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피셔 (St. John Fisher)06월 22일
신분 : 주교, 순교자
요크셔에서 출생하여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로체스터의 주교가 된 그는 대단한 학문과 교양을 지닌 학자였다.
청빈하고 엄격한 종교적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하였으며, 당시에 횡행하던 이단으로부터 가톨릭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
캠브리지 대학교 명예 총장에 선출되기도 했고,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왕비와 이혼문제가 발생하자 재상이던 토마스 모어와 함께 이혼의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했고, 자신의 이혼을 반대하는 로마 교회와 결별하고 교회의 수장이 되려는 국왕의 의지에 반대했다.
요한 피셔는 재판정에서도 결혼은 절대로 풀 수 없다고 당당히 선포했고, 1년 간 런던 탑에 수감되었다. 결국 국왕에 대한 반역죄목으로 1535년 6월 17일 참수형을 당했다. 런던 다리에 내걸린 요한 피셔의 머리가 생전의 모습과 같이 살아 있는 듯 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자,왕은 그 머리를 템즈 강물에 던져버렸다.
성 요한 피셔는 성 토마스 모어와 함께 1882년 12월 20일 시복된 후 1935년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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