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어느덧 끝물.
낙엽 탓인가, 찬바람 탓인가,
아니면 고된 노동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인가,
밤마다 잠을 설치고 만다.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뒤척이거나
겨우 붙든 잠을 새벽 서너 시에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니 꼭두새벽에 일어나 앉아
서산에 달 지고 앞산에 해 뜨는 걸 지켜보았다.
낙엽이나 찬바람 탓이 분명하다.
고단함은 깊은 잠으로 나를 이끌 테니까.
신기한 것은 그렇게 살짝 눈을 붙이는데도
낮동안은 물 만난 고기처럼 팔팔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머리는 어린시절 엄마 따라 교회에 갔다가
멋모르고 남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기도를 했을 때처럼 개운해지지 뭔가.
밤이면 물에서 건져올린 물고기처럼 축 늘어져
두 눈은 살짝 쌍커플지고
퉁퉁 부은 발은 수제비반죽하듯 주물러 줘야 겨우 내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여하튼 요사이는 잠과 통 어긋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이다.
각설하고,
요즘 집 짓기 풍경 올린다.

지난 주일,
우리 집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라주면 용돈을 주겠다고 하자
작업장갑을 끼고 와서 벽돌을 날랐다.

자기들 딴엔 자동으로 벽돌이 수레에 옮겨지는 레일을 만들어 놀고 있었다.
그것참 괜찮은 방법이었다.
나중에 나도 꼭 저 방법을 써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무식하게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못하고
큰 돌멩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했다.

굴삭기가 큰 돌을 가져오면
우리는 시지푸스처럼 돌을 굴리고 쌓고 찟고 까불어만 싸댔다.

알따르보다 힘은 없지만 돌쌓는 기술만큼은 내가 한 수 위다.
그동안 나는 심심하면 돌 놀이를 했으니까.
구수리에 내가 싼 돌만 해도
피라미드 높이만큼 될 것이다.

나야 구수리에서 사니까 그런다치지만
알따르는 왜 먼 몽골에서 달려와 이런 험한 일을 하느냔 말이다.
"돈도 못벌어주고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했더니
"형이 나보다 더 고생하는 거 같아요."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내가 앞으로 백억을 벌면 사십억을 줄게. 내가 육 알따르가 사, 어때 괜찮지?"

마당에 수도를 놓기 위해 엑셀파이프 한타래를 다 썼다.

지하수 파이프는 두터운 옷으로 감싸주었다.

산 중턱인데다가 지대가 마을에서 가장 높다 보니 물이 적다.
그래서 지하수를 두 개를 파서 연결을 했다.

그런데도 물량이 영 시원치 않다.
아무래도 마을수도를 끌어올려야겠다.

겨울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마당이 엄청 넓어졌다.
아마 우리 마을에서 가장 넓지 싶다.
축구하고 싶으면 공 가지고 올라와야겠다.

창고를 짓고 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시멘트와 벽돌로 기초를 하고 앵커를 박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씌우는 것까지 집 짓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일주일정도 걸렸다. 방수시트를 덮고 슁글을 하고 소핏벤트, 처마도리, 후레싱, 물받이.... 앞으로도 수많은 공정이 남아 있다.

옆집 할아버지네와 경계를 이루는 곳.
이곳 때문에 며칠동안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옥신각신.
으으.... 나는 이런 일이 제일 싫어!

머잖아 푸릇한 이끼가 끼고, 향기도 좋은 나팔꽃이 오롱조롱 덩쿨을 튼다면
이 돌담도 또하나의 구수리 명물로 변할 것이다.
그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천의 관광지, 구수리로 오세요!

욕실에 타일도 붙였다.
진천에서 타일전문가로 명성이 높다는 분을 모셔왔다.

전문가답게 일도 척척, 시원스럽게 잘 했다.
타일도 얼마나 세련되고 단정한지.

바닥에 약간의 층을 주어 배수관을 두 개 만들고 싶었지만
타일 전문가께서 구조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바닥은 건모래와 시멘트를 섞은 일명 건사모리 위에 물을 뿌려가며 타일을 붙이는데,
층을 주게 된다면 건사모리가 직각으로 서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부득이 그 공사를 하려면 두번 세번 공사를 해야하고,
아니면 콘크리트로 먼저 층을 쳐서 굳힌 다음에 공사를 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작업의 불가성을 설명하는데, 그것에 대해 무지한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그 얘기를 손교수님께 전달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을 하지? 하고 한참 고민했다.
이럴 땐 말을 잘 하는 사람이고 싶다.

타일전문가 부인께서
조수를 하는데 아주 상냥하고 꼼꼼하고 예뻤다.

주방은 환풍기 아래에 붙이는 타일을 미처 계산하지 못해 몇장이 모자라고 말았다.

오른쪽 아랫부분을 남겨 놓은 타일 전문가께서
"이건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나중에 타일 오면 직접 해 보세요."
하고 그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요 며칠 달이 동그랗게 떴다.
보름인가 보다.
"늑대가 사람을 잡아 먹는 때예요."
알따르가 말했다.
11월의 보름.
몽골 초원에 사는 늑대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새끼를 밴 늑대들은 사람의 목숨까지 먹이로 삼는다고 했다.
사나운 늑대가 있는 몽골로 알따르는 다음 주에 떠날 것이다.

또 새날이 밝았다.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던 '간장님'이 일을 도우러 올라왔다.
우리집의 유일한 여자분 간장님께서는 오일스테인 칠하는 전문가이시다.

초보자들은 붓자국이 선명하게 남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스치면 색이 나무에 쏙쏙 스며든다.

우리마을 목사님부부께서 가져다 주신 새참....
정말 달고 맛있고 고맙게 먹었다.
지치고 고될 때 베푸는 은혜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법이다.

다시 작업 시작.

재고...

자르고...

박고...

손으로 만든 집.
마음으로 빚은 집....
아마추어들은 못을 박아도 전문가보다 세 개는 더 박는다.
밤에 몰래 벽을 흔들어보기도 한다....ㅋ

창고를 짓다보니 집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그 앞에 모터실을 만들어야 하고,
지붕 물받이 아래에 뚫은 렌지 환풍기는,
렌지 위치를 변경했기 때문에 도로 막고 옆에다 새로 뚫어야 한다.
동그랗게 오린 부분을 메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거기에 예쁜 곤줄박이집을 만들어줄까?

실내 마감은 너무 더디다.
하나하나 자로 재고, 밖에 나가서 자르고,
틀리면 뜯어내고.... 으으, 이럴 땐 정말 싫다....ㅠㅠ

요즘은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고,
예쁘고 멋진 옷을 골라 입듯이
집도 아름다울수록 좋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멋질까,
어떻게 해야 볼수록 기분 좋을까....
그러면서 총을 쏜다.

멀리 안골농원에서
조물조물 만들어주신 맛있는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화평어머니 손길이 짭짤하게 느껴졌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 마음 따뜻한 분들이 많다는 걸 안다.
지난 주엔 베들이 어머니께서 김장을 하셨다며 맛난 김치를 엄청 많이 갖다 주셨다.
이렇게 행복하고 배부르게 해주신 은혜도 잊지 못하는 법이다.

11월 23일에 한국을 떠나는 알따르...
그래서 우리는 요즘 손길이 무척 바쁘다.
새벽부터 밤까지.
손 마디가 닳도록 성심, 성신을 다한다.

자기가 떠나면 나 혼자 애를 먹을까봐,
"형은 좀 쉬어요."
하는 알따르.
가슴이 저리다.

밤바람 산바람은 차지만
마음만큼 모닥불처럼 따뜻하다.
저녁엔 알따르와 술을 마셨다.
바다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알따르에게
바다는 콧물처럼 짜, 하고 말해 주었다.
오늘은 잠 좀 붙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