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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015년 11월 1일 고린도전서 2장 6-16절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성도

작성자바다위 빨간해|작성시간15.11.01|조회수113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26절로 16절 육에 속한 자, 신령한 성도. 육신에 속한 성도

   368-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 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1. 서언

지난 주에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처음 믿기 시작할 때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시작했으나, 중간에 세속적 지혜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변질된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적 지혜를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추구하는 신령한 자들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 즉 불신자는 세상적 지혜만 귀하게 보고,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미련하게 생각하여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일은 거듭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고, 육에 속한 불신자는 신령한 세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처음 신앙을 회복하고,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적이고 변질된 신앙을 바로 잡으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2. 분해

고전 2:6-16. 성령으로부터 온 신령한 지혜와 육신의 정욕에서 나온 세속적인 지혜

 

󰠆󰠏세상적 지혜, 관원의 지혜 =예수님을 죽이는 지혜(8)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9), 성령이 계시하신 것(10), 은혜로 주신 것(12)

 

육에 속한 사람(14) - 불신자

신령한 자(15) - 성령님 인도 따라, 말씀 따라 사는 성도

육신에 속한 자(3:1) -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인간 중심으로 분쟁하는 성도

 

3. 해설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바울 사도는 앞에서는(2:1-5) 세상적 지혜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말했으나,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참된 지혜(성령으로부터 온 지혜)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자들이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며, 인간을 중심으로 파당 경쟁을 하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고전3:1)와 대조됩니다.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들의 지혜가 아니요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총독 빌라도나 유대 대제사장들의 세속적 지혜를 가리킵니다(8절 참조).

관원의 지혜란 공명정대한 진리의 길을 가는 지혜가 아니고, 삼국지 등에 나오는 세속적, 정략적, 권모술수적 지혜를 말합니다.

대제사장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더라면, 자기의 세상적 지위를 내어놓고 주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의 대표자인 오리겐(Origen)같은 신학자들은 관원’(αρχοων)을 공중권세 잡은 마귀로 해석해서, 아볼로파의 철학적 지혜를 장차 심판 받을 마귀의 지혜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오랜 교회 생활을 하면서 타성에 젖어, 인간적 요령으로써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시련의 풍랑이 불어닥치면 쓰러질 수 밖에 없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었던 것

여기서 은밀(μυστηριον:비밀)이란 창조시부터 예수님 초림시까지 비밀스럽게 간직되어졌던 대속적 구원계시를 말합니다.

이 대속적 구원 계시가 예수님 이후 복음으로써 널리 알리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감추었던 것 -구원 계시

인간의 선한 노력을 쌓아서, 그 적선으로써 천국 구원을 받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들리는 말이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믿게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즉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심으로써 이 비밀스런 복음, 즉 대속적 구원계시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구원 경륜(despensation, οικονομια)도 통달하시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돼지가 사람의 일(사정)을 모르듯이, 하나님의 일(사정)도 성령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하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참된 종교인(신앙인)이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을 받음으로써 시작됩니다.

, 귀신의 영을 받은 자는 무당종교인이 되고, 하나님의 영(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성령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음 신앙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3-5 ).

은혜- 구원의 은혜와 생활 중에 도우시는 은혜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우리가 이 은총의 선물들( 12: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적 지혜가 가르쳐주는 말로써 말하지 않고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인간적인 지혜로 분별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만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린도 교인들은 처음에 바울이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는 성령으로 거듭난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 후에 아볼로가 목회하면서 세상적 지혜와 인간의 정욕을 따라 사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정치 같이 사람 중심으로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된 성도들이 나누어져서 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신앙인을 고린도전서 31절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ος ανθρωπος)-

천주교의 성경(Latin Vulgate)에는 동물적인 사람’(animalis autem),

개신교의 흠정역 성경(Authorized Version)에는 자연인’(the natural man), 독일어 성경에도 자연인’(der naturlischer Mensch)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어 개역 표준번역(Revised Standard Version)에는 비영적인 사람’(the unspiritual man)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生來的인 자연본능에 따라 사는 자연인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불신자, 일반적인 인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은 영적인 사람(15: 신령한 자, ο πνευματικος)과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사람도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 6; 온전한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 예수 믿으면서도 육신의 정욕(인간적 욕망)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3:1, σαρκινοις,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원래 자연인으로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으나, 바울의 복음전도를 듣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중간에 성령의 인도를 버리고 육신의 정욕에 빠져서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인 사람(바울, 아볼로, 게바, 야고보)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순서상 자연인신령한 자육신에 속한 자의 길로 변화되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육신의 정욕만 따라서 분파를 만들지 말고, 이제라도 성령님을 따르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답게 하나가 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4:3).

NIV에는 육에 속한 사람성령이 없는 사람’( man without Spirit)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불신자(자연인)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고(3:1-8)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신령한 자>(ο πνευματικος)14절의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ος ανθρωπος)과 반대되는 사람이고, 31절의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σαρκινοις νηπιοις εν χριστω)와도 대조되는 사람입니다.

, 본절의 <신령한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이고, 31절의 <육신에 속한 자>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육신의(인간적) 욕정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즉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17-21절에 나오는 육체의 더러운 열매들을 맺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육체의 열매 중 하나는 고린도인들처럼 파당을 만들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것이 실제적인 구분이고, 원리적인 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신령한 그리스도인도 기도를 못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육신의 욕정을 따름으로써 육신에 속한 자가 될 수 있고,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회개하고 기도하여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받으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불신 자연인도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신령한 그리스도인도 기도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아 육신의 정욕만을 따라 깊이 타락하면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전 5:1, 딤전5:8).

 

< 3분설 문제- 3분설에 대한 비판>

┌─지방교회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과 혼에 속한 사람, 위트니스 리

└─구원파 - 구원의 도리 깨달은 사람은 영에 속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회개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주기도를 안 함

기독교 침례회는 올바른 침례교/ 예수교 복음 침례회는 구원파 이단.

구원파의 3- 권신찬 구원파( 주식회사 세모, 한강 유람선, 유병연 씨), 박옥수 구원파( 가장 큰 교세), 이요한 구원파( 광주교회, 광주에서 교세가 아주 큼)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기도를 안 하는 것이 특징임.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엄격한 3구분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인간을 거듭나지 못한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났어도 아직 육신에 속한 신자,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영에 속한 신자를 구조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3구분설을 주장하는 단체는 소위 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이 3구분설이 판을 쳤는데, 그 때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워치만 니의 로마서 강해서인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었습니다. 그 때 신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이 3구분설에 관한 비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워치만 니의 계승자는 위트니스 리이고, 바로 위트니스 리가 소위 지방교회라는 이단적 단체의 교조입니다.

구원파라는 이단도 바로 3구분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인데, 예수 믿는 사람도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여 자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육신에 속한 신자와, 구원파 신자들처럼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달아 신령한 세계에 속한 신자가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볼 때, 신령한 그리스도인과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원리적인 구분이지, 구조적인 구분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거듭난 신자도 한 때는 성령 충만할 때가 있지만, 또 다시 범죄하여 회개할 때도 있는 것이지, 한번 신령한 사람이 되었다고 다시는 한 번도 죄를 안 짓고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파는 주기도문도 필요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순간순간 짓는 죄는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단번에 영원히 용서 받았으나,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는 늘 회개하면서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에 한번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오기 어렵거니와, 내가 지금 영에 속한 생각을 하는가 아니면 육에 속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늘 분석하고 다니기 때문에 정신 분열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서울대를 나오고 지금 치유목회사역을 하고 계신 유명한 목사님도 70년대에 이 3구분설의 지도자로 있다가 정신 분열로 고생을 하다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우리측 신학교로 돌아온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본절에서 <판단하다>(ανακρινει)는 단어는 원문상 14절의 분별하다는 말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세계(신령한 자)에서는 불신 세계(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자)를 분별할 수 있으나, 반대로 불신세계에서는 신령한 세계를 분별치 못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8-11절에서 말씀한 대로, 육적인 사람은 신령한 세계를 깨닫지 못하나,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자란 바로 성령을 받고(12)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입니다(5:16-18, 8:5-9).

여기서,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가 육적인 세계(자연계)와 영계가 있을 뿐이고, 더 이상의 세계가 없음을 말합니다.

, 영지주의자가 주장하는 제3의 신령한 영적 세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조차도 신령한 하나님과 저속한 하나님(Demiurgos)으로 구분했었고, 영적인 세계도 30단계(aeons)로 구분했습니다.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이 말씀은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알아서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되겠느냐?”고 하였지만(40:13 인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고 있다.

, 이 말씀은 신령한 자가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까지 하고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지혜로만 살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받아 신령한 지혜를 가지고 살게 해 주옵소서.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의 인도와 지혜로 살게 하시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 혈기 부리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서, 성령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선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는 삶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에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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