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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마지막 인사와 축복 기도. 요약설교

작성자바다위 빨간해|작성시간24.10.25|조회수34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마지막 인사와 축복 기도. 요약설교

 

󰊱 13-14. 고린도 교회에 대한 마지막 권면의 말씀입니다.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 13-145개의 명령형 동사로 구성된 마지막 권면입니다.

(1) 깨어 있어라.

(2) 굳게 서라.

(3) 남자다워라.

(4) 강건해라.

(5) 사랑으로 행하라.

2. 이 다섯 가지 용어는 군대 용어로서, 앞의 두 가지 깨어 있으라굳게 서라는 경계 태세에 관한 명령이고, 다음 두 가지 남자다워라강건하라는 공격에 관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라는 전우들 간에 있어서, 서로 사랑으로 결속하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삶의 전반적인 태도가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15-18.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에 대한 문안 인사입니다.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 스데바나 집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의 첫 번째 결신자들이고, 바울이 맨 처음에 세례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바나 집사람들이 교인들을 잘 섬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그 첫 번째 신자들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본 절과 1:16, NIV-SB)

그래서, 바울은 스데바나 집사람들을 추천하면서, 그들을 교회에서 알아주라고 권면했습니다.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1.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오는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 편지를 바울에게 전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자기에게 온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받고 싶어 갈망하고 있던 애정을 이들이 바울에게 흡족히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 세 사람은 바울의 권면을 기쁜 마음으로 듣고, 고린도에 돌아가서 전달하겠다고 함으로써 바울의 마음을 심히 기쁘게 했습니다. 2.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전도사역을 물질적으로 도왔으나(4:14-16), 고린도 교회의 이 3인은 바울이 분쟁사태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울 때, 바울을 사랑하고 그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1) 어떤 연유로든지 사람들에게 오해와 배척을 받고 있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이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격적인 일입니까?

또한 나는 외로움과 고독에 빠져있는 사람을 위로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혹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2) 나는 괜히 분쟁사태에 휘말려 본 적이 없습니까?

또는 평신도들끼리 편을 갈라서 지도자들을 불편스럽게 한 적은 없습니까?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습니까?

 

󰊳 19-20.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의 문안 인사와 특별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있는 교회와, 모든 교우들의 문안 인사입니다.

앞부분 10-18이 사적인 인사라면, 19-20은 공적인 인사입니다.

, 앞부분은 디모데, 아볼로,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에 대한 인사였으나, 여기 19-20은 아시아교회들의 문안 인사, 아굴라 브리스길라 가정교회의 인사, 모든 교우의 인사입니다.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1.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여기의 아시아란 당시 로마의 총독이 다스리는 행정단위(province)로서, 오늘날 서부 터키 지역에 해당합니다.

이 지방에 위치한 교회들로서는 에베소 교회,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 그리고 계시록 2-3장에 기록된 교회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들)입니다.

이 아시아교회들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바울의 전도에 의해서 설립된 교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10. 바울이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따라서, 이 아시아교회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아버지 격인 바울을 비난하고 괴롭게 만든 고린도 교인들을 욕하고, 상종치 않을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2. 그래서, 바울은 어쩌면 고립되고 곁길로 갈 수 있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자신의 배경(back-ground)이 되는 아시아교회들의 문안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바울 사도의 성숙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 지역에 처음 전도를 했고, 고린도 교회의 창설에 동참했던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18:1-4).

사도행전 18:1-4.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이들 부부는 바울이 소위 제 2차 전도 여행(AD 51-53)을 마치고,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갈 때,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갔습니다(18:18-19).

사도행전 18:18-19.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4.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과 선교여행의 출발지인 안디옥교회를 거쳐, 소위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 갔는데, 이 에베소에서 바울이 약 3년간 사역하는 동안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집은 결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가정교회(house church)가 되었습니다.

(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헌신을 하니까, 그의 가정은 성경 공부하는 장소도 되고, 복음 전도자들의 숙소도 되고, 선교 기지도 되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들은 이런 전략적인 인물들을 잘 회심시키고, 헌신케 하는 교회입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회심하고, 헌신하게 되니까, 당시 로마제국의 유력한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몰려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력한 사람이 회심하지도 않고, 헌신하지도 않았는데, 교회에서 높은 직위를 주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력자를 전도하고 양육하는데, 전략적 인물로 지목하는 것은 좋으나, 그가 진정으로 변화되지도 않고 헌신되지도 않으면, 중직을 주는 것이 곤란합니다.

(2) 변화와 헌신이 되었느냐의 여부는 그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고, 헌신 봉사하느냐의 여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거듭났는지 여부는 육안으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단지 기도와 말씀과 봉사를 좋아하느냐의 여부로 판가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력자를 지목하여 전도하되, 인간적인 친밀감을 갖게 하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게 해야 합니다.

헌신한 가정이 할 중요한 일은 우선 사람들을 초청하여 밥을 먹이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집에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5.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본 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가정교회의 간절한 문안, 충심에서 우러나는 문안’(most heartly salutation)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시아 교회들의 경우와 같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바울 사이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반()바울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 모든 형제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1)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전혀 보지도 못한 교회의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인사할 때, 우리가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인가 보다 하고 격려와 기쁨을 갖게 됩니다.

(2). 구약 성경 룻기를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왔을 때, 유대인들은 모두 좋지 않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특히 질이 좋지 못한 남자들은 불신앙적인 눈으로 그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 보아스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룻의 신앙을 인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준 보리 이삭보다 몇 배나 큰 선물이었습니다.

룻기 2:10-13.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3)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의 내분이나 부도덕한 문제나 교리적인 혼동 때문에 상당히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아 교회들의 문안과 브리스길라, 아굴라같이 귀한 분들의 문안이 영적 고통을 겪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자주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해주는 사랑과 격려입니다.

2.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거룩한 입맞춤’ (holy kiss)은 초대교회 시대에 교회와 유대인의 회당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입맞춤의 방법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행했고, 만날 때와 헤어질 때 행했습니다.

 

󰊴 21-24. 바울 사도의 개인적 문안 인사와 축복 기도입니다.

바울은 친필로 싸인(sign)을 하고(21), 사도로서의 카리스마적 아나데마(ἀνάθεμα)를 선언하고(22), 약식 축도(23)와 더불어, 개인적인 사랑을 표현합니다(24)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1. 바울은 일반적으로 편지를 대필(代筆)했습니다.

예컨대, 로마서의 대필자는 더디오입니다.( 16;22)

로마서 16: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그리고, 편지 끝에는 친필로 싸인(sign)을 남겼습니다. (살후 3:17, 표적).

데살로니가후서 3: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1.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아나데마(ἀνάθεμα, 저주)와 마라나다(μαρν θά, 주여 오시옵소서)가 앞뒤에 연결되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당시에 표어같이 사용하는 말들이었습니다.

(1) 신정국가인 유대국가나 중세 카톨릭국가에서 아나데마를 선언 받은 사람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체, 재산, 생명, 인격에 대한 침해를 받아도, 어떠한 법적 권리도 보호받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나 초대 그리스도인은 유대국가와 로마제국에서 종종 아나데마를 당하곤 했습니다.

성경에서 출교라는 것이 곧 아나데마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면, 불신자는 영원한 아나데마를 당하게 됩니다.

(2) ‘마라나다는 분철(分綴)에 따라, ‘주여 오시옵소서’(μαρν θά, 명령형),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μαράναθα, 직설법)로 다르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에는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아나데마를 받을 위치에 있으니까, 빨리 회개하고 성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라나다는 심판날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빨리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잠자는 신앙을 일깨우고, 성령을 따라 사는 헌신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1. 일반적인 약식 축도입니다.

완전한 형식은 고린도후서 1313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직자로서의 축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도 표현했습니다.

비록 그가 고린도 교인들과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주 안에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사랑으로 축원하는 것은 결국 고린도전서를 마감하면서, 앞에서 말한 모든 말씀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큰 풍랑이 일 때, 시들어 버리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준 말씀은 풍랑이 일어날 때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영원토록 붙들어줍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교우가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서로 붙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 다 같이 생각해봅시다>

1. 우리는 교회에서 일하다 보면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불편한 관계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처럼 인격적인 모욕과 배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울처럼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가지고, 사랑과 화평을 도모할 수 있습니까?

2. 구체적으로 화평한 마음, 겸손한 대화, 친교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주는 일은 없습니까?

혹시 상처가 되는 일들이 있었다면, 오늘 말씀처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게 해주시옵소서!

상처를 주기보다는 상처를 싸매어주고, 잘못을 책망하기보다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교회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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