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십자가의 도는 지혜요 능력(표적)이라
지난 시간에는 사람을 따라 당을 짓고 분쟁하지 말고, 한마음과 한뜻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의 분당 문제에 대해 권면한 바울은 이제 그 분당 문제가 근본적으로 인간적 지혜를 중시하는 아볼로파와, 유대 종교적 표적을 중시하는 게바파와 관련되어있는 것을 간파하고서, 본문(1:18-25)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참된 지혜이며 참된 능력임(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밝히고 있습니다.
18-25, 인간적 지혜와 신비한 표적을 좇아 분당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word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Ὁ λόγος γὰρ ὁ τοῦ σταυροῦ, τοῖς μὲν ἀπολλυμένοις μωρία ἐστίν,
the word for the of the cross, to those indeed perishing foolishness is
직역하면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함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멸망하는’(ἀπολλυμένοις)은 현재분사로서(perishing) 현재 계속 멸망해 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동사(ἐστίν)는 현재형입니다(is).
‘십자가의 도’(Ὁ λόγος ὁ τοῦ σταυροῦ)에서 ‘도’(λόγος)란 소위 ‘로고스’로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로고스’라고 했습니다 (요 1:1)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τοῖς δὲ σῳζομένοις, ἡμῖν, δύναμις Θεοῦ ἐστιν.
to those but being saved, to us, power of God it is
직역하면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받는’(σῳζομένοις)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aved) 현재 계속 구원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지막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계속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여기서 ‘십자가의 도’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관해 전한 복음을 가리킵니다( 마 20:24-28).
이것은 특별히 바울의 구원체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딤전 1:12-16).
바울은 유대 종교와 헬라 철학적 지혜를 신봉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으나, 자기 같은 죄인 괴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죄 용서함 받은 감사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볼로파의 헬라 철학적 지혜 추구나, 유대주의적 게바파의 표적과 능력 추구가 바울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어리석은 짓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 바울과 아볼로는 에베소에 함께 있으면서 사이가 좋았으나(고전 16:12), 자칭 아볼로파 신자들은 바울 사도의 복음보다는 헬라철학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와 베드로는 서로의 사명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나(갈 2:9), 자칭 베드로파라는 신자들은 순수한 복음보다는 유대주의적 율법 규정들(장로들의 유전- 정결법 등)과 표적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2) ‘멸망하는’(ἀπολλυμένοις: perishing)과 ‘구원을 받는’(σῳζομένοις: being saved)은 모두 현재분사로서, 현재 계속 멸망해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현재 계속 구원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3) ‘하나님의 능력’(δύναμις Θεοῦ: power of God)이란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19절.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it i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and I will set aside the understanding of the experts.
기록된 바
γέγραπται γάρ
it has been written for
직역하면 ‘왜냐하면--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기록된 바’(γέγραπ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it has been written)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Ἀπολῶ τὴν σοφίαν τῶν σοφῶν,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멸하고’(Ἀπολῶ)는 미래형으로서(I will destroy) ‘멸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καὶ τὴν σύνεσιν τῶν συνετῶν ἀθετήσω.
and the intelligence of the intelligent I will frustrate
‘폐하리라’(ἀθετήσω)는 미래형입니다(I will frustrate).
1.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 ‘기록된 바’는 구약성경 이사야 29장 14절의 인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BC 722년), 남쪽 유다 왕국( 히스기야 왕 당시)을 위협하고 있을 때, 유다 왕국의 소위 ‘지혜자’들은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 대항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러한 인간적 지혜가 어리석음을 탄핵하셨습니다.
결국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주셔서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키시고, 앗수르왕 산헤립은 본국으로 철수했다가 자기 아들에게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36-37장, 왕하 18-19장)
(2)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와 ‘총명한 자들의 총명’이란 히스기야 왕에게 애굽의 도움을 요청하자는 전략가들의 지혜와 총명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 앞에서는 어리석은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re is the wise man? Where is the scribe? Where is the debater of this age? Has not God made foolish the wisdom of the world?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ποῦ σοφός;
where (is the) wise?
선비가 어디 있느냐
ποῦ γραμματεύς;
where (is the) scribe?
선비(γραμματεύς)는 서기관(scribe)을 의미합니다.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ποῦ συνζητητὴς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where (is the) debater of the age of this
변론가(συνζητητὴς)는 헬라의 궤변론자들처럼 변론가를 가리킵니다(disputer, as the Greek sophists)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οὐχὶ ἐμώρανεν ὁ Θεὸς τὴν σοφίαν τοῦ κόσμου;
not made foolish the God the wisdom of the world?
‘미련하게 하신’(ἐμώρανεν)은 부정과거로서(made foolish) 완전히 미련하게 만들어버리신 것을 가리킵니다.
1. 지혜자
아볼로파는 특히 헬라 철학적인 지혜를 추구했는데(잘 아시는대로 ‘철학, philosopy’이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임), 이들은 아볼로가 구약성경만이 아니라 헬라 철학과 웅변에 능한 것을 자기들과 연관시켜서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린도 도성에는 거리마다 자칭 ‘지혜자’라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인생 문제에 대해 상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Aristides의 증언: NIV-SB)
2. 선비
문자 그대로는 유대인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므로(행 18:24), 아볼로파는 아볼로를 유대인의 서기관처럼 존경했던 것입니다.
2. 변론가
헬라 철학의 궤변론자들(sophists)과 같은 변론가를 가리킵니다.
실상 십자가의 도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철학적 변론은 궤변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인생 문제의 해결은 심령의 변화에 있지 궤변론자들의 말장난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이 세상의 지혜’는 미련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밝은 태양 빛 아래서 하나의 촛불은 미미한 불빛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ince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through its wisdom did not come to know God, God was well-pleased through the foolishness of the message preached to save those who believe.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ἐπειδὴ γὰρ ἐν τῇ σοφίᾳ τοῦ Θεοῦ, οὐκ ἔγνω ὁ κόσμος διὰ τῆς σοφίας τὸν Θεόν,
since for in the wisdom of the God, not knew the world through the wisdom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원문에 ‘그 지혜’(τῆς σοφία: the wisdom)를 한글성경과 많은 영역본이 ‘그의 지혜’(its wisdom) 즉 ‘세상의 지혜’로 번역했습니다(New International Version, Berean Study Bible, NET Bible 등)
‘알지 못하므로’에서 동사(ἔγνω)는 부정과거이므로(knew) ‘도무지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란 뜻이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εὐδόκησεν ὁ Θεὸς, διὰ τῆς μωρίας τοῦ κηρύγματος, σῶσαι τοὺς πιστεύοντας.
was pleased the God, through the foolishness of the proclamation, to save those believing
‘기뻐하셨도다’(εὐδόκ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was pleased) 전적으로 완전히 기뻐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구원하시기를’(σῶσ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ave) 단번에 절대적으로 구원하시도록 한 것을 가리킵니다.
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지혜’는 20절에 나오는 ‘이 세상의 지혜’와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사람보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는 사람을 더 의롭다고 하시고(눅 18:9-15),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낮추는 자를 높이시며(마 18:4),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허락하십니다(마 5:3).
그리고, 세상에서 지적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자에게나 미련한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고, 고린도전서 3장 18절에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풍자적인 표현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십자가 복음을 미련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대신 속죄를 담당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세상 사람들은 왜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을 위해서 죽냐고 그것을 미련한 짓이라고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생각하는 십자가의 전도로써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십자가 복음 전도로써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ndeed Jews ask for signs and Greeks search for wisdom;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ἐπειδὴ καὶ Ἰουδαῖοι σημεῖα αἰτοῦσιν καὶ Ἕλληνες σοφίαν ζητοῦσιν,
now that both Jews signs ask for and Greeks wisdom seek
‘구하고’(αἰτοῦσιν)는 현재형으로서(ask for) 계속 구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찾으나’(ζητοῦσιν)도 현재형으로서(seek) 계속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표적’(σημεῖα: signs)이란 자연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기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표적으로 주셨고, 엘리야와 엘리사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게 하고, 음식 표적을 행하고, 문둥병자를 살리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 메시야가 오시면 모세 같은 표적을 행할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께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 12:38-39, 16: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신 것은 그 표적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표시(σημεῖον: 싸인:sign)이었습니다. (요 20:30)
2.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헬라인은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여기서 ‘헬라인’이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 ‘지혜’란 자연과학적인 유익한 법칙과, 인간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의 지혜와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적인 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추구했고, 헬라인은 자연과학적이고 인간 사회적인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헬라인이 추구하는 철학(philosopy)이란 ‘지혜의 사랑’(φιλοσοφία)이란 뜻입니다.
공자가 가르친 ‘대학’(大學)이나 ‘논어’(論語)와 ‘중용’(中庸)도 인간관계의 지혜와 통치의 지혜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23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to Jews a stumbling block and to Gentiles foolishness,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ἡμεῖς δὲ κηρύσσομεν Χριστὸν ἐσταυρωμένον,
we however we preach Christ having been crucified
직역하면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으니’란 뜻이고, ‘우리’(ἡμεῖς: 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ἐσταυρωμένον)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crucified)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전하니’(κηρύσσ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preach) 현재 계속 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Ἰουδαίοις μὲν σκάνδαλον, ἔθνεσιν δὲ μωρίαν,
to Jews indeed stumbling block, to Gentiles now foolishness
1.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세상 불신자의 눈으로 볼 때, 죄 없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그리스도는 미련한 자요, 무능력자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 대신 죽으신 것은 미련해서도 아니고, 무능력해서도 아니고, 오직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는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찬송가 143장. 1.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2.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2.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유대인들은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적군을 물리치고 유대왕국을 재건할 능력 있고 표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행 1:6 참조).
사도행전 5장 36-37절의 ‘드다’와 ‘갈릴리 유다’가 그러한 성격을 띤 가짜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참 메시야 되신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죄인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십자가의 전도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3.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이방인인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왕국을 설립한다고 하면서 범죄자로 십자가에 처형되었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처럼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구세주라고 믿는 사람들을 미련하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4절.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o those who are the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αὐτοῖς δὲ τοῖς κλητοῖς,
to them however the called,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Ἰουδαίοις τε καὶ Ἕλλησιν,
Jews both and Greeks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Χριστὸν Θεοῦ δύναμιν καὶ Θεοῦ σοφίαν.
Christ of God power and of God wisdom
1.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복음 전도를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 ‘부르심’은 지옥 갈 불신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효과적인 부르심(effective calling)입니다.
이처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는 예수님을 거절했으나,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하자, 바울을 중심으로 복음 전도가 헬라인 즉 이방인에게도 가서,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많은 이방인 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2) 믿은 성도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 죽을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 같이 악한 살인마가 천사같은 사도로 변화되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었고,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또한 지독한 죄인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변화되고, 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이 세상 지혜자들은 사람을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시키고, 징계하여, 다소 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려고 열심히 교육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노력은 약간의 유익과 번화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중생하는 중심적인 변화는 이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긴의 근본적 변화는 성령님의 감동과 예수님의 지극한 대속의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변화된 것은 교도소의 십수년간 감옥살이가 아니었고, ’미리엘‘ 성직자의 용서와 사람으로 변화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이시고( 롬 1:16), 어리석은 사람을 변화시켜 삶의 분별력을 갖게 하는 지혜이십니다( 3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cause the foolishness of God is wiser than men,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men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ὅτι τὸ μωρὸν τοῦ Θεοῦ σοφώ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ἐστίν,
because the foolishness of the God wiser than the men is
직역하면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의 동사(ἐστί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그렇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καὶ τὸ ἀσθενὲς τοῦ Θεοῦ ἰσχυρότερον τῶν ἀνθρώπων.
and the weakness of the God stronger than the men
1.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 아무리 헬라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미련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로써 미련하고 죄 많은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십니다.
(2) 아무리 유대인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무한한 사랑으로써 죄인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바쳐 구원하신 최고로 강하신 분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을 사랑하고 순교하게 만드는 강한 능력을 가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불신자들은 표적이나 지혜를 추구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나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주신 우리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따라 살아가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힘있게 믿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학문을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세계와 진리를 탐구하여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교만하여, 십자가의 도나 계시적 성경 진리를 경멸한다면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일반 학문도 열심히 탐구해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경에 계시해 놓으신 말씀과 복음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지혜롭고 올바른 삶으로써 이웃을 구원하고, 가정과 자녀가 잘되는 복된 생활을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신체적 단련과 정치적 권려과 돈의 힘을 축적하여, 힘있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와 능력을 얻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인생사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과 치유와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