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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이생진 시인 ( 시모음 )

작성자시와사랑|작성시간09.05.16|조회수191 목록 댓글 0

   이생진 시인  ( 시모음 )

 

 혼자 피는 동백꽃

 


꽃 시장에서 꽃을 보는 일은
야전병원에서 전사자를 보는 일이야
꽃이
동백꽃이
왜 저런 절벽에서 피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꽃을 좋아했다면
그건 꽃을 무시한 짓이지 좋아한 것이 아냐
꽃은 외로워야 피지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꽃한테 축하 받으려 하지 마
꽃을 달래줘야 해
외로움을 피하려다 보니 이런 절벽에까지 왔어


 풀밭에 누워서 이런 생각

 


풀밭에 푹 파묻힌 선인 같아서
내가 하늘에 있음을
자인하며
자위하며
혹은 자축하며
혼자란 이 맛에 외롭다고 못 한다
풀숲에 사는 벌레는 그래서 우는 것인데
호수 같은 설움을 겨우 그것으로 달래는 미약함
쑥부쟁이 꽃이 날 알아본다
제주 섬에서도 만났지
그가 해설을 쓰고 나는 읊고
파도가 찰싹찰싹 내 사색의 엉덩이를 때리고
사람들은 모를 거다
살아서 천국을 다니는 나를 모를 거다


 

나는 음침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좀 음침해
내 속은 나 밖에 몰라
하지만 음지와 양지를 비교할 때
시도 버섯처럼 음지에서 자라거든
그래서 나는 시에 적성이 맞아
고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음침해야 해

혼자 집을 떠나
혼자 산에 오르고
혼자 굴속을 기웃거리고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이러다 언젠가는 혼자 죽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그런 면에서 음침해
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 때문에 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 음침함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어
시를 읽을 때 그것도 이해해줘
나는 솔밭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
넓은 바다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어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
이해해줘
이 외로운 습도를 이해해줘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섬이야
내가 동굴 속처럼 음침하다는 것을
동굴이 알고 있어
나는 음침해


 

 

 대나무 소리

 


오후 네 시 반
나는 동도 대밭 길 언덕에 서 있고
배는 여수를 향해 가는구나
사실이지 배는 가고 싶은데도 없는데 억지로 가는구나
여기서는 여수 밖에 갈 곳이 없다
거문도에 오면 죽어라 하고 가는 곳이 여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염소처럼 풀을 뜯어야 외롭지 않다
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차마 할 일이 아니다
동백꽃처럼 혼자 남는다는 건
참 할 일이 아니다
한 동네가 다 떠나는데
소나무 한 그루 마을 언덕빼기에 남는다는 거처럼
혹은 무덤처럼
자식들은 다 뭍으로 떠났는데
무덤만 풀숲에 남아 있다는 거
이런 외로움을 지키는 것은
배에 실을 수 없는 산천초목이나 무덤도 마찬가지다
시인도 사람 없는 데서는 큰 소리를 하지만
그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
너도 산천초목이 되어보렴
그게 쉬운 일인가 초목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녹산 등대로 가는 길 3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찾는다
등대를 찾는 사람은 등대같이 외로운 사람이다
무인등대가 햇빛을 자급자족하듯
외로움을 자급자족한다
햇볕을 받아 햇볕으로 바위를 구워 먹고
밤새 햇볕을 토해내는 고독한 토악질
소풍 온 아이들이 제 이름을 써놓고 돌아간 후
등대가 더 쓸쓸해진 것을 그 애들은 모르고 있다


 

외로운 아이들

 


그 애들은 왜 제 이름을 등대에 써놓고 갔을까
등대가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으면서
왜 그들은 제 이름을 등대에 써놓고 갔을까
그것을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으라는 것인가
커가면서 무미해진 추억
왜 그들은 등대까지 와서 이름만 써놓고 갔을까

 

 시를 쓰는 염소

 


동도의 검은 염소에게 검은 글씨를 가르쳤다면
그 놈도 똥 대신
바윗돌에 질퍽한 시 몇 줄을 썼을 텐데
어찌하여 사람만 글을 배워
사람만 아는 척하는가
저 놈도 시를 알면 나와 마주 앉아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성분인데
어찌하여 저 놈은 풀만 뜯게 하고
나만 술 마시며 시를 쓰게 하는가

 

 

 

안녕

 


등대가 자리잡은 잔디밭에 앉아
시를 쓰다 일어선다
쑥부쟁이 꽃잎을 만지며
이젠 오지 못하리라
이 말은 세월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안녕
나를 끝까지 따라다닌
바람아
구름아
안녕
이건 바람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안녕
이건 구름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바다의 오후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음침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좀 음침해
내 속은 나 밖에 몰라
하지만 음지와 양지를 비교할 때
시도 버섯처럼 음지에서 자라거든
그래서 나는 시에 적성이 맞아
고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음침해야 해

혼자 집을 떠나
혼자 산에 오르고
혼자 굴속을 기웃거리고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이러다 언젠가는 혼자 죽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그런 면에서 음침해
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 때문에 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 음침함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어
시를 읽을 때 그것도 이해해줘
나는 솔밭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
넓은 바다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어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
이해해줘
이 외로운 습도를 이해해줘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섬이야
내가 동굴 속처럼 음침하다는 것을
동굴이 알고 있어
나는 음침해

 달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아느냐
너 때문이다
만재도에 오니 죽은 사람도 만날 것
같다
그게 시의 역할이다
그리움을 독식하는 만재도
우물가로 모여드는 그리움
물 속에서 달이 걸어간다
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저 빛이 손을 뻗칠 거다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아느냐
저 뻗친 손을 잡아당기기 위해서다
내 시는 분명 내
그리움을 찾아낼 거다
달이 찾아줄 거다
달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으니까
달이 품고 가는 시 한 줄 애절한 꽃 한
송이
새파란 비밀이 돌담을 넘어온다
새알로 태어나는 슬픔
그 새가 달에 가서 만나고 올 거다

 

수평선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영혼은 싫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긴 세월
긴 시를 쓴 사람이다
너는 날 만나기 위해
자갈밭에 앉은 여인들과 함께
내가 물고
늘어질
주낙낚시에 미끼 꿰고 있었는가
나를 낚기 위해
너의 영혼을 꿰고 있었는가
영혼의 미끼는 싫다
살아 있는 육체로
오라

 

풀 되리라

 


풀 되리라
어머니 九天에 빌어
나 龍 되어도
나 다시 九天에

빌어

풀 되리라 

 

흙 가까이 살다

죽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물 가까이

살다

물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아버지 날 공부시켜

편한 사람 되어도

나 다시

공부해서

풀 되리라




 

 육체와 시

 


내 육체를 보려면 3000원이 든다
시집 한 군 값보다
천 원이 싸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선다
이상한 육체들이 많구나
어찌하여 저 젓가락 같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울이

돌아앉는다
40대만 해도 거울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니 50대에도 가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는데
이상하구나
70으로 들어서니
모두들 외면하는구나
나도 나를 외면하려 하는구나
흙 밖으로 밀려난 소나무 뿌리같구나
배꼽을 봐도 탯줄이 잘린 후 아무 쓸모
없이
뜻 없는 상처로 입을 다물고 있구나
저것이 탯줄을 잡고 나왔을 때는
힘찬 울음으로 태어났음을 알렸는데
이젠 죽음을
알릴 힘조차 없구나
시 한 줄 간직하기에도 힘드나 보다
그래서 수의를 입히고 꼭꼭 묶는 것일까
자꾸 줄어도는 욱신의
욕망
3000원을 내고 나 혼자서 봤지만 돈이 아깝구나
하기야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봐주나
남들은 3000원을 줘도 외면할
육체
다 갔구나
때 밀 필요도 없이 다 갔구나


 

 

삼백육십오일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외로울 때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꽃과 사랑

 

 

꽃은 사랑의 변명이다
아름답다며 코를 갖다 대는 동기와 동일하다
이런 동일함 때문에 시를 쓴다
하지만 시에 코를 대는 사람은 없다
시는 머리로 읽고 가슴에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는 시드는 일이 없다
그래 너에게 시를 바치는 일은
너에게 꽃을 바치는 일보다 더 그윽한 일이다

 

 

 기다림

 

 

너만 기다리게 했다고 날 욕하지 말라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만큼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같은 세월에
  엇갈린 입장을
  물에 오른 섬처럼
  두고두고 마주 보았다

 

 

 외로울때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다시 나만 남았다


영원을쫓아다니느라 땀이 흘렸다
영혼을쫓아다니는데 옷이 찢겼다

자꾸외로워지는 산길
염소쯤이야하고 쫓아갔는데
염소가간길은 없어지고 나만 남았다

곳곳에나만 남았다

허수아비가된 나도 있었고
돌무덤이된 나도 있었고
나무뿌리로박힌 나도 있었다
그때마다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내가많아도 나는 외로웠다

 

섬, 그리고 고독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섬에 간다고 하면 왜 가느냐고 한다
고독해서 간다고 하면 섬은 더 고독할 텐데 한다.

옳은 말이다.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내게 힘이 된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고독은 힘만 줄 뿐 아니라 나를 슬프게도 하고
나를 가난하게도 하고 나를 어둡게도 한다.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수화기를 든다
모두 자기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지혜를 짜낸다.

하지만 고독은 자유로워야 한다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져야 하고
지도처럼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마음대로 만든 공간을 마음대로 누웠다가
마음대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고백

 

 

이젠 잊읍시다
당신은 당신을 잊고
나는 나를 잊읍시다
  
당신은 내게 너무 많아서 탈
당신은 당신을 적게 하고
나는 나를 적게 합시다
  
당신은 너무 내게로 와서 탈
내가 너무 당신에게로 가서 탈
나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을 잊읍시다

 

 

      너무 많은 행복            

 

 

행복이 너무 많아서 겁이 난다
사랑하는 동안
행복이 폭설처럼 쏟아져서 겁이 난다

강둑이 무너지고
물길이 하늘 끝 닿은 홍수 속에서도
우리만 햇빛을 얻어 겁이 난다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 것도 없는 너와 난데
사랑하는 동안에는
행복이 너무 많아 겁이 난다

 


 

 취한 사람


취한 사람은
사랑이 보이는 사람

술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취한 사람은
제 세상이 보이는 사람

입으로는 이 세상
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이 세상
다 움켜쥔 사람

깨어나지 말아야지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서

사랑에 취한 사람은 사랑에서
깨어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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