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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탐구1)강렬한 빛과 어둠을 오간 예술가 『카라바조』

작성자권용석|작성시간26.01.16|조회수40 목록 댓글 0

강렬한 빛과 어둠을 오간 예술가 카라바조

 

본명: Michelangelo Merisi.

이탈리아 베르가모 근교의 카라바조 출생,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처럼 유명한 거장들이 태어난 이탈리아에서 이들 못지않게 자랑으로 여기는 화가가 카라바조(1571~1610)이다. 과거 이탈리아 지폐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할 정도로 높은 위상이었던 카라바조는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바로 붓질하여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는 독보적인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다채로운 색채를 그림으로 최고로 인정하던 시대에 강렬한 명암대비를 이용해 세밀한 묘사를 했는데 이런 드라마틱한 기법이 잘 나타난 대표적인 그림이 <바쿠스: 디오니소스, 술의 신>이다. 사실 이 그림이 품위 넘치는 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인간적인 모습인 이유는 신을 이상적으로 나타내지 않으려는 의도로 카라바조가 자신의 친구를 모델로 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바쿠스의 오른쪽 검붉은 와인잔에 희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꼼꼼하게 담아내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카바바조가 크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메두사의 머리>라는 작품 덕분인데 머리에 수십마리 뱀이 달려있고 눈을 마주치면 온몸을 굳어버리게 하는 메두사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 ‘페르세우스’인데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이 ‘페르세우스’가 자기들 조상이라고 믿으면서 자랑으로 여겼기에 이 사실을 알고 카라바조는 그들의 마음에 들게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잘려진 메두사의 그림을 그렸다. 카라바조는 그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물뱀을 사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단숨에 그렸으며 피흘리는 사람의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형장을 찾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메두사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당시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직접 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재능과는 별개로 “미친 화가”라고 불리며 굴곡진 인생을 살았는데, 어렸을 때 페스트로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고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메디치 가문의 대리인이자 미술품 수집가이던 프란체스코 델 몬트 추기경의 눈에 띄면서 후원을 받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사건을 많이 저질렀는데 사사건건 사람들과 시비를 붙었고 그때마다 칼을 휘둘러 위협을 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테니스 경기중 점수 때문에 심한 다툼을 벌이다가 라누초 톰마소니라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1606). 지체높은 집안의 자식을 죽인 사건으로 사형을 명령한 로마에서 멀리 도망해 도망자로 살게 되었다. 멀리 떠돌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그림을 판 돈으로 교황청에 로비를 펼쳐갔고 수차례 속죄의 그림을 세상에 선보이며 사면을 받기 위해 애를 썼다. 이 때 남긴 대표적인 작품이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이다. 그림에서 다윗은 젊은 시절의 자신의 얼굴을, 골리앗은 지금의 늙고 병든 얼굴로 그려서 순수했던 카라바조가 타락한 카라바조를 처단하는 모습을 표현해 마음 깊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교황청의 사면을 받고 도망자 신세를 면했지만 로마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는데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면소식을 전달받지 못한 병사에게 붙잡혀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극심한 열병에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출처: 미술관에 간 할미(할미 지음), 더퀘스트

 

<평가>

카라바조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미술가로 평가된다. 그는 이전 1세기 동안 미술을 이끌어온 인간적·종교적 경험을 이상적인 형태로 나타내는 플라톤식 이상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며, 인생은 언제나 일종의 드라마이고 모든 경험(심지어 신비한 경험조차)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물리적 현상 속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우 감정적이고 반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사건들의 의미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에서 극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묘사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그의 그림들은 순간을 포착한 극적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의 인간관은 당시에는 독특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널리 칭찬을 받고 그의 기법이 널리 모방되기는 했지만 그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출처: 브리태니커/L. Carluc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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