되어 죄로 살면 망한다를 선포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깨끗한 자들에게 상주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된 세상에 죄를 선포하기 위해 온 그 세상에서 그 예수를 나와 같은 죄인으로 알게 되어 영접하는 자들이 장대에 매단 놋뱀을 쳐다보니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다만,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있을 뿐 여전히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육체)이었음을 아는 것이 그 예수를 나와 동일한 사람으로 아는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죄의 모양이 사라져야 참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