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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016년 2월 28일 고린도전서 7장 15-37절 처녀 결혼 문제

작성자바다위 빨간해|작성시간16.02.28|조회수55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725절로 40절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030907

 

1. 지난 시간에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 결혼 환경이 홀아비나 과부이든지, 또 종교적 환경이 할례자든지 무할례자든지, 또 사회적 환경이 자유인이든 노예이든지, 어떤 환경에서라도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2. 오늘은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하여 하라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처녀가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그리하고, 총각이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그리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도 사업 자체가 우상시 되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하고, 슬픈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슬프지 않는 사람처럼, 기쁜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기쁘지 않는 사람처럼,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아무 물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오직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3. 어찌 보면, 연극배우처럼 살라는 말씀인데, 가식으로 그리하라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정말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우상시하지 말고, 상대화시키면서, 주님만을 절대시 하면서,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4. 제목은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5. 고전 7장은 결혼론에 관한 교훈인데, 1-7은 총론격이고, 8-9은 각론1 (독신 생활론), 10-24은 각론2 (이혼론), 25-38은 각론3 (처녀 결혼론), 39-40은 각론4 (과부 재혼론)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각론3 (25-38: 처녀 결혼론)과 각론4 (39-40. 과부 재혼론)를 합쳐서 살펴보고자 한다.

6. 분해

7:25-38. 처녀 결혼문제에 대한 교훈

7:39-40. 과부 재혼문제에 대한 교훈

7. 처녀 결혼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5. 처녀에 대하여는

English Standard Version: 약혼한 자들에 대하여는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이 없으나, 주님의 자비로써 신실한 자가 된 자로서 내가 나의 판단을 주노니(Now concerning the betrothed, I have no command from the Lord, but I give my judgment as one who by the Lord’s mercy is trustworthy.)

New Living Translation: 이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인에 대한 너희의 질문에 관하여, 내가 그들에 대한 주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은 없으나, 주님이 그의 자비하심 가운데 믿을 수 있는 지혜를 내게 주셔서, 내가 그것을 너희와 함께 나누고자 하노니(Now regarding your question about the young women who are not yet married. I do not have a command from the Lord for them. But the Lord in his mercy has given me wisdom that can be trusted, and I will share it with you.)

대하여는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한 내용들에 대한 답변 형식이 문구이다(NIV-SB).

처녀’(παρθενος)일반적인 처녀를 가리키기도 하고, 약혼하고 동거하기 이전의 남녀(fiancee)를 가리키기도 하고, 젊은 과부를 가리키기도 하고, 정신적 결혼 관계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L.Key).

36-38절에 비추어보면, 좁은 의미에서는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의 남녀(fiancee)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리상 결혼하지 않은 일반 처녀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계명’(επιταγη)은 지상에 계셨던 주님께서 직접 언급하셨던 말씀(an expressed command)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25절 이하의 교훈은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나,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교훈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9:11에서, 예수님께서는 독신생활이 타고난 자라야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는 현재적인 재난을 생각할 때 남자가 그의 현재 형편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I think then that this is good in view of the present distress, that it is good for a man to remain as he is.)

New Living Translation: 현재의 위기 때문에, 나는 너희가 현재 상태대로 그냥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Because of the present crisis, I think it is best to remain as you are).

임박한 환난’(ενεστωσαν αναγκην)이란 문자적으로는 현재적 필요’(present necessity)란 뜻으로서, 현재 당하고 있는 위기상황(present crisis-NIV)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은 박해와 기근을 당하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적용하여 처녀의 독신주의를 주장함은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NIV-SB. p.1743. Blomberg. p.151).

Blomberg 같은 유명한 학자는 임박한 환란을 그리스도인 각자가 자신의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데 늘 갖추어야 할 응급한 마음의 자세(sense of urgency to serving the Lord)를 가리킨다고도 했습니다.

2000년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는 독신주의가 유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나, 인류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특별한 뜻에서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가 독신주의라고 하면서, 독신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41에는, “말세에 악령에 미혹된 사람들이 혼인을 금하라고 할 터이나, 혼인은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English Standard Version: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자유하기를 구하지 말라. 네가 아내로부터 자유했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Are you bound to a wife? Do not seek to be free. Are you free from a wife? Do not seek a wife.)

New Living Translation: 네가 아내를 가지고 있다면 결혼생활을 끝낼려고 하지 말라. 네가 아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결혼하려고 하지 말라( If you have a wife, do not seek to end the marriage. If you do not have a wife, do not seek to get married.)

결혼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매였다, 놓였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28, 그러나,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나 네가 결혼한다면, 죄 짓은 것이 아니다. 약혼한 여인이 결혼한다면, 죄 짓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혼한 자들은 세상적인 고난들을 당할 것이며, 나는 너희가 그런 고난 당하는 것을 아끼노라( But if you do marry, you have not sinned, and if a betrothed woman marries, she has not sinned. Yet those who marry will have worldly troubles, and I would spare you that.)

본절의 처녀25의 처녀와 같은 단어로서, <정혼하고 동거하기 이전의 처녀>(betrothed woman: fiancee)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본절은 환난 때에 가족을 돌보려면 더 큰 고난을 당한다는 의미이지, 보통 때에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육신적 봉사가 고통스러운 짐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희생과 봉사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13:4 -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하게 여기라”.

 

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때가 단축하여지다’(time is short)는 말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짧아진다’(The time for doing the Lord's work has become increasingly short)는 말입니다.

, ‘세월이 유수와 같다’(life is fleeting)는 말입니다.

이처럼 세월이 유수와 같으므로, 성도들은 인생살이에 초연한 자세를 갖고, 너무 세상사에 몰입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세상사가정생활, 희노애락의 감정(30, 우는 자들, 기쁜 자들), 경제생활(30-31, 매매하는 자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 향락생활(33-34, 어찌 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어찌 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형적’(σχημα του κοσμον τουτου)이란 하늘나라의 참 모양’(μορφη του ουρανου)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유행(fashion)처럼 사라져갈 이 세상의 자원과 기회(world's resources and its opportunity)를 가리킵니다(Bruce by Key).

 

32-34. 너희가 염려 없기를 바라노라.

여기서 염려란 유행처럼 사라져갈 이 세상의 가정생활, 희노애락의 감정, 경제생활, 향락생활에 대해서 초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마음 쓰는 것을 가리킵니다.

장가가지 않는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는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이것은 장가간 남자와 시집간 여자가 결혼생활에 초연하지 못하고, 염려한 경우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금언적 현재(gnomic present)로서,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자는 배우자의 일을 염려한다는 것이지, 그리스도인 결혼생활자가 모두 다 배우자의 일만 염려하고 주님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신자가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고 주의 일에 무관심할 수가 있고, 결혼생활 하는 그리스도인이 협력하여 더욱 주님의 일을 잘 할 수도 있습니다(cf. SMT. Funk by Key).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금언적인 교훈을 들어서 독신생활을 권장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결혼환경(marriage circumstance)에 관한 것이므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결혼생활이 신앙생활에 유리한 수단이 되면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독신생활이 신앙생활에 유리하면 독신생활을 하라는 것이지, 율법주의나 금욕주의적인 입장에서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반드시 독신생활을 해야한다고 짐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English Standard Version: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약혼자에 대해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정욕이 강렬하다고 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을 결혼하게 하라- 이것은 죄가 아니니라(If anyone thinks that he is not behaving properly toward his betrothed, if his passions are strong, and it has to be, let him do as he wishes: let them marryit is no sin.)

New Living Translation: 만일 어떤 남자가 자기 약혼녀를 부적절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정욕에 불가피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그녀와 결혼하게 하라. 이것은 죄가 아니니라( But if a man thinks that he's treating his fiancee improperly and will inevitably give in to his passion, let him marry her as he wishes. It is not a sin.)

<참고: 이 설교는 원래 1995년에 작성한 것인데, 과거에 한글개역 성경에 자기 처녀 딸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20016년에는 개역성경에 약혼녀로 번역되어서 잘 번역되었습니다.>

36-38절은 역본에 따라서 번역이 다릅니다.

자기의 처녀 딸이 원문에는 자기의 처녀’(παρθενον αυτου)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자기 처녀’(his virgin-약혼한 여인: betrothed woman)를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AV. NEB, NIV).

따라서, 36-38절에 나오는 처녀는 약혼했으나 아직 동거하지 않은 여인(fiancee)을 가리킵니다.

1:18 - 요셉과 정혼했으나 동거하기 이전의 마리아처럼.

그러므로 마음대로 하라는 약혼하고 아직 동거하지 않는 남녀에게 동거생활을 하라는 의미입니다(NIV-SB. p.1743).

 

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나 누가 자기 마음에 확고하게 정하고, 반드시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자기 정욕을 통제도 할 수 있어서, 자기 마음에 자기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잘 한 것입니다. (But whoever is firmly established in his heart, being under no necessity but having his desire under control, and has determined this in his heart, to keep her as his betrothed, he will do well.)

<참고: 이 설교는 원래 1995년에 작성한 것인데, 과거에 한글개역 성경에 자기 처녀 딸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20016년에는 개역성경에 약혼녀로 번역되어서 잘 번역되었습니다.>

본절은 약혼남이 약혼녀와 동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면, 정혼한 기간까지 동거생활을 하지 않는 것도 잘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래서 자기 약혼녀와 결혼하는 자는 잘하는 것이라. 그리고 결혼생활을 절재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So then he who marries his betrothed does well, and he who refrains from marriage will do even better.)

New Living Translation: 그래서 자기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은 잘 한 것이니라.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이니라( So the person who marries his fiancee does well, and the person who doesn't marry does even better.)

<참고: 이 설교는 원래 1995년에 작성한 것인데, 과거에 한글개역 성경에 자기 처녀 딸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20016년에는 개역성경에 약혼녀로 번역되어서 잘 번역되었습니다.>

본절은 약혼녀란 한국적 개념의 약혼녀가 아니고, 법적인 혼인관계가 성립했으나, 아직 동거하지 않은 유대적 개념의 약혼녀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정혼녀와 일정 기간 안에 동거생활을 하는 자도 괜찮거니와, 정한 기한까지 동거생활을 안 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시집보낸다는 말의 원문(γαμιζων)결혼생활에 들어가다’(enter into marriage)는 뜻입니다(Linguistic Key. p.410).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본문을 근거로 처녀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것을 잘못임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고(1:28),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2:18).

그리고 혼인을 귀히 여기라고 하셨고(13:3), 말세에는 악령에게 미혹 받아서 혼인을 금하라고 할 것이고 했습니다(딤전4:1).

그리고 중세시대 천주교에서 독신주의를 주창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본문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또 번역상의 문제가 있어서 많은 처녀들이 결혼을 거부하거나 뒤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압니다.

아무쪼록 성경 본문을 올바로 이해하여 귀중하고 복된 결혼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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