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송 도령이
장가들 나이가 되었다
. 손이 귀한 집안의 5대 독자라
집에서는 하루빨리 장가보내
엉덩이 떡 벌어진 색시가
가을무 뽑듯
고추 달린 놈을
쑥쑥 낳아주기만 바라는 것이다.
송 도령은 신랑감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이목구비 반듯하고
허우대는 훤칠한 데다
머리도 영특해
초시에 합격했고
내후년쯤엔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를 볼 참이다.
송 도령네는 증조부가
참판까지 한
뼈대 있는 집안이지만
대대로 청렴하여
넉넉하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과거에 몇 번 떨어진
송 도령 아버지가
한눈 안 팔고 열심히 농사짓고
온 식구가 청빈한 생활에 익숙해
보릿고개에도
다른 집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처지는
아니다.
늙은 매파가
문지방이 닳도록
송 도령네를 들락날락거렸다.
앞니가 빠져
말이 새는 매파는
귀가 어두운 송 도령의
할머니를 물고 늘어진다.
“이물 훠하지
흐단 머리에 언던짝은 이만하고
단지 히가 머근 게 타리지.
지안 조치…”
삼십 리 밖에 있는
색싯감 집안도
양반 가문에
대대로 덕을 베풀어
인심을 잃지 않았다고
자랑이다.
마침내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
신부네 드넓은 마당에서
혼례가 치러졌다.
신부네 동네는
집성촌으로
모두가 아주머니·아저씨,
형님·동생이다.
그런데 신부 측 어른들의 얼굴에
한결같이 수심이 가득하다.
혼례를 마치고
첫날밤이 왔다
.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
원앙금침이 펼쳐졌고,
윗목엔 밤중에 배고플세라
주안상이 차려졌고,
모란꽃에 나비가 너울거리는
여덟 폭 병풍이 문을 가로막았다.
화촉동방이라
신랑·신부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부끄러운 듯 마주 앉았다
. 송 도령은 고개를 푹 숙인
신부의 족두리를 젖히고
얼굴을 자세히 봤다.
오똑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백옥 같은 살결
, 짙은 속눈썹에
사슴처럼 큰 눈.
그런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보이시오?
무슨 연유인지 말 좀 해보시오.”
신부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송 도령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 신부 측 가족들의
수심에 찬 얼굴도 떠올랐다.
울음을 멈춘 신부에게
송 도령이 말했다.
“술 한잔 따라주시오.
신부는 묵묵부답이다
. “감주 그릇을 건네주시오.”
신부는 미동도 않는다.
이럴 수가!
송 도령은 철퇴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신부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것이다.
송 도령은
주안상을 당겨 술을 마시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촛불을 껐다.
이튿날 아침,
신부의 이모가
이부자리를 정리하러
신방에 들어와
요 위의 붉은 자국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처갓집 식구들이
흐느껴 울며
송 도령, 아니 송 서방의
두손을 잡았다.
송 서방이 귀머거리 신부를
제 집으로 데려가자
이번엔 온 집안이
망연자실, 넋을 잃었다.
송 서방의 할머니는
매파를 불러 따졌다.
하지만
“단지 히가 머근 게
타리라고 말해잖아요”
하는데,
그걸 지금 따져서 무엇하나
. 송 서방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모든 게 하늘의 뜻이다.”
며느리는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손 귀한 집안에 경사가 났다.
첫 손자가 세돌 때
며느리는 쪽풀을 베어와
쪽물을 뽑더니
비단에 쪽염색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혔다.
쪽빛이 너무 예쁘다고
친척들이 비단을 가져오길래
쪽염색을 해줬더니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시아버지는 온 밭에
쪽풀만 가꾸고
귀머거리 며느리는
마당에 독을 열 개나 놓고
쪽물을 뺀다
송 서방 집안이 풍성해지고,
송 서방은 과거에 급제하고
, 며느리는 아들 하나를
또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