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4장 1-5절. 하나님의 일꾼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요약설교
1. 서언
3장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사람을 중심으로 분쟁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나 목회자 아볼로나 주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나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장로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그분들은 모두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4장에서는, 사도 바울이나, 목회자 아볼로나, 수제자 베드로 등은 사람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일꾼들’이기 때문에,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교인들의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오직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전히 평가를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4장은 3장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의 신중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분해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1-2, 바울, 아볼로 등은 하나님의 일꾼들임
3-5, 그리스도의 일꾼들에 대한 인간들의 판단은 불완전하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완전히 판단하실 것임
3. 해설
1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1) 원문에서 ‘우리’(ημας)가 앞에 나와 강조됨으로써, 사도 바울, 목회자 아볼로와 베드로 같은 교역자들을 단순히 인간적 직분자(‘어느 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 등)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주의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주의 종을 자신들이 사례비를 주어서 부려먹는 자신들의 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2) ‘그리스도의 일꾼’(ὑπηρέτας Χριστοῦ)에서 ‘일꾼’(ὑπηρέτας)은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아래서 배 젖는 자’(under-oarsman)란 뜻인데, ‘그리스도의 종’(servants of Christ)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직자는 참다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즉, 성직자가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전하고,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참다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설교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자신의 말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성직자 자신이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께 순종하면서 사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비밀을 맡은 자’에서 ‘맡은 자’((οἰκονόμους)는 원문상 ‘집을 드시리는 자’(household-manager)을 뜻하는데, 보통 ‘청지기’(stewards)를 뜻합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과 사람들과 노예들을 맡이 관리하는 사람이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일꾼’인 성직자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성도들과 그 재산인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교역자들은 단순히 교인들의 소유물로만 잘못 평가하는 것(3:22 참조)을 시정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어떤 장로(나*민)는 목사를 ‘목회자 마트’에서 비싼 돈 주고 사 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종을 자기의 종으로 착각한 대단히 무례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직분자들을 어느 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 권사라거나, 어느 구역의 구역장, 예배 인도자, 권찰이라기 보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일꾼이요,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사역자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인 복음의 말씀을 전하도록 주님께 위탁받은 청지기’란 뜻입니다.
이것도 역시 교역자의 신적 존엄성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1) 즉, 교역자는 단순히 자신의 말을 전파하는 사람이 아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께 위탁받아서 전파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이 교역자를 대접하는 것은 교역자가 주님께 위탁받은 복음의 말씀을 잘 전하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주시는 것이 참으로 교역자 대접을 잘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교역자가 말씀 전하고, 심방하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교인들끼리 분쟁하는 일에 시달려 교회를 떠나고 싶은 생각만 든다면, 결국 교인들의 영혼이 은혜를 못 받고 타격만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교인들끼리 싸우고 분쟁하므로, 심지어 고린도 교회에서 시무하던 아볼로라는 목회자가 교회를 그만두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도망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 12절에,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고 했습니다.
(3) 고린도 교회가 분쟁하므로, 목회자 아볼로가 교회를 떠나간 뒤로,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많은 손실과 타격을 받고, 디모데, 바울, 디도의 여러 번에 걸친 중재 끝에 분쟁이 잠재워지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서 마지막까지 투쟁하려는 중직자 몇 사람이 처벌되는 불상사까지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2절에,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들은 아무쪼록 누가 목회를 하든지 목회자가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직 기도하고 말씀 전하고 심방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협조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간의 분쟁에 휘말려서 불편한 마음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나 말씀 전하는 것이나 심방하는 일을 못함으로,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4) 교역자는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직분자이기 때문에, 교역자를 가장 잘 대접하시는 분은 말씀을 잘 듣고,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분들입니다.
예배 시간에 고개 숙이고 딴짓하고, 사람들 안내한다고 설교 안 듣고, 설교 시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교회의 직분자로 높임을 받으려는 사람은 교역자에게는 정말 골치 아픈 교인입니다.
교역자를 가장 잘 대접하는 성도는 말씀을 잘 경청하시는 성도님들이십니다.
교역자는 성도님들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는 것을 보면, 가장 기쁘고 살맛 납니다.
3. 그런데, 이와 같은 원리는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 즉, 우리는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직분을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로 세워주신 것으로 알고, 부모님이 뭘 잘 모르시고, 둔하시고, 세대차가 많이 나더라도, 부모님을 공경하고, 주안에서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부모님들도 자녀들을 자기의 소유물로만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양육하라고 맡겨주신 줄 알고, 자신의 성질대로 자녀를 노엽게 만들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엡 6:1-4).
(2) 직장에서도, 직원들은 사업주를 하나님이 세워주신 상전인 줄 알고, 주님을 섬기듯 하고, 하나님의 일 하듯이 성실하게 하고, 사업주도 직원들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 무리들인 줄 알고 진짜 사업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사원들에게 공갈하거나 겁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엡 6:5-9).
(3) 국가의 공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직자들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직책임을 알고, 부하 직원이나 빽 없는 국민들에게 협박하여 돈 뜯어먹지 말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억울한 재판을 하여,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게 말고,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돌보듯 ‘목민 정신’으로 공직을 감당하며, 상관들에게 아부하거나 인사에 합당하지 않는 많은 뇌물을 바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3:12-14.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고, 공직자들은 백성에게 강포하지 말고, 무소하지 말고, 받는 봉급을 족한 줄로 알라.
국민들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나라, 하나님이 세워주신 공직자인 줄 알고, 국민의 의무를 잘 이행해야 하겠습니다(롬 13:1-7).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1.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맡은 자’(τας οικονομοις, the stewards: 그 맡은 자들)란 1절의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πιστος: faithful) 것이란 사람의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실하게 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원래 주님을 믿는 신앙(πίστις:faith)은 ‘충성스러운 것’(πιστός:faithful)입니다.
(1) 즉, 하나님의 교직자들의 충성이란 교직자가 다른 교인들의 판단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교만하거나 낙심하지도 않고, <주님께> 충성하면서 착실하게 일해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나를 직접 대적하는 원수나 나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여론이나, 심지어 내 성격상의 소극적인 기질과 죄책감에 아랑곳하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 죽어주신 대속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주님 아시지요~!”하면서, 묵묵히 충성된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사실 목사가 교회에서 억울하게 판단을 받으면, 마음이 심히 괴롭고 억울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판단과 비방에 초월적인 자세를 갖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으니 대단히 위대한 분입니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이처럼 주님만 바라보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교회에서 주님께 직분을 맡으신 직분자들은 주님께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볼 때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맡은 직분을 성실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성가: 1. 준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2.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3.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바울 사도는 3-5절에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직분 감당하는 모습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3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1. 3-4절은 내용상 세 가지의 부정과 한 가지의 긍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교회 직분자를 판단할 주체는 ① 너희 즉, 교인들도 아니고, ② 다른 사람들 즉, 사람들의 여론도 아니고, ③ 나 즉, 나의 판단도 아니고, ④ 다만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2.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사도 바울은 인간적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매우 작은 일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판단은 관심 밖의 일이다, 문제시 되지 않는다’(no earthly judgment is of any concern to him) 는 뜻입니다. (Ellicott's Commentary)
즉, 바울 사도는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서 낙심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도 자신에 대해서 자책감 같은 것을 별로 갖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3. 여기서 만일 사도 바울이 상대방의 평가 즉 비난이나, 제 3자의 평가인 여론에만 의존했다면, 요즈음 상담 심리학적 용어로 ‘상호 의존적인 인격’(interdependent personality)이 되어, 패배감과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반면에, 만일 사도 바울이 상대방의 평가인 비난이나, 제 3자의 평가인 여론을 전혀 무시하고, 자신의 평가(판단)만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독선적인 고집쟁이’(self-righteous obstinate person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상대방의 비난이나 제 3자의 여론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평가마저도 무시했지만, 오직 ‘주님의 평가’만을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충성했던 직분자로서, 오고 가는 모든 시대 직분자들의 본(사표)이 될 만한 충성스러운 사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나를 직접 대적하는 사람이나 나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여론이나, 심지어 내 성격상의 소극적인 기질과 죄책감에 아랑곳하지 말고, 오직 주님이 심판해주실 것을 바라보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4.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3-4절에 사용된 ‘판단하다’(ἀνακρινω)는 용어와 5절에 사용된 ‘판단하다’(κρίνω)의 용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3-4절에 사용된 ‘판단하다’는 예비적 재판에서의 판결을 의미하고, 5절에서의 ‘판단하다’는 본법정(本法庭)에서의 판결을 의미합니다.
즉, 상대방의 판단이나, 제 3자의 판단이나, 내 자신의 판단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의 불완전한 판단을 가리키고, 주님의 판단은 주님이 최후 심판 때 판단하시는 완전한 판단을 가리킵니다.
어쨌든,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충성하시는 직분자 여러분들은 최후 심판의 때에 주님의 완전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불완전한 판단에 따라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4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1.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바울은 자기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이란 자기 보기에는 바른 일이라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온전치 못한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 일반적으로, 사람이란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여 그 판단을 독선적으로 주장하거나,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여기서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의 판단과 주장을 절대시해서는 안 되고, 누구나 주님의 판단을 받기 전에는 자기의 판단과 의견을 상대화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즉, 누구의 말을 듣고서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상호 관용적 태도’(mutual tolerant attitude)를 가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1) 만일 사람이 아무런 절대적 판단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아무것이나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하면서 절대적 관용의 태도만을 갖는다면, 그는 무골충이요 천하의 바보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판단’(judgment of Lord)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일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의 직분자들은 반대편이나 사람들의 평가(여론)에 낙심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평가에 따라 교만할 필요도 없고, 다만 주님을 바라보면서 충성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5절,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1.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즉,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절대적 평가를 내려서, 바울이 옳다느니, 아볼로가 훌륭하다느니, 어느 집사님이 좋고, 어느 집사님이 잘못했다느니 하면서 교회의 직분자들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고린도 교인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평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준하여 평가하는 피상적인 평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재림하신 주님의 평가는 눈에 보이지 않고 감추인 것들과, 법률적인 용어로 실행에 착수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으로 이미 계획한 심적 동기까지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 5:22,28)
3.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앞으로 최후의 심판 때 주님이 평가하실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주님이 반드시 심판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주님(성령님)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 146:5-7, 103:17-22, 97:9-12, 살후 3:3, 벧전 5:7, 마태복음 7:11)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심적 동기조차도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날마다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최후에 심판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심판해주실 것을 믿고, 날마다 주님(성령님) 모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장차 이생과 내세에서도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