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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피는 동백꽃
꽃 시장에서 꽃을 보는 일은 야전병원에서 전사자를 보는 일이야 꽃이 동백꽃이 왜 저런 절벽에서 피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꽃을 좋아했다면 그건 꽃을 무시한 짓이지 좋아한 것이 아냐 꽃은 외로워야 피지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꽃한테 축하 받으려 하지 마 꽃을 달래줘야 해 외로움을 피하려다 보니 이런 절벽에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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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누워서 이런 생각
풀밭에 푹 파묻힌 선인 같아서 내가 하늘에 있음을 자인하며 자위하며 혹은 자축하며 혼자란 이 맛에 외롭다고 못 한다 풀숲에 사는 벌레는 그래서 우는 것인데 호수 같은 설움을 겨우 그것으로 달래는 미약함 쑥부쟁이 꽃이 날 알아본다 제주 섬에서도 만났지 그가 해설을 쓰고 나는 읊고 파도가 찰싹찰싹 내 사색의 엉덩이를 때리고 사람들은 모를 거다 살아서 천국을 다니는 나를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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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침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좀 음침해 내 속은 나 밖에 몰라 하지만 음지와 양지를 비교할 때 시도 버섯처럼 음지에서 자라거든 그래서 나는 시에 적성이 맞아 고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음침해야 해
혼자 집을 떠나 혼자 산에 오르고 혼자 굴속을 기웃거리고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이러다 언젠가는 혼자 죽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그런 면에서 음침해 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 때문에 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 음침함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어 시를 읽을 때 그것도 이해해줘 나는 솔밭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 넓은 바다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어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 이해해줘 이 외로운 습도를 이해해줘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섬이야 내가 동굴 속처럼 음침하다는 것을 동굴이 알고 있어 나는 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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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소리
오후 네 시 반 나는 동도 대밭 길 언덕에 서 있고 배는 여수를 향해 가는구나 사실이지 배는 가고 싶은데도 없는데 억지로 가는구나 여기서는 여수 밖에 갈 곳이 없다 거문도에 오면 죽어라 하고 가는 곳이 여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염소처럼 풀을 뜯어야 외롭지 않다 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차마 할 일이 아니다 동백꽃처럼 혼자 남는다는 건 참 할 일이 아니다 한 동네가 다 떠나는데 소나무 한 그루 마을 언덕빼기에 남는다는 거처럼 혹은 무덤처럼 자식들은 다 뭍으로 떠났는데 무덤만 풀숲에 남아 있다는 거 이런 외로움을 지키는 것은 배에 실을 수 없는 산천초목이나 무덤도 마찬가지다 시인도 사람 없는 데서는 큰 소리를 하지만 그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 너도 산천초목이 되어보렴 그게 쉬운 일인가 초목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녹산 등대로 가는 길 3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찾는다 등대를 찾는 사람은 등대같이 외로운 사람이다 무인등대가 햇빛을 자급자족하듯 외로움을 자급자족한다 햇볕을 받아 햇볕으로 바위를 구워 먹고 밤새 햇볕을 토해내는 고독한 토악질 소풍 온 아이들이 제 이름을 써놓고 돌아간 후 등대가 더 쓸쓸해진 것을 그 애들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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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아이들
그 애들은 왜 제 이름을 등대에 써놓고 갔을까 등대가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으면서 왜 그들은 제 이름을 등대에 써놓고 갔을까 그것을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으라는 것인가 커가면서 무미해진 추억 왜 그들은 등대까지 와서 이름만 써놓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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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염소
동도의 검은 염소에게 검은 글씨를 가르쳤다면 그 놈도 똥 대신 바윗돌에 질퍽한 시 몇 줄을 썼을 텐데 어찌하여 사람만 글을 배워 사람만 아는 척하는가 저 놈도 시를 알면 나와 마주 앉아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성분인데 어찌하여 저 놈은 풀만 뜯게 하고 나만 술 마시며 시를 쓰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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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등대가 자리잡은 잔디밭에 앉아 시를 쓰다 일어선다 쑥부쟁이 꽃잎을 만지며 이젠 오지 못하리라 이 말은 세월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안녕 나를 끝까지 따라다닌 바람아 구름아 안녕 이건 바람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안녕 이건 구름의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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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오후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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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침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좀 음침해 내 속은 나 밖에 몰라 하지만 음지와 양지를 비교할 때 시도 버섯처럼 음지에서 자라거든 그래서 나는 시에 적성이 맞아 고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음침해야 해
혼자 집을 떠나 혼자 산에 오르고 혼자 굴속을 기웃거리고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이러다 언젠가는 혼자 죽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그런 면에서 음침해 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 때문에 시가 생기는 것이겠지
그 음침함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어 시를 읽을 때 그것도 이해해줘 나는 솔밭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 넓은 바다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어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어 이해해줘 이 외로운 습도를 이해해줘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섬이야 내가 동굴 속처럼 음침하다는 것을 동굴이 알고 있어 나는 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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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아느냐 너 때문이다 만재도에 오니 죽은 사람도 만날 것 같다 그게 시의 역할이다 그리움을 독식하는 만재도 우물가로 모여드는 그리움 물 속에서 달이 걸어간다 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저 빛이 손을 뻗칠 거다 내가 왜 시를 쓰는지 아느냐 저 뻗친 손을 잡아당기기 위해서다 내 시는 분명 내 그리움을 찾아낼 거다 달이 찾아줄 거다 달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으니까 달이 품고 가는 시 한 줄 애절한 꽃 한 송이 새파란 비밀이 돌담을 넘어온다 새알로 태어나는 슬픔 그 새가 달에 가서 만나고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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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든 파도에 귀를 찢기고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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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싫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긴 세월 긴 시를 쓴 사람이다 너는 날 만나기 위해 자갈밭에 앉은 여인들과 함께 내가 물고 늘어질 주낙낚시에 미끼 꿰고 있었는가 나를 낚기 위해 너의 영혼을 꿰고 있었는가 영혼의 미끼는 싫다 살아 있는 육체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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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되리라
풀 되리라 어머니 九天에 빌어 나 龍 되어도 나 다시 九天에
빌어
풀 되리라
흙 가까이 살다
죽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물 가까이
살다
물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아버지 날 공부시켜
편한 사람 되어도
나 다시
공부해서
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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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시
내 육체를 보려면 3000원이 든다 시집 한 군 값보다 천 원이 싸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선다 이상한 육체들이 많구나 어찌하여 저 젓가락 같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울이
돌아앉는다 40대만 해도 거울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니 50대에도 가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는데 이상하구나 70으로 들어서니 모두들 외면하는구나 나도 나를 외면하려 하는구나 흙 밖으로 밀려난 소나무 뿌리같구나 배꼽을 봐도 탯줄이 잘린 후 아무 쓸모 없이 뜻 없는 상처로 입을 다물고 있구나 저것이 탯줄을 잡고 나왔을 때는 힘찬 울음으로 태어났음을 알렸는데 이젠 죽음을 알릴 힘조차 없구나 시 한 줄 간직하기에도 힘드나 보다 그래서 수의를 입히고 꼭꼭 묶는 것일까 자꾸 줄어도는 욱신의 욕망 3000원을 내고 나 혼자서 봤지만 돈이 아깝구나 하기야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봐주나 남들은 3000원을 줘도 외면할 육체 다 갔구나 때 밀 필요도 없이 다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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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육십오일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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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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